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많은 시간을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그래도, 소설책이 좋아요.
by sajagogumi Mar 1. 2022
내가 시간을 그렇게 보내왔었다. 그것이 생각났다. 하루에 많은 시간을 소설책을 읽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 무협지를 읽었다.
그러니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는가. 인지하지 못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보냈었던 것 같다.
학교에 매일 갔고, 밤에는 학원에 있었지만, 내 정신세계는 무협지 속에 있었다. 아주 잠깐 현실세계에 들려서 생존에 필요한 무언가들을 하고는 다시 돌아갔던 것 같다.
그 세계가 좋은 점은 현실에서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한 대리만족이 컸다는 점이다. 현실세계와 비슷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들을 그곳에서는 할 수 있었다.
그것도 내가 힘들지 않고, 주인공들이 대신 힘들면서 이루어준다는 것. 나는 그저 글을 읽기만 하면 성공에 대한 감정을 같이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지 않았을까.
그곳에서는 권세도 누릴 수 있고, 내 마음대로 세상을 휘젓고 다니니까. 현실에서는 그저 살아갈 뿐이지만, 그곳에서는 주인공일 수 있으니까.
주인공도 노력을 하고, 연습을 하고, 공부를 한다. 하지만, 노력을 주인공이 대신 해준다. 나는 그저 글을 읽으면 주인공의 노력을 나에게 입힐 수 있다. 참으로 편리하지 않은가.
편하게 읽기만 하면, 그 모든 노력의 결과에 대한 보상과 감정이 나에게 입혀진다는 것이 말이다.
그래. 그것은 마치 마약과 같다. 한번 그 황홀한 감정이입의 세계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노력을 해야 성공한다는 것을 글로 배웠다. 하지만, 글로 알았을 뿐이다. 몸으로 체득하지 않았다.
10분을 앉아서 영어회화 문장을 낭독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이 안가고 좀 쑤시는 일인지, 내 몸으로 직접 해보기 전에는 알지 못한다.
10분간 달리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죽을듯이 힘든 일인지, 내 몸으로 해보기 전에는 알지 못한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며, 이러한 깨달음을 머릿속에 넣을 수는 있다. 하지만, 직접 내 몸으로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의 얘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