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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Oct 03. 2016

여덟 번째 잔 - 잔인한 '이성'

이성적인 생각


 지금보다 조금 더 천진했을 때

 내가 건넨 마음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었고, 내게 온 마음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 그럴필요 없었음에도 미안해했다. 그만큼 난 마음을 먼저 살폈고 서운한 것에, 바라는 것에, 충족시켜준 후에 관계가 유지되는 것에 집중했다. 동화같은 마음을 지키고 싶어하는 내 성향이니까 변하지 않고 오래도록 그 자리에 남아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내 방식이 따뜻하고 인간적인 것이이라. 했다.

 

 그런데 내게 말하지 않고 무언가를 바라는 상대의 의중은 너무나도 쉽게 잡혔지만 그 상대의 의도를 바라봐주려는 마음은 없어져만갔다. 나에겐 그럴 시간도, 타인에게 마음 쏟을 여유도 없으니 제발 나에게 뭔가를 바라지 않았으면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심지어 뭔가를 바라는 게 뻔히 보임에도 보이지 않는 척, 알 수 없는 척 미안하지만 좀 거북스러워, 안타깝지만 난 마음이 동하지 않아. 답정너 하지마. 로 끝났다.


 누군가의 상처를 모른 척 하는 순간,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의 눈길이 위로를 강요하는 무언의 압박으로 느껴지는 순간 삶이 버거워진다. 그만큼 함께한다는 것에 염증이 생겨버린 것이다. 천진했던 생각은 온데간데 없고 천진해보이는 표정만 남는다. 전 국민이 아는 모두의 사기극. 한 번쯤 누구라도 연기해 봤을 법한 대국민 오디션. 그것에 속지 않았음에도 속아넘어가주는 사람들까지. 연기에는 연기로 호흡을 맞추며 속 빈 땅콩껍질을 까고서도 맛있는 척 먹듯 우린 그렇게 텅텅 빈 마음을 진심처럼 나눈다.


  점점 사람한테 마음을 쏟을 수 있는 건, 시간이 많거나 혹은  상대가 먼저 패를 보여줘서가 되어버린다. 그 어느 누구도 자기가 살아온 세월에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려하는 사람은 없었다.

 

 앞으로 사람들은 얼마나 더 '이성적인' 사람이 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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