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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Feb 28. 2024

소풍을 가다.

하늘정원

   트라이엄프 호텔 20층 사무실,

  김세안은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안개를 머금은 공기오늘의 날씨를 가늠하기 어렵다. 안개가 걷히 청정한 하늘이 드러나길 기대하지만 자욱한 습기가 점점 내려앉는다. 평소와 달리 사무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어슬렁거리며 계속 창밖을 내려다본다. 숲 속에 들어가면 쌀쌀하게 느껴지겠다. 가을 햇볕에 얼굴이 탈 수도 있있겠다.세안이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사무실을 어슬렁거리는 동안 커피하우스의 강여사는 칼국수를 끓였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먹은 술이 안깨서 힘들었는데. 엄마 국물이 끝내주네요."

  아침부터 커피하우스에 나타나 해장을 해야 한다고 볶아대던 인아가 엄마를 향해 함박 웃음을 투척했다.

  "동창 모임이라며 성원이는 안 갔니?"

  "피곤하기도 하고 오늘 아침에 중요한 미팅이 있다며 빠졌어요."

  "잠깐 얼굴이라도 비치지. 애가 그런 걸 참 못해."

  "그렇죠 뭐. 회사와 집, 엄마 밖에 모르는 애잖아요. 근데 오늘 소풍 가자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 호수에 간다니 재미있게 놀다 와라. 맨날 야근하느라 햇빛도 못 봤는데, 광합성도 하고."

  "호수가 유원지로 변해서 사람들도 많고 먹을 데도 많아요, 엄마도 최근엔 안 가 보셨죠."

  "우리 농장이 무슨 수질 오염 시설이고 냄새나는 혐오시설이라고 사람들이 몰려와서 구박한 이후로 정 떨어

   졌지. 성원 아빠가 살아있었어도 농장을 오래 할 수는 없었을 거야."

    

    인아에게서 고개를 들려 먼 곳을 바라보고 있을 때 성원과 현주가 들어왔다. 미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며 배고프다고 성화하는 아이에게 칼국수를 듬뿍 퍼주었다. 아침부터 찌뿌둥하던 날씨는 해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자전거는 안 되겠지. 거리가 좀 멀고 준비 운동도 못하고 좀 있으면 더울 것 같아"

    "민 성원.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안 돼. 자전거 타고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만도 대견하니까,

     그냥 차 타고 가서 잠깐 산책해.."

    "저는 여기까지 자전거 타고 온 것만으로도 지쳤어요."

   현주도 끼어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호기롭게 집을 나섰지만 얼마 못 가 지쳐 걷다가 마침 집으로 돌아오던 성원에게 발견되어 함께 온 것이다. 칼국수에 계속 집착하다가는 출발하지 못한다는 엄마의 경고에 세 사람은 급하게 식사를 마무리했다. 출발 무렵에는 따가운 가을 햇빛이 차창을 두드려 대고 선글라스의 세 여인은 재잘거리며 호수를 향했다.


    호수 주차장은 생각만큼 붐비지 않았다. 아니 굉장히 한가 했다. 스카이 다이빙 하던 날  지나가며 보았던 풍경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다 후후 웃음이 나왔다. 오늘은 월요일이지.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모두 쉰다는 생각만 했는데 그 모두의 범주가 백화점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가 아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쉬는 날이라 당연히 호수 공원에도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다니. 쉬는 날 놀이 공원 가면 백화점 사람들뿐이라 할 수 없이 사내 결혼했다는 김 부장 말이 생각났다.


  "한산해서 좋다. 저쪽 길로 걸어보자. 한바퀴 도는데 한 시간 반쯤 걸려."

    댐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지역별로 몇 개의 저수지가 있었다. 그중 송안시에 있던 저수지를 중심으로 산책로가 개발되었다. 호수 중간에 데크를 놓아 거리를 조절하고, 숲 지대와 습지를 번갈아 지난다. 구간에 따라 대나무숲도 나오고 단풍 숲도 있고, 봄이 되면 벚꽃길이 장관을 이룬다.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이런 산책길이나 생태공원을 조성해 지역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관광자원으로  만들고 있다. 


   오전에 미팅한 전광판 광고업체도 지자체의 경쟁 심리에 편승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란 팁을 주었다. 내일 아침 정 상무에게 보고할 생각을 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민대리님 이런 모습 처음이네요. 노래를 다 하시고."

   "얘가 안 해서 그렇지. 노래 잘해. 음악 선생님이 얼마나 좋아혔는데."

    인아가 거드는 게 달갑지 않다. 여기서 그치지 않으면 뭔가 한마디 보태서 성원을 웃길 것이다. 어이없어 나오는 웃음. 현주는 그것을 진실로 믿을 테고. 지금 인아를 차단해야 한다.

    "노래는 인아가 최고지. 우리 여기로 봉사 활동 나오면 인아 노래만 듣갔잖아. 쓰레기는 안 줍고."

    고등학교 시절, 한 학기에 두 번 여기 왔다. 자연 학습이기도 하고, 쓰레기 수거 활동을 통해 봉사 점수를 획득하기도 했다. 반별로 짜인 일정에 따라 오후 수업을 대체하곤 했다. 물론 자발적으로 하는 봉사이기 때문에 오기 싫은 사람은 학교에 남아 공부했다. 성원도 1학년때는 열심히 참여했지만  2,3학년때 왔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저희 1년에 한두 번 소풍 겸 해서 왔었는데요. 그땐 저 크 길은 없었는데. 최근에 만들었나 봐요."

   호수 한쪽 물 위로 1.5km 길을 만들었다. 다리라고 하긴 좀 길고 데크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물 위의 지름길이다. 성원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3년 전까지 가끔 집에 들르면 그래도 자전거 타고 호수 한 바퀴는 돌았는데, 그때도 데크를 본 기억이 없었다. 물 위로 난 길을 걸으며 그동안 보지 않았던 물속 세상, 물고기들의 움직임까지 감지하며 걸었다. 나이 드신 분들이 몇몇 운동삼아 걷고 있었고 평안한 물결에는 가을 볕이 반사되어 빛났다. 그렇게 한 바퀴 돌아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살짝 땀이 찼다. 차에 에어컨을 틀고 출발했다.


   "근데, 두 분의 비밀의 장소에 가는데 차를 타고 가요? 난 숲 속 깊은 곳 동굴이나 습지에 있는 오두막 같은

    걸로 생각했는데"

   "하여간 요즘 애들은 영화를 너무 많이 본다니까."

   "특별한 곳은 아니고 우리 농장 있던 곳인데. 농장은 폐업하고 내가 놀던 별채는 남아있어."

   두리번거리는 현주에게 착하게 설명했다.


   가축들이 사라지고 폐쇄된 농장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흐린 날이면 아직도 동물의 배설물 냄새가 올라왔다. 민원을 피하려면 철거해야 하지만 아직 마땅한 용도를 찾지 못해 내버려 두고 있었다. 여기에 아파트를 짓는다면 특혜 논란에 휩싸일 것이고 위락 시설은 수질 오염 문제가 있다. 여러모로 골치 아픈 땅을 인수해 준 김 사장과 골드산업이 고맙다고 엄마는 말하곤 했다.    

  

   "근데. 여기 올 생각을 어떻게 한 거야. 이젠 너희 것도 아니고 최근에 여기 와본 거냐?"

   "주인한테 허락받았어. 주인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람이야."

   "그렇지. 우리 모두 알지. 김사장이 여길 샀으니까. 송안 시민 다 알지"

    익숙하게  번호키를 누르는 성원 뒤에서 중얼거리던 인아가 갑자기 자기 이마를 쳤다.

   "그래. 너. 금요일에 김부사장 만났지. 그때 이야기 한 거구나. 그래서 토요일에 급하게 나를 끌어들이고."

    

  "김 부사장님이요. 김 세안 부사장. 이 집주인, 여기 오시는 거예요?"

  옆에서 듣고 있던 현주까지 들썩였지만 들은 체도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생각만큼 따뜻했다.

  그놈의 앱으로 난방을 작동시킨 듯했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사람. 진짜 궁금한 점은 그가 여기 나타날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오라고 한 적은 없다. 주인이라면 손님들이 제대로 쓰는지 한번 들여다 볼 수 도 있는 것 아니겠어. 현주가 주방으로 가서 떡볶이를 하겠다고 부산 떨기 시작하자 인아가 제지했다.


 "아직 배 안 고프니까. 일단 차나 한잔 마시자. 현주야. 지금 우리에겐 민성원의 이야기가 더 마려워."

   침대에 걸터앉은 성원을 향해 돌진한 인아는 벌러덩 누우며 한마디를 보탠다.

  "하늘에 별도 달도 그대로이고.대서양 푸른빛 지도도 그대로고.없었던 주방이 생기고.

    여기다 살림이라도 차리려고 준비한 거야. 100평 아파트에 살아도 될 부자 도련님이."

  " 도련님 스타일은 아니죠. 제가 이 방 보니 딱 부사장님 스타일인데요."

    현주까지 나서자 성원은 발끈했다.

 

  "뭔 부사장님 스타일이야. 이거 내가 놀던 방이고 내가 꾸민 그대로라고.김세안은 법적 소유주일 뿐."

  "그럼. 민대리님이 부사장님 스타일인 거죠. 두 분 취향 비슷한 걸로."

   절대 지지 않는 현주였다. 현주의 대꾸를 들으며 인아도 흡족했다. 후배를 잘 키우고 있다는 자부심.


  "금요일 만남부터, 이야기해봐. 초청장은 핑계고. 스카이다이빙하고 첨인데 분위기 어땠어.'

  "어머. 언니. 부사장님 만났어요. 스카이다이빙은 또 뭐야?"

  "현주 씨 호칭 똑바로 해요. 언니야 대리님이야."

   만만한 현주에게 트집 잡으며 시간을 끌었다. 그렇다고 기죽을 현주가 아니었다.

   "공적으론 민대리님, 김부사장이지만, 지금은 사적인 이야기 들을꺼니까 언니와 김세안 씨 이야기"

   "역시, 현주가 경우가 분명해.자 성원 언니, 김세안 씨 이야기해 봅시다."

   인아가 빈틈을 파고 들어왔다. 청중이 둘인데 의외로 할 이야기가 없다. 담담하게 파티 초대에 그가 화를 냈다는 것. 그리고 오늘 여기 오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왔다는 것만 이야기했다.

    

    "근데, 반응이 없었다고. 같이 오겠다던가 뭘 준비해 주겠다던가."

    "이봐요. 우리는 쉬는 날이지만 거기는 출근하는 날이거든요."

    "부사장님이 그런게 어딨어요. 백화점 있을 때도 아무때나 지맘대로 퇴근하고 오락실 가고 그랬는데."

    "거 참 한비서. 자기가 모시던 상사를 그렇게 흉보는 건 비서의 직업 윤리에 어긋나는데."

      성원이 달아나려 할수록 두 여자가 절대 놓아주지 않고 대화 한마디 한마디를 꼬치꼬치 물어왔다.


    "키이라 나이틀리 닮았데.."

     "누가...!? 네가..."

    실수였다. 그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인아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고, 현주는 들고 있던 와인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와인을 따며 아무 일도 아닌 듯이 그 말을 했지만 바로 후회했다. 분명 아무것도 아닌 말은 아니었다. 파티 초대에 대한 불쾌감과는 절대 맥락이 닫지 않는 말. 그 말을 왜 했을까?

 

     "그 말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니?"

     "글쎄, 그 사람이 불쌍했어. 외국에 혼자 있는데, 영화를 보는데, 갖고 있는 추억은 아무것도 없는 거야.

      가족을 제외하고 살아있는 또래 여자를 본 것은 나밖에 없었던 거야. 생각나는 기억이 그거 하나."

     "그게 아니지. 너한테. 반한 거지. 그러니까 항상 너만 생각하니까. 누굴 봐도 너처럼 보이는 거지."


     "그건 아닌 거 같아. 그 사람은 자기 외로움만 해도 버거워서 누굴 마음에 두기 힘든 사람이야."

    성원 말하며 스스로 알았다. 오늘 이 자리에 그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인아가 같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성원이 즐거울 것이라 생각해서 그는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자기 외로움이 힘들고 누군가가 외로워 보이면 돕지만, 아직 누구를 사랑하는 법은 알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계속 혼자여야 하는 사람.


     "떡볶이 시작합니다."

      약간 이상해진 분위기를 감지한 현주가 음악을 틀고 요리를 시작했다. 와인잔에 손가락을 빙그르 돌리 인아를 쳐다봤다. 인아의 눈빛도 어떤 이해를 품고 있었다. 성원이 이야기한 사람은 김세안이 아니고 성원 자신임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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