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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Feb 21. 2024

주말에도 일한다.

하늘 정원

   전광판 광고 생각에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았다.일단 주말 지나고 광고 대행업체를 만나기로 했다. 

성원의 바쁜 마음은 아랑곳없이 옥상의 가을은 무르익었다. 몇 그루 없는 나무엔 단풍이 들고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이 쌀쌀했다. 바닥에는 나뭇잎이 뒹굴고 자연스럽게 옷깃을 추켜 올렸다. 타들어 가는 던힐 담배를 바라보며 생각은 다시 다른 곳을 튄다.

   

   11월, 12월 행사장 운영 계획 회의를 끝내고 올라왔다. 각 팀이 서로 대행사장을 쓰겠다 들이대는 것을 조정하느라고 진이 빠졌다. 골드 시절에는 서로 안 쓰겠다고 해서 설득하느라 힘들었는데,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다. 골드 시절에는 영업팀이 행사장 사용에 따라 추가되는 목표를 달성할 자신이 없었다. 행사도 이월 상품중심으로 단조롭게 구성되고 같은 시즌에 같은 행사가 반복되기도 했다. 영업팀 담당자들은 그만큼 행사 유치도 힘들었고, 행사장을 채우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반대로 드림 백화점 영업팀은 일단 좋은 시기에 가장 크게 행사장을 펼치려 했다. 그런 면에서 창림기념일과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11,12월은 연간 목표 달성을 위한 마지막 피치였다. 행사도 패션 그룹 종합전이나 명품 시즌 오프 같은 중량감 있는 제안이 이어졌다. 즐거운 마음으로 조율에 나섰지만 각자의 고집에 회의 시간이 길어졌다. 어쨌든 정리된 스케줄을 본사로 보내면 다음 주 그들이 출근해서 답을 줄 것이다. 월요일은 백화점이 휴점이니 화요일에 회신이 오면, 수요일에 다시 영업팀 회의를 해야 한다. 확정된 행사 계획에 프로모션과 광고 계획까지 포함한 종합 회의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아 광고, 전광판 광고.


   그러고 있는데 인아가 올라왔다. 언제나처럼 해맑다. 어쩜 인아의 고민은 피부 관리뿐일지도 모른다. 30대 되고 한 해가 갈 때마다 회복 속도가 떨어진다고 투덜거린다. 엊그제 경로잔치 때 잠깐 배를 타서 피부가 뒤집어졌다나 어쨌다나. 오늘은 어떤 소식을 물어왔을까 궁금하기도 해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일 송안에 남아 있는 동창들 모임 있는데 같이 갈래? 내일 마시고 월요일엔 그냥 퍼져. 어차피 다른 계획도없잖아" 

"별로. 내일은 피곤할 예정이고. 월요일엔 전광판 업체 미팅 있어.'

"뭔 미팅, 이 사람아. 월요일은 휴점일이야. 쉬는 날 무슨 미팅을 해?"

"그렇게 됐네. 내가 급하니 내가 찾아가야지. 휴일이 대수냐."

   

    송안시로 돌아온 이후 동창 모임에 나간 적이 없다. 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도 있지만 왠지 모임에 가서 옛날이야기나 하기엔 아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 동문회에도 잘 나가지 않았고 송안에 오더라도 잠깐 있다 돌아가곤 해서 친구들 소식을 잘 알지 못했다. 백화점에서 일하게 되면서 황인아가 여기서 일한다는 것을 알 정도였으니. 고등학교 때 단짝으로 붙어 다니던 인아의 소식조차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가끔 그들의 삶이 궁금하지만 새삼 모임에 나가기엔 왠지 낯설었다.

 

"내일은 강덕출이 한 턱 내기로 했는데. 웬만하면 같이 가자. 어차피 우리가 퇴근이 늦어서 오래 잊지도

  못해. 결혼한 애들도 있고."

"강덕출이 왜? 우리 학년도 아니잖아. 선배들도 오는 거야"

"아니. 우리 동기 모임인데 강덕출이 후배들한테 한 떡 쏘겠다고. 지가 지역 유지라서 후원하러 오겠다며 돈만

 내고 갈 거니까 부담 갖지 말라는 당부까지 하더라."


 "아. 참. 너 월요일 오후에 시간 되냐?"

  잠시의 침묵 끝에 의식의 흐름이 월요일 오후까지 갔다. 강덕출에서 김세안으로 김세안에서 농장의 아지트로, 그리고 월요일에 거기에 가기로 했다는 그 말, 거기에는 인아가 동행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궁금한 표정에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호수에 산책이나 하고 아지트에 들러 떡볶이나 만들어 먹자고 했다. 뭐 몸이 괜찮으면 자전거도 타고 운동도 할 겸함 바퀴 돌자고 했다. 가장 별 일 아닌 듯이 말했다.


 "그래. 그럼 소풍 가는 마음으로 현주도 같이 가자고 할까. 걔도 특별한 계획 없는 것 같던데."

 "뭐 그러던지."

  정말 아무 일 아니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농장의 아지트를 낯 선 사람에게 보여준다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이젠 어차피 남의 땅, 그나마 흔적이 남아있을 때 한번이라도 더 가서 추억을 남기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지막 담배를 태우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음 날 있을 공정 회의 준비를 해야 했다. 

 

   각 팀에서 취합된 자료를 확인하고 회의 진행 순서에 따라 정리했다. 어느덧 3주 차에 접어들며 진행 단계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오늘 밤의 매장 이동만 끝나면 매장의 칸막이는 모두 사라진다. 내일은 지하 1층에 새로 조성되는 대행사장도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고 보니 행사장은 아직 만들지도 않았는데, 오전에 서로 쓰겠다고 우겨댄 것이 우스웠다. 그렇게 마무리만 잘 되면 브랜드별로 새로 만든 집기며, 싸인 작업하고 상품 입고까지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다. 


   처음 정상무가 3주 동안 공사하고 한 달 후에 리오픈한다고 했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무슨 천리마 운동도 아니고  20세기 노동 착취의 시대는 이미 지났는데  요즘 세상에 매일 밤을 새며  공사할 수 있는 업체도 인부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해 낸다. 공정 회의 때마다 정상무가 말하곤 했다. 드림 백화점의 능력을 보여주라고. 돈으로 해결되는 것은 돈으로 해결하라고. 야간 공사에 두 배의 비용이 들면 그 이상의 시간을 얻는다고 생각하라고. 그게 가장 쉬운 일이라고. 그렇게 공사는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심지어 다른 백화점이 한창 세일 중인데 공사 마무리와 대청소를 위해 단독으로 휴점을 잡았다. 층별로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생긴 폐자재, 집기를 한꺼번에 배출하는 날이다. 전 층의 먼지를 가라앉히고 공용 공간의 마감 작업을 실시한다. 하루에 다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날 밤을 새워서라도 그들은 해 낼 것이다. 조심스레 김 부장의 의중을 확인했다.


"월요일에 저도 나와서 작업 도와야 하는 것 아닐까요?"

"민 대리는 나와도 할 일 없어. 내가 점장하고 돌아다니면서 영업팀 직원들하고 확인할 거니까 맘 놓고 쉬라 

 고. 늙은 부장이 콘크리트 먼지랑 톱밥이랑 용접 불꽃이랑 다 먹으니까 전혀 걱정 말고 직원들은 쉬는거야.

 우린 대리 때부터 이런 것 많이 먹어서 하나도 안 힘들어."

"그니까요. 제가 그 대리 때라고요.저는 지금부터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쉬시라고요. 대리님. 날씨 좋은데 좀 놀러 가든지. 맛있는 것도 먹고 어차피 남친도 없는데."


   김 부장 말은 논리가 맞는 적이 없다. 그리고 쓸데없이 붙이는 한마디가 저 양반이 왜 임원승진을 못하는지 설명해 준다. 직원들 쉬게 하는 좋은 팀장으로 마무리하지 남친은 왜 나와. 맥락 없이. 어쨌든 성원은 부담 없이 쉬기로 했다. 전광판 광고 업체에 미팅 시간을 톡으로 확인한 후 인아와 현주에게도 스케줄을 알려줬다. 시내에서 점심 먹고 자전거 타고 출발해서 호수 한 바퀴 돌고 아지트에 들어가서 떡볶이 해 먹는 것. 현주가 자신만의 특제 소스 비법이 있다며 소스를 미리 준비하겠다 하고, 인아가 VIP용 와인을 빼오기로 했다. 파티를 위해 가져 온 샘플 몇 병 있는데 그냥 두면 상할 것 같다고 마셔버려야 한단다.   


   그렇게 바쁜 토요일이 지나가고 있다. 문득 권새록 팀장이 떠 올랐다.

월요일 피크닉에 같이 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녀는 출근해야 한다. 권팀장은 본사 소속이다. 본사는 주말에 쉬고 평일에 출근한다. 그러니 합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한번 물어보고 싶지만 쉬는 사람에게 연락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했다. 아쉽지만 어차피 못 온다고 체념했다. 


   백화점에 다니기 시작한 초기엔 주말에 일하는 것이 힘들었다. 평일에 비해 3배 정도 손님이 많은 주말의 주 업무는 영업 지원 업무였다. 고객 상담실이나 사은품 증정 데스크에서 날 선 고객을 상대하는 일에 미칠 것 같았다. 어쩌다 친구 결혼식이나 대학 동아리 모임이 있다 해도 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은 성원을 포기했다. 주말 근무에 야근까지 계속되니 삶의 질이 형편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변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평일에 쉬는 것도 장점이 있음을 알았다. 극장이나 도서관 같은 시설들이 한산했다. 그래서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을 쉬는 것으로 정했다. 한 달에 한번 백화점의 정기 휴무가 있어, 전체적인 리듬도 맞아 들어갔다. 그러다. 지난 추석 이후로 인수 작업이 진행되면서 딱 하루밖에 못 쉰 게 문제였는데, 그것은 성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정규식 상무부터 모든 직원들, 매장의 협력사 직원들까지 모두 비상 운영 체제였다. 그런 측면에서도 다 같이 쉬는 휴점일을 당겨 정한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

물론, 쉬지  못하고 공사하는 사람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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