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자 Dec 26. 2016

서른 아홉 번째 잔 - 어긋나다

매일매일 글쓰기

주제: 어긋나다

그렇게 나와 그는 어긋났다. 틈만 나면 가정을 꾸려서 아이를 낳고 너는 빨래 나는 청소 혹은 나는 돈을 벌어오고 너는 그 돈을 쓰고 같은 말만 되풀이하던 그와 나는 태생부터 다른 생각을 하는 생명체였다.
 일 하지 않아도 돈을 벌어들이는 그의 통장, 찾아서 공부하지 않아도 지식을 쌓을 수밖에 없는 그의 생활반경, 수저는 물만큼 물었지만 단 한 번도 은수저로 내려온 적이 없던 그의 인생식사까지. 감상평이나 후기를 보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짓이라 생각하는 그와 달리 단 한 번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여러 후기를 악착같이 살핀 뒤에 금같은 돈을 떨어뜨리는 나. 그에게 후회하지 않는 것은 하고싶은 것을 아무 제약 없이 마음대로 하는 것.
 좁혀지지 않는 그와 나의 거리 앞에서 남아있는 자존심을 챙기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기대서 하는 결혼은 끔찍히도 싫다는 것으로.
 그래서 언제나 그가 부르짖곤했던 결혼생활은 내게 있어서 그저 빚쟁이 신세로 전락하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내가 태어난 환경과 인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순 없었다. 인생에 보쌈은 없었다.
 그나마 배워먹은 공부로 밥벌이를 하고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일이었고 내가 가야할 길 앞에서 그는 그저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함께 나눠쓰기도하고 남는 쌈짓돈을 모아가자는 착실한 학창시절의 노래를 부르짖을 뿐이었다.
 공허한 노랫소리였지만 그 멜로디는 달콤하기까지했다. 그렇게 감성의 세계는 미칠듯이 달콤하다. 언제고 빠져도 빠져나오기 힘들만큼 현실적이지 못하고 솜사탕처럼 성글게 이어진 실위에 두둥실 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준다. 깨기 싫은 꿈이었지만 절대로 꿔서도 안 되는 꿈이기도 했다.
 천진한 그의 노랫소리가 귀에 웅웅 맴돌았다. 현기증이 났다.

작가의 이전글 서른 여덟 번째 잔 - 무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