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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Oct 02. 2016

여섯 번째 잔 - 오늘도 '습관적으로'

하지만 '청량하게'

 전 요즘 ‘습관적으로’ 카페에 갑니다. 글쓰기에 적절한 장소를 찾아다니거든요. 카페만한 데가 없더라고요. 적당히 시끄럽고 적당히 조용한 곳. 그리곤 ‘습관적으로’ 아메리카노를 주문합니다. ‘습관적으로’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찾아서 앉아버리고요. 그렇게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글을 씁니다.

     

 그러고보면 습관이라는 게 무섭게도 제 생활속에 자리잡고 있더라고요. 언제든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법도 한데 절대로 깨지지 않는 채로 매일을 그렇게 당연한 듯 함께합니다. 그래서 사실 권태로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에요.


     

 그래서 전 종종 새로운 음식, 새로운 장소를 선택합니다. 예를들어 군것질을 좋아하니까 새로 나온 과자, 새로 나온 음료를 먹어보기도 하고 활동적인 걸 좋아하니까 시도해보지 않았던 여행지, 스포츠 등을 도전하기도 해요. 습관에 매료되는 것은 왠지 시간을 때우듯 사는 것 같거든요. 세게 말하면 이렇게 표현이 되네요. 거창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하던 대로 하고, 살던 대로 사는 건 그냥 재미가 없어요. 제게 있어서 변할 필요 없는 습관은 잠 자는 습관, 돈 쓰는 습관, 말 하는 습관이면 충분한데요, 사실.

     

 물론 습관을 깬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만 있었던 것은 아녜요. 기존의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위험수위도 어느 정도는 발생했어요. 부작용이라고 할까요. 삐까뻔쩍한 포장지에 싸여 새로 나온 과자가 실상 맛이 없었던 적도 있었고, 낯선 여행지에서 차 시간을 잘못 알아 한 밤중에 길거리를 헤맨 적도 있었고, 기대를 하고 나갔던 소개팅에서 거품만 가득했던 대화로 아쉽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이런 부작용마저도 몸에 좋은 약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상황에 놓였을 때 저의 몰랐던 모습을 마주하기도 하고 어색한 환경에서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전 참 재밌거든요. 겁도 나고 가끔은 제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그런 것들이 있어서 제 인생이 조금은 더 맛있는 음식이 되어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것 같아요. 데일 걸 알면서도 손을 갖다대고, 타버릴 걸 알면서도 매력적인 빛으로 들어가는 하루살이 같은. 언제나 주광현상을 경험하며 사는 인생이 사실 제겐 로망입니다. 크나큰 소심함과 적절한 현실감각으로 현상유지는 하고 있지만요.



 어쩌면 우린 습관과 깨어진 습관 사이의 간극을 매우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안전하게 지켜온 습관과 그 조화의 틀을 깨버림으로써 얻게 되는 짜릿한 청량감, 그 사이의 끊어진 다리를 봉쇄하려는 움직임으로요. 습관을 쫓으면서 습관을 깨는, 그리고 그 괴리를 매우려는 노력으로요. 무엇도 정답인 삶은 없다고 생각해요. 본인에게 맞는, 본인이 선택한 삶이 가장 최선의 삶이 되는 것일 뿐.

     

 역시나 선택권을 많이 넓혀놔도 돌아오는 곳은 일상이지만 그리고 전 또 바보처럼 권태를 느끼고 깨려는 시도를 할거예요. 그럼에도 결국 완전히 깨버리지는 못하고 소심한 변화만을 티 안나게 주기도 할테고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조금의 청량감을 줄까합니다.

     

 아메리카노 대신 바닐라라떼를 먹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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