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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Dec 30. 2016

마흔 한 번째 잔 - 의견

매일매일 글쓰기

광진이는 항상 의견을 물었다. "네 의견이 그래서 뭐야?" 정확하고 명확한 해답을 바라는 대화법만을 신청했던 광진이. 광진이는 알고 있었을까. 사람의 마음은 의견이 아니라는 걸. 남자친구에게 서운해진 마음을 털어놓는 건 단순히 의견을 표명하는 것처럼 간단하고 멋진 일이 아니라는 걸.
 그의 의견이라는 말은 어쩐지 우리 사이를 조금은 더 멀어지게 만드는 새로운 싸움의 종류가 되기도 했었다. 그에게서 의견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고기를 덜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것처럼 아직 정리도 안 된 마음을 단어로 뱉어내야했다.
 내게 있어 이것은 폭력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가 내게 베풀었던 사랑의 모든 종류를 생각해내도 이럴 때마다 그의 얼굴은 야누스처럼 바뀌어버리는 느낌이라는 걸 그에게 전해야했다. 이 또한 의견으로 말해야하겠지.
 그렇게 끝난 토론뒤엔 호기롭게 기세등등해진 광진이의 희미한 미소만이 남았고 내겐 무엇이 남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그가 원했던 건 의견따위로 자신을 이해시키고 납득시키는 토론의 장을 여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종료시키는 방법은 마음을 조금씩 거둬가버리는 방법밖엔 없었다.
 그렇게 내게 남은 것 없이 오늘의 이별을 맞았다. 어쩌면 남은 것이 없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이별을 선택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매일매일 글 쓰기는 남기고 싶은 것만 가끔씩 올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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