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자 Mar 11. 2019

고요할 정, 사랑 애 ㉷

<연재 소설>

*남자와 정애 : 그들의 정서     



  남자는 집 안 청소를 했다. 바닥에 떨어진 몸 때와 먼지를 쓸었다. 머리카락에서도 무언가가 떨어졌다. 나이가 들수록 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었다. 하고 싶은 것도 그다지 없었다. 더러워졌고 무료해졌다. 해야만 하는 일들만 몇 가지 앞에 놓였고 너무나 가까이 놓여서 당장 내일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오늘이나 내일이나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바닥을 비질하고 누런 밥이 굳은 채 눌러앉은 밥통을 닦았다. 서걱 서걱 소리가 났다. 수세미와 녹슨 스테인리스가 맞물려 나는 소리. 남자는 몇 번 수세미질을 하더니 그만두고 말았다. 그리곤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웠다.

  삼 주만에 하는 청소였다.     


  남자는 타버린 담배꽁초를 종이컵에 뭉갰다. 벽에 걸린 동그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봤다. 남자는 나이보다 더 늙어 보였다. 볼에는 곰보가 나 있었고 가느다란 실로 누른 듯이 주름이 져있었다. 양 손을 들어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손등과 손가락 뼈마디엔 작은 상처들이 여럿 나있었다. 여자와 정애를 떠나 사는 동안 줄곧 몸 쓰는 일을 해온 터였다. 굵직한 병을 얻은 적은 없었지만 성한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입에 머문 담배연기가 냄새를 뿜었다. 고약했다.

  남자는 자신의 외모만큼 늙어버린 여자를 떠올렸다. 사랑했다. 여자를 사랑했고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그랬다. 지금은 어떠한 마음이랄 것을 가질 수 없었다. 자신은 그런 입장이었다. 남편도, 아빠도 아닌, 그들과 약간의 공통점이 흐르는 생물로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도움이 되고 되지 않고는 그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는 무작정 죄스러워하는 수밖엔 없었다. 그것이 속죄라면, 그렇게 했다. 여자를 생각하면, 여자와 자신을 조금씩 닮은 정애를 생각하면, 자신에게 묻은 더러운 얼룩쯤이야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비해 별 것 아니었다.

  남자는 다시 수세미를 들었다. 조금 전보다 더욱 거세게 밥솥을 긁어냈다. 오래 버티던 굳은 쌀이 톡- 하고 떨어져 나갔다. 남자는 그곳에 새롭게 밥을 지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정애에게서 온 문자였다.     

엄마 보러 와요.    

 

  그는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옷을 골랐다. 보풀이 올라온 얇은 니트였다. 그마저도 옷걸이에 제대로 걸려있지 않아 어깨 부분이 지나치게 각져 있었다. 남자는 그것을 입고 대강 물을 묻혀 보풀이 난 곳을 꾹꾹 눌렀다.     


  남자는 병원에 도착해 면회 신청서를 작성하고 카드를 받았다. 바깥만큼이나 대학 병원 안엔 사람이 많았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었다. 정말로 병에 걸린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몇 없었다. 하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사라지는 목숨이 제일 많은 곳은, 병원이었다. 남자는 엘레베이터에 올라 9층을 눌렀다.

  병실 문을 여니 정애가 여자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었다. 남자는 옷을 가다듬고 다가갔다. 정애는 뒤를 돌아봤다. 남자는 정애와 눈이 마주치자 두 손을 그러쥐었다. 손 마디에 난 상처가 자꾸만 감각되었다.

  남자는 여자를 내려다 봤다. 아주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침대에 간격을 두고서였다. 여자는 깨끗한 얼굴을 하고 미동 없이 누워있었다. 남자가 사랑했던 모습에서 이십 년은 넘게 멀어진 모습이었다. 남자는 자신이 두려워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렸다. 너무나 오래돼서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여자와 정애를 떠났는지 분명치 않았다. 무언가가 두려웠고 무서웠다. 그것이 너무나 허망했다. 잘 닦인 마네킹처럼 누워있는 여자를 보니, 허망함과 부끄러움과 또 다른 층위의 두려움이 솟았다. 끝내 사람은 두려움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고, 누구라도 말해주길 바랐다.

    

  "밥. 먹어요."

  정애는 말했다. 남자는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손으로 입 주변을 쓸었다.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아보고 싶었다. 몸을 틀어 창밖을 바라봤다. 병원 바깥에서 작은 아이들이 소리를 지저귀었다. 남자는 정애를 따라 나섰다.

  

  정애와 남자는 병원 근처 국밥집에 들어갔다.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남자와 정애는 테이블에 마주 앉아 서로 다른 곳을 보았다. 정애는 젓가락 짝을 맞추었고 남자는 물컵을 세 잔째 비웠다. 순대 삶는 냄새가 가게를 메웠다.      


  "일은, 할만 하니."

  남자가 말했다.

  "그렇죠 뭐."

  정애가 답했다.     

  "병원비는 그간 어떻게 해결했니."

  남자가 물었다.

  "보험사에서 연금 나오는 것도 있고, 엄마가 모아둔 돈, 내가 번 돈, 꽤 돼요."

  "카페일로 어떻게 그게 충당이 돼."

  "내가 카페 일만 했겠어?"

  

  정애는 쏘아붙였다. 갑자기 호흡이 빨라졌다.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순대국이 나왔다.

남자와 정애는 아무 말 없이 수저를 들었다. 뚝배기 안에서 팔팔 끓는 순대국을 휘저었다. 아무래도 모양새가 이상했다. 고기는 몇 없고 국물은 너무 많았다. 밥은 이미 국에 말은 상태로 나와 질펀하게 풀어진 상태였다. 정애는 몇 번 수저를 휘젔더니 탁자 위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놨다.     


  "진짜 거지같아."

  남자는 정애를 바라봤다. 남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인간으로서 남은 염치, 그것은 할 수 있는 말이 다 떨어져 나간 상태에서 발휘되었다. 말을 아끼는 남자 앞에서 정애는 떨리는 눈으로 순대국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연락 끊은 이유 뭔지 알아요? 스무살 되자마자, 당신 도움 받는 거 하루빨리 그만두고 싶어서. 연락을 끊지 않으면 자꾸만 당신이 떠오를까봐. 엄마랑 나는 이러고 있는데 도움 받을 곳이 없어서 당신한테 손 벌리는 그거. 그 비겁한 마음, 그게 너무 싫었거든."     

  "미안하다."

  "근데 왜, 이러고 나타나? 사라졌으면 좀 더 뻔뻔해져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이런 거지같은 옷 입고 너덜너덜 해져서는 왜 내가 또 다른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건데?"     

  정애의 입 속에서 말이 뒤엉켰다. 울음과 단어가 방언 터지듯 튀어나왔다. 가게 안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 앞치마를 두른 중년 여자들이 큰 쟁반에 뚝배기를 몇 개씩 두고 날랐고 가게 측면에 마련된 놀이 시설에선 아이들 몇이 시끄럽게 뛰며 놀았다. 아무도 남자와 정애에게 관심 가지지 않았다.     


  "엄마를 좀 빌려줄 수 있니."

  남자는 말했다.

작가의 이전글 고요할 정, 사랑 애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