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로 드러나는 당신의 무지와 불안
언젠가부터 심심치 않게 상대방의 mbti를 묻는 문화가 생겼다. 당연히 자신의 mbti에 대해 먼저 궁금증이 생기면서부터다. mbti가 이렇게까지 인기를 끄는 이유는 4가지의 혈액형으로 인간을 분류하는 것보다 조금 더 신빙성이 있어보이고 일종의 테스트를 통해서 도출된 결론이기에 쉽게 믿기에도 좋아서인 것 같다.
mbti를 궁금해하는 인간의 속내에는 무지와 불안이 있다. 자기 자신과 상대를 알고 싶지만 깊게 고민하기 전에는 대체 어떤 인간인지 알기 힘들다. 자기자신을 아는 것에도 꽤 많은 노력과 사유할 시간을 갈아 넣어야 하기에 사람들은 보통 단시간에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에 더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단시간에 상대를 파악해야 그에 맞게 내 행동을 정할 수 있고, 내 행동의 범위를 정할 수 있으며 내가 어울려도 괜찮은 인간일지 아닐지 무의식중에 가늠할 수 있다. 사실 혈액형뿐만 아니라 mbti로도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을 쉽게 정의내리기엔 한참 부족한 것을 알면서 약간의 정보들을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안심한다.
그리고 이런 불안과 무지에서 나온 행위를 '재미'를 위해,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해 한 행동으로 포장한다. 실제로 잘 모르던 무언가를 알아가는 건 무지와 불안을 극복하려는 시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재미를 주기도 하니까. 긍정적인 이유에만 초점을 두고 하나의 '놀이'처럼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mbti는 놀이도, 친해지기 위한 수단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아무 거리낌없이 mbti를 신뢰하는 순간, 혹은 거창하게 신뢰까진 아니어도 일상에서 사사롭지 않게 쓰게되는 순간 우리에겐 알게 모르게 편견이 생긴다. 특히나 요즘 미디어에서 그런 편견을 부추기는 콘텐츠들이 제한없이 양산되는 것만 같다.
방금 유튜브에서 단편극을 찍는 유튜버의 작품을 보고 왔다. mbti가 극명히 대조되는 두 사람을 출연시켜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물론 실화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기에 각색이 많이 들어갔고 허구가 거의 대부분이겠지만 유독 두 mbti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해 보여주는 연출 방식에 아쉬움이 남았다.
정말 그 연출자도 인간을 mbti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고 여기는 지 궁금했다. 이런 콘텐츠는 가뜩이나 미디어에 약한 사람들에게 편견만 더 공고히해주는 역할을 하진 않을까 우려도 되었다. 특히나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청소년인 것을 감안하면 청소년 시기에 불안정한 모습들, 부족하고 치기어린 모습들이 전부 타고난 mbti의 전형으로 대표되는 것만 같아서 두렵기도 했다.
진짜 그 대상인 청소년들이 이 영상을 본다면 자아가 아직 약한 누군가는 안 좋은 편견의 피해자가 되거나 아니면 그런 편견을 더 곱씹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혈액형으로 인간의 성격을 분류하던 문화가 일본에서 왔다고 한다. 사람의 심리와 마음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렇게 변질되어 간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차피 살면서 평생 내가 인연을 만들어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을 만날 때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하는 힘조차 들이기 싫어서 mbti로 인간을 구분하는 걸까. 그리고 꼭 사람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할까? 그 사람과 교류하면서 느껴지는 부분, 그 사람의 성향 등을 고려해서 조심할 부분은 조심하고 서로 예의를 갖춰 대하면 되는 것 아닐까? 물론 인간관계가 정말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mbti로 사람을 구분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뭘까. 그렇게 구분한다한들 내가 짐작한 것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있나?
사실 이렇게까지 걱정할 일은 아님에도 우려되는 이유가 있었다. 단순히 mbti를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고 알아보는 단계 정도로만 활용했다면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i성향은 무조건 내향인,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남들이 이끄는 분위기에 줏대 없이 따라가기만 하는 사람 인것처럼 묘사하는 콘텐츠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i성향은 자기 의견도 표현할 줄 모르며 상대가 무례를 범했을 땐 끝까지 아무 말 없이 참다가 조용히 손절하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너무나도 쉽게 씌여놓았다. 그리고 그런 i성향의 모습이 '답답하고' '찐따같고' '약하다'는 편견이 여지없이 쌓였다.
E성향은 어떨까? 미디어에선 E성향을 예의도 없고 배려도 없고 조심성도 없는 '사이코 패스'또는 '소시오 패스'나 '나르시시스트' 좀 더 약하게라면 '이기주의자'정도로 묘사하는 콘텐츠가 차고 넘친다. mbti영상만 찾아 본 것도 아닌데 그냥 어떤 영상이든 성격에 관련한 영상만 보다보면 E를 이렇게 묘사하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에 달린 댓글들 또한 가관이다. 세상의 사람들을 전부 I와 E의 성향으로만 뚝 나누어서 '내향인'인지 '외향인'인지, '답답한지' '무례한지', '약한지' '악한지’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좋은 성향에 집중해서 사람을 보아도 인간관계는 힘든데, 부정적이고 안좋은 면에 집중을 해 그것을 더 극대화 시키는 모습이다. 심지어 그런 모습이 전부 i와 E로만 나눌 수 있는 모습이 아님에도. 그냥 사람마다 다른 것이고 상황마다 다양한 모습이 나오는 것인데.
더군다나 아직 어린 아이들은 성인보다도 더 자아가 유연하고 아직 정립되지 않는 사유들이 많아서 그들을 mbti로 구분해버리는 건 조심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언제나 바뀔 수 있고, 상황과 주변인들과 스스로의 성장에 따라 변모할 수 있다. 더 좋은 모습으로 성숙해질 수도 있고, 안타깝지만 더 안 좋은 모습으로 퇴보할 수도 있다. 이건 타고난 mbti의 영향때문이 아니라 '나고 자란 환경'과 그 환경 안에서 얼마나 스스로와 잘 싸웠는지를 주관하는 개인의 '내면 갈등'의 영향일 가능성이 더 크다.
제발 앞으로는 미디어에서든 사람들 사이에서든 mbti나 혈액형으로 인간을 분류하고, 심지어 부정적인 모습에만 초점을 맞추고 편견을 쌓아가는 일은 없길 바란다. 그런 미디어의 양산에 다치는 사람은 분명 생기고 마음을 더 닫거나 비뚤어진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생길 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들은 그래서 항상 성숙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늘 조심해야 한다. 단지 화제성만을 위해서만이 아닌 좀 더 고민하고 공부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창의력을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도 강요할 수 없는 순전한 내 바람일뿐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