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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Apr 15. 2019

고요할 정, 사랑 애 ㉹

<연재 소설>

*스물일곱 정애 : 세상을 반으로 가르는 건 죽음일지도.  

  



  4월. 정애는 일찌감치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정애는 여자의 굴곡진 몸을 봤다. 필요한 부분에서 각이 져 있다기보단 여기저기가 튀어나온 느낌이었다. 침대에 붙어있는 느낌이랄까. 시선을 옮기면 앙상하게 튀어나온 뼈의 마디들이 도드라졌다. 자는 건지 잠든 것처럼 보이는 건지 몰랐다. 정애는 여자를 호명하지 못했다. 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다시 알고 싶지 않아서였다. 엄마, 엄마, 엄마. 나가지 못한 소리가 턱 아래쯤에 머물렀다.

  병실 내부엔 유난한 소리는 없었다. 지루한 드라마 대사가 흐르거나 스삭스삭- 하는 환자복 스치는 소리만 튀어나왔다. 가끔 시차를 두고 방귀 뿜는 소리나 식기류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정애는 병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표정 없이 입 운동을 하거나 눈을 깜빡거리거나 죽은 듯이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여자가 있는 병실은 그랬다. 에너지랄 것이 어딘가로 소멸해버린 느낌이었다. 무료한 드라마 소리로 그들이 뺏긴 에너지의 일부를 꾸역꾸역 메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전의 따가운 햇빛이 병실 안을 파고들었다.

  정애는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열한 시였다.    


  정애는 버스에 올랐다. 정애는 중간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창밖을 보며 빠르게 스치는 것들을 확인했다. 눈에 잡아두려 해도 쉽지 않았다. 너무 빨라 본 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정애는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 햇빛을 맞았다. 따뜻했다. 창문에 손을 대었다. 차가웠다. 너무 다른 온도였다.

  해가 너무 뜨겁다, 바람은 아직 찬데, 해는 너무 뜨겁다. 마치 해 아래만 있으면 어디든 따뜻하다고 착각할 것만 같다. 그러다 문득 바람을 맞으면 길을 잃은 아이처럼 거리 한가운데서 막막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정애는 생각했다. 막힘없이 달리던 고속버스는 분명 아주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도착하는 곳은, 해와 바람과 모래가 뒤엉킨 아스팔트 위였다. 정애는 바닥에 발을 딛으며 몇 번 발을 콩콩 굴렀다. 도착했다. 다시 이곳에, 와버렸다. 


  곳곳에 꽃과 사진이 있었다. 미세하게 향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조용했다기보단 고요했다. 아무도 목소리 낼 수 없는 곳이었다. 어떤 목소리도 용납해주지 않는 곳, 세상의 에너지로도 호기를 부릴 수 없는 곳. 정애는 그곳에 들어갔다. 작은 유리 칸 안에 반듯이 놓인 유골함들이 보였다. 유골의 주인은 알 수 없었다. 정애는 돌연히 숙연해졌다. 고개를 반쯤 숙이고 그들을 보았다. 

  없어진 자들이었지만, 때가 되면 저마다 나와 입 운동을 하기도 하고 체조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죽어서라면, 조금 덜 불안하게 생활하지 않을까. 무력한 체조처럼, 의미 없는 입 운동처럼,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는 자들처럼 말이다. 

  생각하며, 정애는 어느 즈음에 멈춰 섰다.

  빛날 염, 고울 희. 

  반듯하게 반짝이는 함 위에 깨끗한 글자로 적혀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와 버렸어. 그동안 자주 못 와서 서운했지."

  정애는 속삭였다. 창틀 넘어 도착한 볕이 정애의 등 위에 머물렀다. 은근히 따뜻했다. 정애는 유골함이 있는 틀을 살짝 만졌다.   

 

  "아빠가, 엄마를 빌려달래. 엄마가 죽을 것 같아보였나."    


  정애는 아차 싶었다. 결국엔, 이런 말을 하기 위해 이 곳에 왔구나. 마음이 복잡해지니 남의 죽음을 빌려서라도 평온해지고 싶은 건가. 현실의 문제 따윈 죽어버린 염희에겐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닐텐데도, 떠난 사람을 놓지 못하는 건 결국 남겨진 쪽에서 뿐일텐데도, 정애는, 이게 실수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싫지도 좋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염희야."    

  유골함 앞, 엄지손가락만한 액자에 꽂힌 사진이 보였다. 염희는 웃고 있었다. 바람에 날린 앞머리가 제멋대로 갈라져 이마를 헤집었다. 머리위엔 벚꽃 하나를 꽂은 채였다. 정애는 염희 사진을 보며 웃었다.     


  본격적으로 봄이 오기 전이었다. 교복을 입었다. 4월, 염희가 죽어버리겠다던 한 달을 모른척 넘기고, 정애와 염희는 강둑을 걷던 중이었다. 할매와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가는 길에 이런 강둑이 있다면, 지금보단 조금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꽃이 날려 염희 머리 위에 앉았다. 정애는 그것을 보고 꽃을 집어 염희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래도 이런 것들이 있어서,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한 순간도 있을지 모른다고, 정애는 말했던 것 같다.     

  "정애야, 마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니."

  염희는 말했다.

  "모든 게 마음따라 달라져서?"

  정애는 물었다.

  "우리가 그냥 타임머신 같은 기계라면, 시간에 따라 마음을 고치고 못을 박고 나사를 조이고 그럴 수 있다면, 모든 일이 완벽하게 돌아갈 것 같아."

  염희는 말했다.

  "그건 그렇지. 그래도, 이런 날씨를 보고 따뜻하다고 생각하진 못할거야."

  정애가 말했다.

  "좋아하는 것들까지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망가지면 그땐 사라지는 것 뿐이야."

  염희는 구멍난 팔뚝을 만지며 말했다.

  "사진 찍어줄까." 정애가 물었다.

  염희는 아무 말 없이 손에 쥐어진 꽃잎을 머리에 다시 꽂았다. 한 손으론 앞머리를 매만지며 나머지 한 손으로는 브이 표시를 했다. 정애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 핸드폰을 꺼냈다. 카메라를 누르고 프레임 안에 잡힌 염희를 바라봤다. 기계따윈 만들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즐거워서인지, 행복해서인지, 행복해지고 싶어서인지 모를 웃음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유가 없을 수도 있는 웃음. 이유가 없을 수 있다는 건, 기계가 아니어서일지도 모른다고, 정애는 생각했다.    


  창틀 넘어 도착한 볕이 정애 등을 타고 올라 머리 부근에 올랐다. 정오가 됐을 즈음이었다. 정애는 돌아섰다. 다시 또 오겠다는 말은, 이곳에서도 허용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죽은 이를 앞에 두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버리는 건 그들을 아예 궤도를 넘어 사라진 존재들이라고 묵인해버리는 것 같았다. 그들도 분명 살아있던 존재고, 어딘가에서 누구에게서든 각인됐을 사람들이었다. 외롭게 가버린 사람이든, 아무에게도 존재를 들키지 못한 사람이든. 누구도 함부로 그들의 궤를 다른 곳에 그려넣을 순 없었다.

  정애는 밖으로 나왔다. 한낮의 볕이 직선으로 내리꽂혔다. 카페 출근시간까지 몇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이유없이 구영이 떠올랐다. 느닷없는 감정 따위에 당하는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정애는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구역질 날만큼 지긋지긋해 마음을 반으로 갈라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결국 늘 지는 쪽은 사람이었다. 구영의 번호를 눌렀다. 전화음이 더디게 느껴졌다.    

  "여보세요." 구영의 목소리.

  "구영씨, 만날까요. 만나요. 우리." 정애의 다급함.

  "정애씨, 무슨 일 있나요?"

  "구영씨, 친구가 죽었어요."

  "언제요?"

  "오래 전에요. 근데요, 난 아직도 지금 그 아이가 사라진 것 같아요. 그냥 옆에 있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 같아요. 적응이 안 돼요. 이게 적응이 될까요. 이게 정말, 적응이 될 수 있는 걸까요."

  "정애씨."

  "이건요, 적응할 수 없어요. 사람이 아무리 어디에서든 적응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해도, 난 안 돼요. 적응을 못하면 도태된다고 하죠. 난 이미 다른 시간 속에 사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아왔어요. 내가 사는 곳이 구영씨가 사는 곳이 맞나요. 우리가 어떤 부분에선 맞닿을 수 있나요."

  "정애씨, 진정해요. 만나요. 어디에요."

  "내가 갈게요." 정애가 말했다.

  "정애씨, 이제 내 이야기도 들려줄 때가 된 것 같아요." 구영이 말했다.    

  

  "만나고 싶어요. 구영씨를요. 보고싶어요."


  정오의 볕은 모든 것을 비출 것 같았다. 해가 비춘 곳을 기점으로 반쪽엔 그늘이 졌다.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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