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자 May 23. 2018

<계속해보겠습니다> -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고.

-삶을, 사랑을, 계속해보겠습니다.


세계는 커다랗다. 세계는 개인을 품는다. 우린 세계와 빨대를 양쪽에 나눠 물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빨고 뱉으며 산다. 긍정도, 부정도, 회피도, 비관도, 무료도 번갈아 한다. 반복되는 것들이 개인과 세계를 만든다. 세계는 우리를 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움직인다. 삶은 계속되고, 우린 삶을 계속한다.

소설은, 소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라는 궁핍하고 사소했던 유년시절을 덤덤히 풀어낸다. 이 시기, 소라와 나나의 정은 조용히 쌓인다. 이것은 그들이 단순히 자매이기에 형성된 건 아니다. 그들의 무기력하고 약한 어머니 애자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아름답고 친절하지만 무기력하고 깊은 공허에 잠긴 애자 곁에서, 나나와 나(소라)는 그녀를 방해하거나 귀찮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먹는 것 입는 것을 어떻게든 우리끼리 해결하며 작고 조용한 짐승처럼 지내고 있었다.’ (황정은-계속해보겠습니다 중)


소라와 나나는 애자 덕분에 나기와도 친해진다. 소라와 나나 옆집에 살던 나기와 나기의 어머니 순자씨. 그들 또한 소라, 나나와 식구다. 소라와 나나가 어린 시절, 마음이 아픈 애자를 대신해 순자씨는 아침마다 나기뿐만 아니라 소라와 나나의 도시락도 함께 준비했다. 나기와 소라와 나나는 모두 순자씨의 도시락을 먹고 자랐다.


‘뼈에도 나이테라는 것이 있다면 나기네 밥을 먹고 자란 시절의 테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뭐랄까, 나기와 나나와 나(소라)는 말하자면, 한뿌리에서 자란 감자처럼 양분을 공유한 사이, 라고 말할 수 있을까.’ (황정은-계속해보겠습니다 중)


책은 소라와 나나, 나기,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런 구성도 재미를 더하는 요소 중 하나다.) 소라라는 부족, 나나라는 부족, 나기라는 부족은 명백히 나누어져 있지만 조금씩 맞닿으며 혼재한다. 성글지만 서로 손을 붙들고 살아간다. <계속해보겠습니다>속 인물들의 관계는 느슨하다. 그들은 손을 맞잡는다 하여, 자신을 주장하지도 않고 쉽게 뻔뻔해지지도 않으며 함부로 위계적이지도 않다. 즉, 폭력적이지 않다. 무료한 관계로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은 한 뼘만큼 물러나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며 더 큰 세계를 맞는다. 나기가 물고기를 괴롭힌 어린 나나에게, 타인의 고통에 대해 얘기해주는 대목이다.


내가 너를 때렸으니까 너는 아파. 그런데 나는 조금도 아프지 않아. 전혀 아프지 않은 채로 너를 보고 있어. 그럼 이렇게 되는 건가? 내가 아프지 않으니까 너도 아프지 않은건가? (중략) 아파? 오라버니는 물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기억해둬, 라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이걸 잊어버리면 남의 고통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되는 거야. (황정은 - 계속해보겠습니다 중)


난 그들의 연대가 좋다. 어쩌면 세계와 인간에 대한 황정은 작가의 시선이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개인이 집단(세계)으로 연대한다 하여 모두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님을. 개인과 개인은 다양한 모양과 방식으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음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님을. 황정은의 인물들을 통해서 새삼스레 배운다. 이런 시선은 황정은 작가의 중편소설 <야만적인 앨리스씨>에 등장하는 대목에서도 느껴진다.


‘팽창하고 팽창해서 별들 간 간격이 엄청나게 멀어져버린 갤럭시에서 엘리시어는 한 점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한 점 먼지도 되지 않는 엘리시어의 고통 역시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 갤럭시는 좆같다.’ (황정은-야만적인 앨리스씨 중)


<야만적인 앨리스씨>에서 엘리시어가 생각하는 갤럭시(우주, 타인의 세계)는 개인과 사랑해야 하는 세계다. 개인은 사소하고 덧없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돼선 안 된다. 개인에 대한 연민이 있어야 하고 개인에게 뻔뻔해져선 안 되는 곳이 바로 세계라는 식이다. 그렇지 못한 갤럭시는 황정은의 인물에게는 무용하다.

<계속해보겠습니다>는 단순히 인물들의 ‘연대’와 ‘사랑’만을 전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각자 세계에서 현상을 바라보는 차이점, 그럴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인물들에 대한 이해도 더러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것은, 누구든 ‘계속’한다는 점이다. 이 책을 보는 독자들도 삶을 계속 이어간다. 태어난 이상 고통과 불행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면, 그런 곳이 세계라면, 타인의 세계는 반드시 필요한 조건일지도 모른다. 나의 세계를 넓혀 너의 세계를 만지고, 조심스레 더 넓은 세계를 맞는다. 죽기 전까지 서로의 숨을 마시고 뱉어가며 연대한다. 타인을 통해 세계(갤럭시)를 맛볼 수 있다면, 그 끝이 허무하더라도 우린 계속해서 각자의 세계를 넓히려 할 것이다. 새로운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계속할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