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L Mar 13. 2024

스파이가 있다.

하늘정원

   강덕출을 만나기로 했다. 명절에 몇 번 마주친 기억이 있다. 엄마의 먼 친척이라고 정육세트를 들고 인사 오곤 했다. 시끄럽고 유쾌하지만 실속 없어 보이는 그를 통해 광고출연자를 섭외하기로 했다.


   권팀장과 머리를 맞대고 기획한 영상은 아주 간단했다. 송안시장 상인들이 나와서 드림백화점 출범을 환영하고 지역상권 활성화를 기대하는 멘트를 하는 것이다. 인심 좋고 단골 많은 상인들을 섭외해야 한다. 그 일에는 시장의 터주대감 강덕출이 제 격이었다. 황인아를 통해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다른 사항들을 점검했다. 내일 당장이라도 촬영할 수 있도록 모든 필요한 준비를 마쳤다. 김 부장에게 진행 상황을 간단히 보고 하고 있늗데 정상무가 들이닥쳤다.


    정상무가 사무실에 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항상 필요한 직원을 점잠실로 부르는 스타일이다. 영업팀 직원은 매장 순시중 만나 업무 지시를 하긴 하나 사무실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다.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일만 하는 게 아니고 휴식도 하고 개인적인 공간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사무실에 느닷없이 나타나면 당황하고 싫어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즉 점장실로 부르면 직원들이 업무에 대한 집중력을 가지고 나타나지만 사무실에선 그렇지 않기 때문에 혼란스럽기만 하다고 했다.


 "그... 김사장이란 사람. 좀 심하게 삐진 것 같은데. 파티고 개업식이고 자기들은 절대 못 온다는 거야."

 "아니 왜요?  회장님께서 좋은 뜻으로 초대하시는 건데."

    김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응답했다. 그 앞에 앉아 이야기 중이던 성원도 저절로 같이 일어섰다.

  

"우리가 고용승계 계약을 어기고 직원들을 내치고 있다는 거야. 계약 위반이라고 저 혼자 광분해서 아무것도 협조하지 않겠다고..."

  "심지어 지난번에 야간 청소 직원 사고 난 이유도 용역으로 돌리면서 인원을 대폭 줄이고 미숙련 인원을  야간에 투입해서 그렇다는 거야"

"아니.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안답니까?. 지가 가게 넘겼으면 끝이지. 직원들 그만두는 것까지 나설 일은 아니죠"

"내 말이. 우리가 멀 어쨌다고. 우리가 자른 사람 한 명도 없어. 다 스스로 그만둔 거지. 내 말이 맞지. 안 그런가. 민 대리?"

 

   괜히 옆에 있다 불똥이 튀었다. 그러고 보니 골드의 김사장을 초대하라는 회장님 지시에 따라 우선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 오늘 었다는 기억이 났다. 성원이 중간에 연락책 역할은 했으나 수행은 하지 않았다. 정상무가 상권도 돌아볼 겸 혼자 다녀오겠다고 해서 기사만 데리고 갔다. 근데 이렇게 길길이 뛰며 돌아오는 것은 협상에 실패했다는 증거였다.


"예. 그게 어쨌든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그만두는 쪽으로 생각하는 직원도 많아지고.."

"그렇지! 내 말이 맞지. 지들이 일이 자신 없으니까 스스로 그만둔 것이지. 민대리는 일만 잘하고 있잖아. 업무에 만족하고."

 "그렇지만 경영 합리화 한다고 비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이번에도 말을 끝내지 못했다. 정상무는 말을 자르며 치고 나왔다.

"그래. 지가 비효율적으로 운영해서 회사 망한 것은 생도 없고. 직원들에게 못할 짓 한 게 회사 망하게 한 사람이냐 그 회사 물려받아서 효율 있게 운영하는 사람이냐. 누가 옳은 거냐고."


   정상무가 다시 성원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성원이 말을 한다면 그는 한 단계 더 나아갈 것이다. 일부러 사무실로 찾아와 모두 들으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지금 이 순간의 작은 소란이 점내로 퍼져나갈 것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정 상무가 진짜로 노리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일부러 더 화를 내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근데, 청소 직원 사고 난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건 우리도 몇 사람밖에 모르는 일인데?"

   김 부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매장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던 지난주. 야간 청소하던 직원이 공사장에서 아래층으로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에스컬레이터 주변 매장을 공사하는 과정에서 아래층으로 연결되는 바닥 마감이 제대로 안 된 것을 모르고 청소 카트를 몰고 가다가 카트와 함께 추락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중상을 입고 입원 중이었다. 야간에 일어일이었고 청소 업체가 용역으로 변경되었으므로 담당자 몇 사람만 알고 있는 일이었다. 물론 용역으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매장 청소를 담당하셨던 분들이 그만두셨고, 그날 사고가 난 직원도 이번에 새로 들어와서 매장 구조를 잘 몰라서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 배경까지 김사장이 다 알고 있다니.


 "아직도 골드 쪽에 미련을 둔 스파이가 있는 것 아니겠어. 우리가 하는 일을 업무일지 보고하듯 하는 거지."

정 상무가 다시 성원을 바라봤다. 괜히 찔렸다. 물론 성원이 스파이는 아니다. 골드 시절이나 그 이후에도 김사장과 직접 대화한 적도 별로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개인 전화번호도 모른다. 그쪽 집안에 그나마 김세안 부사장을 알고 지난 몇 번 만난 것이 전부이다. 특히 지난주에는 초청장을 전달하고 오늘의 약속을 잡으라고 자기가 보낸 것 아닌가.


 "하여간, 의건 의리의  문제가 아니고. 직업윤리의 문제야. 누구든 걸리면 바로 징계해야 합니다."

김 부장이 단언하듯 말했다. 설마 이것이 정상무가 소란을 부린 이유일까. 그리고 김 부장이 그 뜻을 맞춰 이런 식으로 마무리하는 걸까. 어쨌든 청소 직원 사고든, 매장 공사 상황이든 밖으로 흘리지 말라는 정상무의 지침은 전달된 듯했다. 회의 시간에 무게 잡으려 전달하는 것보다 이 방법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싶었다. 어쨌든 김사장은 안 온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김세안도 안 오겠구나 생각했다.


  "민 대리가 오늘 미팅 목적으로 잘 못 설명한 것 아냐?"

  "제가 뭘.. 저는 초청장을 전달한 것뿐. 점장님과 김사장이 애들처럼 싸울 것이라 생각 못했죠"

  계속 수세로 나가면 안 되겠다 싶었다. 어차피 공개적인 자리. 좀 심하게 말해도 정상무가  반격은 못 할 것이라. 빨리 이 사무실에서 정 상무를 몰아내고 가방을 들고 강덕출을 만나러 가야 한다.


  "애들처럼?. 내가 그러고 싶었겠냐. 그 인간이 먼저 시비를 걸었지. 앞으론 다신 안 만나.

    계약 관계 마무리할 일 있으면 본사의 정지상이 와서 하라 그래. 내 참, 회장님 지시만 아니면!"

 씩씩거리며 사무실을 나갔다. 본인이 생각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듯. 사무실에 눈치를 보던 직원들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 일로 돌아갔다.

   매장 개편과 함께 사무실도 통합 사무실로 개편되었다. 각 층에 흩어져 있던 영업팀 사무실도 10층으로 통합되었다. 골드시절 회장실, 사장실, 감사실, 부사장실 등 그 많던 임원실중 부사장실을 점장실로 바꾸고 나머지 공간은 통합 사무실로 개편하여 영업/지원팀이 함께 근무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사무실 통합도 오늘 정상무의 쇼가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매장에 소문은 급속도로 퍼졌다. 하루 종일 vip 라운지에 있었던 황인아도 그 소식을 알고 있었다. 강덕출을 만나는 것이 유효하냐는 톡이 왔다. 어쨌든 골드 쪽과 가까운 사람이고 오늘 만나면 스파이 누명이 더 커지는 것 아니 나는 것이었다. 인아가 듣는 소문은 분명 왜곡되어 있었다. 그것은 민성원 대리가 스파이라고 정 상무가 질책했다는 것이었다. 성원이 잘못된 소문이라고 해도 인아의 걱정은 그치지 않았다.


"그만 다닐까. 재미도 없는데.."

  강덕출의 PC방으로 항하며 성원이 푸념했다. 이렇게 일과 시간 후에도 뭐 하나 해 보겠다고 시장을 누비고 다는 자신이 불쌍했다. 정상무는 다른 목적이 있어 그렇다지만 그 앞에서 약간 굽히는 듯했던 김 부장도 원망스러웠다. 인간이란. 지들이 직원들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버리고 과감하게 이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었다. 황인아가 같이 푸념을 했다.

"언젠 재미로 다녔어. 잘 모르겠다. 우리가 왜 이 회사에 다니고 있는지. 솔직히 딸린 식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먹고살 걱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아실현 욕구 그런 건가. 아니면 이것마저 안 하면 심심할까 봐"

"호호... 오랜만에 듣는다. 자아실현... 회사 다니면서 자아실현 한다고, 자아상실 안 한 게 다행이다.."

어떤 식으로든 가벼운 대화에 마음이 풀렸다. PC방 앞에 카페에 다리를 풀고 인아가 전화를 했다. 잠시 후 강덕출이 나타났는데 혼자가 아니었다. 김 세안을 끌고 나왔다. 확실히 스파이의 접선이 되었다.

   

이전 20화 매일이 새롭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