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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Dec 06. 2023

다가서면 즐겁다.

하늘 정원


 "데이터 이관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드림백화점 전략정보 시스템에서 송안점 실적 바로 뜹니다. 이렇게"

 정상무 시스템의 업데이트 버튼을 누르자 새로운 화면이 다운되기 시작했다.

 "그까짓 일을 모 일주일이나 걸렸냐. 거. 정확하긴 한 거지. 새로  들어오는 브랜드도 즉시 반영되는 거지"

 같은 질문도 재수 없게 말하는데는 정상무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찬찬히 설명하며 확인시켰다.

 

  "서버 용량 문제로 과거 실적은 2년치만 넘겼습니다. 운영에는 문제는 없겠습니다만 내년엔 IT 투자해서

   완전하게 시스템 통합을 해야 할 겁니다.알아보니 본사에서 전략정보시스템 전체를 리뉴얼할 계획이라니

   거기에 반영시키면 될 것 같습니다."

  "민대리와 IT실 직원들이 수고가 많았습니다. 수고한 직원들 밥이라도 사주시죠"

  옆에서 권차장이 거들었다. 정상무 표정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들은체도 않고 모니터로 몸을

  돌리고 송안점이 추가된 메뉴들을 하나씩 확인해 나갔다. 본사 사장실을 비롯한 경영진 화면의 업데이트와

  결과 확인을 권차장에게 지시했다. 책상 서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뒤에 서있던 성원에게 쑥 내밀었다.

  "그냥 백화점 안에서 먹어."  

  점장실을 나와 확인해 보니 제법 큰 금액의 백화점 상품권이 들어 있었다. 권차장이 어깨를 툭 쳤다.

  "말은 그래도 마음은 있는 사람이야. 자기도 다 해 본 일이거든, 힘든거 알지"

  "두고 봐야죠. 저는 전산실에 가서 새로운 매출 목표 반영 확인하고. 상품권 쓸 궁리도 하겠습니다."


   성원은 전산실로 향했다. 매칭 알고리즘을 만드는 작업부터  데이터 이관까지 하나씩 확인하며 거의 수작업으로 진행했다. 영업 중에는 실적을 만질 수 없어 매일 밤을 새워서 작업한 전산실 직원들의 고생이 많았다. 실시간으로 매출이 뜨는 백화점 시스템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티가 나거나 생색낼 일도 아니었다. 방대한 작업량에 속도전으로 달라붙어 일주일 만에 과거 데이터까지 마무리했다. 지난밤에 드림백화점 시스템에 연결하고 미리 백업해 둔 자료와 대조하면서 확인하느라 몰린 피로에 머리가 아팠다. 전산실에 잠깐 들러 상품권을 전달하고 옥상에서 가을바람 맞으며 잠시 졸았다.

 

   알람이 울렸다. 권새록 팀장 주관으로 드림백화점 VIP 관리 제도를 설명하고, 송안점에 어떻게 접목할까 논의하는 회의였다. 기지개를 켜고 담배 하나를 붙였다. 머리는 상쾌해지는데 뱃속이 허했다. 점싱을 걸렸다는 생각을 하며 사무실로 돌아오니 이미 회의가 진행 중이다. 


"부장님! 일 좀 하세요. 일 쫌.!. "

"권팀장 너무 하는 거 아냐.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 하는데..."

"맨날 TV만 보시면서 VIP리셉션은 저한테 떠밀어 놓으셨잖아요"

   권새록 팀장이 씩씩거리고 있었다. 옆에 앉은 본사 직원과 황인아 매니저는 권팀장이 폭발해 버릴까 두려운 마음으로 서로 쳐다봤다. 테이블에는 파티장 레이아웃과 예상 비용 산출 내역이 있었다. 

 "대우해 주니까.. 기어오르지. 이봐 권차장. 내가 놀았냐고. 본사 가서 MD개편 품의받고, 회장님께 오픈 행사

  계획 보고하고, 돈이 많이 드니까 좀 줄여보자고 한마디했다고 그렇게 예민하게 굴지마쇼" 

 "비용은 그렇다 치고 오늘 모인 게 우리 네 명이에요. 저도 본사에 할 일이 태산이에요. 송안점 파티만 챙길수

  없고요. 저기 민대리는 어차피 현장 인력 아니고. 그럼 황 매니저 혼자 모든 걸 다 준비하나요?"

  "권팀장 계속 그렇게 불손한 태도 보이면 회장님께 이른다." 

  "삼촌. 진짜 왜  이래요. 사람 좀 붙여 달라고요."

  "이거 왜 이래. 무슨 족보가 이래. 내가 왜 권팀장 삼촌인가, 오빠지!"


   성원은 웃음이 나왔다. 아무것도 모르고 회의에 불려 온 황인아만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눈치를 살폈다. 드림 백화점은 항상 회의를 이딴 식으로 하나. 회의에 자주 참석하는 성원이 웃고 있는 걸 보면 자주 있는 일인 것 같긴 했다. 그래도  뭔가 분위기 수습을 위해 나서기로 했다.


  "제가 한 사람 봐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 말해봐, 골드 직원들이 대거 사표 내고, 본사에서도 갑작스러운 인수에 보낼 사람이 없어 난리인데

   황매니저가 추천한다면 무조건 오케이지"

  "한현주 씨입니다."

  "비서실에 한비서 말하는 겁니다. 점장님 본사 사무실에 있던 비서가 오기로 했으니 한비서를 데려다 써도

   될 것 같습니다."

  성원이 거들고 인아가 쐐기를 박았다.

  " 행사 지원으로  며칠 도와주는 게 아니고 우리 VIP 담당으로 발령을 내주십시오. 그 친구가 호텔경영 전공

    이라 매너도 좋고 외국어도 잘합니다.  물론 비서실 근무해서 커피도 잘 내리고 분위기 파악도 잘하고 용모

    는 이미 아시는 데로. 한비서 지방대 출신이라 취업이 잘 안되니까 고졸로 학력 속이고 입사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아예 직급도 조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

  분위기를 타고 황인아는 강하게 요청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권팀장이 다시 기세를 올렸다.


  "부장님, 지금 다른팀 우수 직원을 우리 팀으로 스카우트하자는 건의입니다. 팀장님이 이거 안하시면 무능한

   팀장 되는 겁니다. 그렇게 미지근한 표정 말고 적극적으로 안 되는 일도 되게 하셔야죠"

 권팀장의 검은 마스카라 사이로 레이저가 뿜어 나오자 김 부장이 슬쩍 얼굴을 뒤로 빼며 한탄했다.

  "권팀장.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여기 대리, 사원들이 배운다. 우리 여직원들 물들이지 마. 다들 오해

   오해하지 마. 얘만 사이코야. 드림백화점 다른 여자들은 안 그래." 

   "부장님.  여자, 여직원 소리 좀 거슬립니다."

  이번에는 성원이 권팀장보다 먼저 치고 나왔다. 어쟀든 목적은 달성하는게 중요했다.


   한비서를 불러 합류시키고 본격적으로 파티장 레이이웃 검토부터 회의를 다시 진행했다. 레드카펫을 깔고

무대와 조명을 설치하고 드레스 코드와 메뉴, 공연까지. 설명을 들으며 성원은 옥상의 바뀐 모습을 보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초청 대상의 연령대, 선호 브랜드, 거주 지역등을 확인하고 초청장 발송 일정을  정하고 진행 업체 견적을 받기로 하고 회의는 끝났다. 마지막에 한비서를 확실히 발령낸다는 김 부장의 선언이 있었다. 회의가 진행되는동안 본사 인사팀과 조율을 끝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회의가 끝나고 성원은 자연스럽게 황인아와 옥상으로 올라갔다. 담배를 꺼내는 성원에게 아직도 안 끊었냐는 핀잔이 날아왔다. 진중한 황매니저는 사라지고 호들갑스러운 친구 인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 황량한 공간이 그렇게 로맨틱하게 바뀐다고."

"나도 권 차장님께 처음 들었을 때는 그게 가능할까 생각했어. 근데 다음 날로 권팀장이 나타나고 바로 가능한 일이 되더라고. 드림 백화점이  추진력하난 끝내주는 것 같아"

"권팀장이란 양반 대단한 것 같아. 처음 봤을땐 피한방울 한 들어갈 것 같았는데. 오늘 보니 깡있던데."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난다지."

 "그 말이 내 말이야. 호감이 약간 생긴다고. 현주편 들어준 것도 그렇고 밥이나 한 번 먹자고 할까?"

  황인나가 설레발을 치고 나섰다. 자기 새끼 생겼다고 챙기는 모습이었다. 전산실 작업도 끝냈고 점심을 걸러 출출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눈짓을 주고받으며 성원은 권팀장에게, 인아는 현주에게 전화했다. 현주가 송안시 맛집 예약하기로 했다. 권팀장도 예상대로 흔쾌히 동의했다. 여지들만의 파티를 해보자고.


  "옥상에 오두막집 하나 만들면 어때요. 처음에는 민 대리 편하게 담배 피우라고 생각해 봤는데 이제 보니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을 위한 아지트 공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후후. 백화점이란데가 좀 웃기죠. 고객 대부분이 여성이고 매장에 판매하는 직원들도 여성인데, 관리하는

   놈들은 다 남성이니 그 마음을 알겠어요. 우리만의 공간, 여성들을 위한 교류의 공간이 있으면 좋지요.

   온돌 설치했다 발마사지 들여놨다 생색만내는 여직원 휴게실 말고. 편하게 차마시고 얘기할 공간이 필요한

   거죠. 거기서 담배도 필 수 있으면 더 좋고."

   

   저녁을 먹으면서도 일이야기를 계속하는 권팀장을 바라보며 성원은 다시 자신의 미래를 생각했다. 회사에 계속 있으면서 저런 팀장이 되는 것이 맞는 길인지. 지금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술도 제법 마시고 지친 몸도 가라앉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권차장이었다. 

   "민대리 덕분에 전산 작업이 예상보다 빠르고 잘 끝나서 저녁이나 먹으려 했는데 어디로 사라졌나?"

   "한 발 늦었어요. 선약이 있어 좀 일찍 나왔습니다."

   "거 참.점장님이 백화점 안에서 먹으라 했는데 상품권 깡해서 밖으로 나간거요. 그럼 말을 해야지. 민대리가

     나만 싫어하나 봐. 김부장님 하고는 라면도 같이 먹었다면서. 백화점 앞 40년 전통 라면집에서."

  

   "그렇게 아쉬우면 거부 횟집으로 오시오. 20분 내로"

   권팀장이 재빨리 전화기를 뺏어 한마디 던지고 끊어버렸다.전화기를 돌려주며 득의양양 미소를 지었다.

거부 횟집은 포구에서도 가장 고급스럽고 오래돼서 지역 유지들이 주로 이용했다. 모든 테이블이 룸으로 구성되어 일행끼리만 오붓하게 식사할 수 있었다. 비서실에서 예약 노하우를 쌓은 한 주임이 확실하게 언질을 한 덕분에 사장이 직접 나와서 깍듯하게 메뉴를 챙겼다.


  "와우.. 이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하는 거예요. 전망 죽이네"

   정말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나타난 권차장은 바다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자리에 앉았다.

  "우리 뉴욕에 있을 떼 생각난다. 과제가 안 풀리면 바다 보러 가자고 둘이 달려가서 소주 마시던."

  "뉴욕에서 소주를 마셨다고요?"

  "여기 권새록 팀장은 남극에 갔다 놔도 소주를 구해 올 겁니다. 겉모습은 와인만 먹게 생긴 애가."

  "내 생긴게  어때서. 나도 나의 타고난 품위를 어쩔 수 없다고."


   두 사람이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니 처음 보던 날, 동생이라고 소개했던 권차장의 말이 생각났다. 그때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진짜 남매인지 새삼 궁금했다. 그러다 문득 그 남자가 생각났다. 생긴건 위스키인데 맥주도 많이 먹지 않던 남자. 오늘 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늘도 PC방에 웅크리고 앉아 좀비를 때려 잡고 있을까. 아니면 트라이엄프 호텔의 펜트하우스에서 베트맨처럼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을까. 

   뛰어 내리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남자. 착륙하는 비행기가 무서워 유학하는 5년 동안 한 번도 서울에 오지 않았다고 했다. 착륙이 왜 무서운 것인지. 하나를 알면 열이 궁금해지는 남자였다. 인아가 성원의 술잔을 채웠다. 성원의 술부심이 다시 작동했다. 맥주만큼은 아니지만 소주도 요즘은 도수가 낮아져서 마실만 하다. 소주 한잔에 멍게 한 조각. 이만한 행복의 시간이 또 있으랴. 테이블 위엔 계속해서 해양 생물들이 올라오고 배부르다는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술잔을 비웠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권팀장이 2차를 제안했다. 인아가 근처에 성원 엄마의 커피하우스가 있다는 정보를 누설하자 자연스럽게 몰려갔다.

   성원은 깜작 놀라 술이 깨는 것 같았다. 커피 하우스로 몰려가는 일행보다 뒤처져 걸으면서 생각했다.

   저 권 씨들은 일로 만난 사이인데, 이제 우리 엄마까지 공유하게 되는구나. 즐거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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