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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Dec 20. 2023

소망과 꿈을 보았다.

하늘 정원

   트라이엄프 호텔 12층 객실. 권지상 차장은 맞은 편의 백화점을 바라보고 있다.

한 달 전,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 거기엔 골드백화점이 있었다. 커다란 시계탑과 대리석 외관에 전망용 엘리베이터가 있는 20세기 스타일 백화점. 보름후면 거기에 드림백화점 사인이 걸릴 것이다. 숨 가쁘게 달려온 한 달이었다. 그때까지 있으려 했는데 오늘 사장은 복귀를 지시했다.

    

   백화점 건물 뒤로 송안 시장과 주변의 낮은 건물들이 보인다. 그 풍경에는 시대에 뒤처진 안타까움이 있다. 시청과 호텔, 백화점이 서로 마주 보는 가운데 공간은 콘크리트 광이다. 서울 시청 앞의 옛 풍경을 보는 듯 하다. 다른 도시에서 한 것처럼, 여기서도 도심 재개발 사업이 진행될 것이다. 스카이라인이 올라가고 콘크리트 광장을 헐고 잔디와 나무를 심어 센트럴 공원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다 멈췄다.

아무 근거도 자료도 없는 상상을 하다니.   


   돌아가신 창업 회장님은 자신의 고향인 송안시에 백화점을 만들고 싶어 했다. 화려하게 꾸민 백화점을 통해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려 했다. 작은 백화점 하나를 만드는 것이 거대한 학 공장이나 제철소를 만드는 것보다 어려웠다. 2세를 거쳐 현재의 권지철 회장까지 3대를 내려오며 여러번 타진했지만 작은 도시 송안에 백화점을 성공시킬 자신있는 경영자는 없었다. 최근 2차 전지와 바이오 관련 기업들이 입주하며 산업단지가 확장되고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자 다시 출점 가능성을 따지기 시작했다. 계획 중인 혁신도시 입주로 인구가 늘 것이라는 전제로, 점포 하나 정도 잘 운영하면 그룹에 손해는 안 끼칠 것 같았다. 하지만 대형 백화점 구축에 필요한 투자 규모를 생각하면 신규 출점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런데 지난 8월 말 우연히 창업자부터 내려온 오너 가문의 숙원 사업을 이룰 기회가 찾아왔다.

  골드백화점 보안팀에서 근무 태만으로 퇴직한 직원이 특별한 사건을 제보하겠다며 언론사 주변을 얼씬거린다는 소문이 드림 백화점 사업개발팀 권지상 차장의 안테나에 걸렸다. 즉시 신규 사업 담당 정규식 상무에게 보고했다.

 

"송안시에 골드백화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식품팀 여직원 락카에 몰래카메라가 있다는 제보입니다."

 "저런, 어쩌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 여성단체, 인권 단체, 소비자 단체 모두 나서서 불매 운동하겠군"

촉 좋은 정상무의 표정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버님의 작은 소망하나 이루지 못한다고 투덜대던 회장님의 회한이 떠올랐다. 그 소망을 이루어드린다면 당연히 다음 사장 자리를 노려볼 만하다는 계산까지, 표정을 숨기고 정차장을 재촉했다.


 "사실 골드 백화점은  향토기업 이미지 하나로 먹고살았는데, 윤리적 문제가 터지면 감당 못할 겁니다. 

  무너집니다. 제가 조사한 바로는 그쪽 오너도 백화점 경영에 별 열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식품 매장

  리뉴얼과 주차장 확대에 투자한 것이 효과를 내지 못하면서 모기업인 건설사까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투자액 규모는 얼마 안 되는데 전체적으로 자금줄이 일시적으로 꼬였다고 할까요"

 "거, 뭐냐. 큰 위기는 아닌데, 단기 자금만 마련해 주는 조건에 이런저런 자료 달아 던지면 넘어올 것이다.

   한번 추진하자고. 드디어 회장님도 효도하시게 되었네."


  골드백화점 김기도 사장은 담백했다. 백화점 운영에 권태를 느끼고 첫 미팅부터 푸념이었다. 주차장 확장과 식품 매장 리뉴얼에 백억 이상의 투자금을 쏟아부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특히 매장 새 단장 이후에도 고객은 늘지 않고 매장엔 맨날 팔도 특산물전 같은 행사만 계속한다며 투덜거렸다.

  "망할 자식들, 수입 식품 늘리고, 서울에서 유명한 맛집 유치하면 실적이 오른다더니, 그말은 다 헛소리.

   수입 식품은 직매입 로스만 늘렸고, 서울 맛집들은 우리 동네 사람들 입맛에 안 맞고. 영업하는 놈들은

   전관 리뉴얼을 해야 투자 효과가 나고 유명 브랜드 입점시킬 수 있다고 돈타령이니. 내가 백화점 30년

   하지만 돈 버는 것은 인테리어 공사하는 업자들 뿐입니다."

 

  김 사장의 호소를 열심히 듣고 있던 정 상무가 애환을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눈앞의 몰래카메라 스캔들부터 막아주겠다고 약속했다. 사업이 문제가 아니라 도덕성이 훼손되면 김사장 일가가 송안에서 고개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라고 살짝 협박했다. 

 

  "그것도 그래요. 지가 게으름 피우다 잘린 놈이 무슨 억하심정으로 우리에게 복수하겠다고. 몰래 카메라는 무슨, 그냥 CCTV요. 식품 로스가 늘어서, 특히 수입식품 쪽에 누군가 훔쳐가는 것 같은 조짐이 있어서 도둑놈 잡으라고 했더니 거기다가 CCTV 카메라 붙여놓은 겁니다. 그걸 뭐 몰래 카메라라고." 

 "사장님 마음은 잘 알지만 요즘 세상이 진심을 믿어주나요. 일단 인터넷에 한 번 올라가면 끝이지요. 다행히 우리가 먼저 알고 그룹 홍보실에서 조치했으니 그 부분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오히려 더 큰 사고가 나지 않도록 주의할 시점입니다.사실 건물이 30년 되면 안전을 위해서라도 구조도 보강하고 천정도 새로 하지 않으면 무너집니다. 삼풍 생각 나시죠. 영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안전을 위해 투자했다 생각하십시오"

 "그 말은 앞으로 지상층에도 계속 돈이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군, 오래 할 사업은 아닌 게 확실 햬"

 " 30년 전에 지을 때 좋은 자재를 썼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권 차장의 말에 김 사장은 뜨끔 했다. 건설 회사를 만들어 처음 했던 대규모 건물이라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자업자득이라는 건가. 언젠가는 발생할 문제이고 폭발할 폭탄을 안고 있다!"

 "그러니 저희에게 넘기시고, 건설과 호텔에 전력투구 하십시오. 화살은 넉넉히 드리겠습니다."

 "화살도 중요하지만, 우리 직원들 고용 보장 해주시오. 다 우리 지역 사람들이고, 내가 인맥 하나로 여태까지

  버텨 온 것이니, 살 것은 없어도 내 가족이 거기서 일하니 팔아준다는 마음."

 "거 야. 당연하지요. 100% 고용승계 약속합니다."


   권 차장은 첫 만남을 생각하며 슬그머니 미소가 올랐다. 인수 제안을 넙죽 받아들이고 CCTV 사건을  미리 알려주고 언론 보도를 막아준 것에 대해 고맙다 하는 김사장을 보며 이번 거래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의외로 쉽게 합의한 결과를 회장님께 보고하자 반응은 생각 이상이었다. 어느새 80대가 된 명예 회장님을 모시고 고향 마을을 방문하겠으니, 백화점 오픈에 맞춰 고향 마을 잔치를 준비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송사장의 반응은 좀 더 조심스러웠다. 시설팀과 재무팀에 지시하여 실사 작업에 들어갔다. 건물 안전이 문제라면 인수 후에 문닫고 리모델링 공사한 후에 내년 봄에 오픈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예상보다 구조는 튼튼하다는 시설팀의 보고에 정 상무의 의견대로 영업 중단없이 리오픈하고 3년정도 돈벌어 리모델링하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본 계약을 위해 권 차장이 먼저 송안에 왔다.   

   보름 전, 백화점에 들어가자 마자 락카 안의 CCTV부터 철수시켰다. 제보와 달리 카메라는 락카 출입구에 있었다. 로스가 늘자 직원들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김사장의 변명도 시대착오적이었지만, 그것을 변태적으로 비추도록 악의를 갖고 제보한 직원의 의도대로 퍼졌다면 곤란할 정도로 애매한 위치였다. 백화점 외관뿐 아니라 백화점 운영 방식도 20세기에 머물고 있었다. 사소한 고객 서비스 직원까지도 직접 고용했다. 인건비만 줄여도 4% 이상 손익이 개선될 상황이었다.

    백화점이 가지고 있는 시장 주변의 소소한 부동산 가치도 상승 가능성이 높았다. 모든 자산을 실사하고 둔 직원들의 퇴직금과 실업 급여까지 정리하고 구조 조정 계획을 만들었다. 오늘 송사장의 방문 목적은 권 차장의 보고에 대한 현장 확인이었다. 송사장은 권차장의 보고에 만족하며 복귀를 지시했다.


   가져갈 자료와 두고 갈 문서를 분류하다가 '계향 마을 경로잔치 계획' 사본이 나왔다. 주요 자료는 사본을 따로 만들어 두는 것은 권차장의 습관이었다. 오너 집안의 고향인 계향리는 댐공사로 수몰되었다. 그래도 고향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댐 근처에 계향 마을을 만들고 모여 살았다. 가족 농장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사정을 잘 아는 강여사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준비해 마을 잔치 때 와야겠다 생각하며 문서 정리를 이어갔다.

  

    서랍에서 마지막으로 '골드백화점 비전 2030 - 파일럿 플랜'이라는 제목의 문서가 나왔다. 김기도 사장을 세 번쯤 만날을 때, 자신이 구상한 미래 모습이라며 내놓은 자료였다. 파워포인트 100페이지 분량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무슨 스타트업 기업의 투자요청서 같은 만듦새가 신기했다. 그것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한 사람이 작성한 것이라는 것에 놀랐다. 백화점의 사업 계획이라기보다는 송안시 도심 부흥 프로젝트 같았다. 투자 효율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가능한 모든 아이디어의 집합체였다. 열정과 재능 있는 직원의 초안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었다. 30년 동안 백화점을 운영했다는 조직에 비전을 만들어주고 직원을 훈련시킬 관리자가 없어 직원 스스로 꿈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아이디어는 보도 자료에 보탤 수 있도록 홍보팀에 전달했다. 송안에 가면 리포트를 작성한 직원을 만나야겠다 생각했다. 송안에 온 첫날, 점장실에서 그 직원을 만났다. 민 성원대리라고 했다. 그 직원과 라면을 먹기로 했는데, 내일 밖에 시간이 없군 생각하며 서류 가방을 닫았다. 그 보고서의 작성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했던 마지막 페이지가 생각났다.


  "골드 백화점은 사람이 만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백화점들은 사람을 모으려고만 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을 모으려고 더 큰 건물을 만들고

   비싼 조명 아래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뒤에  숨은 욕망의 허탈함에 그들은 금방 지쳐 돌아간다.

   그리고 백화점은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려고 더 커지려하고 더 비싸게 포장한다.


   우리 송안의 골드 백화점은 그 자체가 송이 되어야 한다.

   송안의 거리를 연결하고 사람들이 함께 하는 울타리 없는 공원이 되어야 한다.

   송안의 사람들은 계속 거기에 머물 것이며 거기서 그들의 삶을 추억하게 된다

   우리의 벤치 하나하나에는 송안을 살아 간 엄마들의 이름을 새긴다"


투박하지만 그 아이가 꿈꾸는 백화점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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