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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Mar 19. 2018

SEE SAW

없어져요. 계속, 사라져요. 손톱도, 머리카락도, 표정도, 날씨도, 기억도, 잠깐만 살아나요.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은 시소에 오르는 거예요. 시소가 왜 see-saw인 줄 아나요? 보는 게 봤던 게 돼버리니까요. 나는 분명 보고 있는데, 찰나에 봤던 게 돼버려요. A와B가 시소를 타요. A는 나고 B는 나였어요. 나와, 나였던 내가 위로 오르고 아래로 내려가요. 그렇게 우리는 보고, 봤던 사람들이 되죠. 시소에 타 위로 올라가면 세상이 낮게 보여요. 발아래 많은 것들이 있지요. 모래도 있고, 개미도 있고, 쓰레기도 있고, 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사람도 있죠. 조금 더 높은 시소라면 낮은 담장도 보일 거예요. 세계를 인식해요. 아래를 내려다보며, 나보다 낮은 것들을 보며 흥미로운 기분을 느껴요.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높이를, 이 무게를, 위로 올라앉은 것처럼, 가볍게 허공으로 뜨는 것처럼, 모든 것을 가벼이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쉬워요. 모든 게 내 생각대로 되어줄 것만 같아요. 손톱도, 머리카락도, 표정도, 날씨도, 기억도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아요. 아래에 있는 것들은 작을 뿐이에요. 나는 내려다보면 돼요. 그것들을 발판삼아 위로 오르면 그만이에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난 무신경해질 수 있어요.
saw. 나쁜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선의를 당연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 조금 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뎌지고 무감해지는 사람들이 있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착하고 나쁜 것의 기준이 개인적이라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을 내릴 수 없는 세계라 감사합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 알고 있습니다. 나는 봤던 사람입니다. 나는 내려가 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높아 보입니다. 내 발에 닿은 모래도, 그 알갱이는 큽니다. 세계를 인식합니다. 같은 모양을 다르게 보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잠시 왔다 갔던 것뿐인데, 나는 어느새 시선이 바뀌어있습니다. 건물도, 바람도, 나무도 모두 다 멀게 느껴집니다. see가 saw로 바뀐 시간만큼이나 금세 사라질 것을 압니다. 무겁습니다. 발 구르기를 힘차게 해 다시 올라갈 일만 남았지만, 발바닥이 무거워졌습니다. 옆에서, 친구를 때리는 아이를 봅니다. 아이의 머리를 내리치는 어른을 봅니다. 온몸으로 뒹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구토와 술과 욕지거리가, 그게 아니면 속임수와 배신과 환멸이 모래알갱이 하나하나에 박혀있습니다. 뻔뻔해지고 싶습니다. 모르는 척 다시 see가 될 것만 상상합니다. 세계를 인식합니다.
세상을 see와 saw로 인식합니다. 보고 봤고 또 다시 보고 봤습니다. 난 예민하고 뻔뻔합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난 치킨을 뜯으며 동물학대 반대 운동에 서명합니다. 아이에게 위로 받으며 시끄러운 아이를 짜증 가득한 눈으로 쏘아봅니다.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사이에서, 아는 것만 많아지려고 기웃댑니다. 그리곤, 다시 알지 못하는 척 기만합니다. 사랑과 경계를 한 곳에 둡니다. 믿음과 의심을 하나로 묶습니다. 나를 보호하지만 내가 망가질 것을 상상합니다. 변태입니다. 알 수 없는 생물입니다. 매번 다른 선택을, 일관성 없이 해내는 것을 보고 희열을 느낍니다. 그리곤 일관성의 가치를 운운합니다. 진솔함을 말하며 연기의 묘미를 파악합니다. 앙큼한 몸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단 한 가지, 지켜야 할 것은 있다고 봅니다. 나로 사는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하는 것. 그것들엔, 거짓이 없다는 것입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을 것이란 말입니다.
날이 바뀌어 있습니다. 어느새 2018년 3월 19일 오후 1시, 이것은 찰나입니다. 사라집니다. 일관되지 못한 것들만 넘치는데 나라고 같을 이유는 없습니다. 노력할 뿐입니다. 이 모든 건, 내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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