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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Sep 30. 2016

다섯 번째 잔 - 여름은 가는 중, 가을은 오는 중

'지나간' 사랑의 경계 위

여름은 가는 중, 가을은 오는 중.

 9월 말에 어울리는 세 번째 계절, 가을이다. 묶었던 머리를 풀고 접었던 바짓단을 내린다. 아메리카노는 아이스에서 핫으로 바뀌고 게스트하우스는 성수기에서 비수기로 바뀐다. 에어컨 덕분에 닫혔던 창문은 다시금 열리고 짧았던 밤은 짧은 낮에게 인사를 고한다.


 모든 것엔 변화가 있다. 그리고 그 변화에 앞선 경계가 있다. 경계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은 계절로 따지자면 반팔을 입고 손엔 가디건을 쥔 사람이다. 경계라고 하면 떠오르는 건 단연 사람이다. 그리고 사랑이다. 그것도 ‘지나간’ 사랑이다. ‘지나간’이란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해보자면 힘없이 사라져버린 끝난 경기이다.


 그렇다면 지나간 사람의 흔적 앞에서 망설이는 우리의 발걸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힘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라면 경계 앞에서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경기가 게임이 끝났다고 바로 안면몰수 안녕! 해버리나. 적어도 수고했다며 악수나 포옹정도는 하지 않나. 어제의 내가 만들었던 나를 가장 가까이서 공유했던 사람, 그 사람은 단순히 내가 아꼈던 사람 그 이상의 역할을 했다. 누군가를 마음에 품을 때 나오는 나의 모습, 나의 생각, 나의 행동에 대해 또 다른 2차적인 사랑을 시작하게 했으니까. 결국 내가 사랑하는 사람 덕분에 나를 더 알아갔으며 거울 앞에 선듯 서로가 마음을 나눴다. 지나간 사랑은 어찌됐든 그랬다. 그리곤 지나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은 마치 아직 다 오지 않은 가을처럼, 이미 다 가버린 여름처럼 알 수 없는 계절의 경계 위를 살짝 걷는다.



 어느 순간 우리의 모습을 돌아봤을 때 숙연해지는 건, 걸어온 길에 대한 아름다움 덕분이다. 생각의 골이 깊은 사람이든 단순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지나온 날들을 생각해 봤을 때 우리는 단 한 가지 감정만을 느끼진 않는다. 그랬다면 애초에 관계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갈수록 알아가는 사람이란 것은, 정말로 사람이란 사람은 생각만큼 복잡하고 생각보다 찌질하며 생각 이상으로 단순해서 멋지다는 것이다. 경계 위를 걷는 사람이든,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이든 사랑 앞에서 우린 모두 그저 그런 사람이고 소박하게 아름답다.

 그래서 언제나 경계 위에 있는 나지만 결국엔 그 경계를 넘는 것도 나였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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