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 & Cozy Nest 프로젝트 | D-8
Cat & Cozy Nest 프로젝트 | D-8
새로운 시작은 이전의 시작이 끝나야 올 수 있다.
독일인 친구가 얼마 전 퇴근길에 내가 생각났다며 해준 말이다. 내가 생각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독일에서 산 지 곧 만으로 8년이 되는 내게 처음으로 나만의 집이 생긴다. 새로운 시작이 설레이기도 하지만, 한편 애정이 가득했던 지금 집과의 이별이 자꾸만 슬퍼진다. 그래서 그 설레는 “새로운 시작”이란 부분에 집중하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말만 사실 거창하게 프로젝트지, 시루, 보리 그리고 나의 아늑한 집을 천천히 만드는 과정을 기록해 보는 거다. 그리고 그 집에서 혼자서도 평온한 마음을 찾아보는 그런. 무튼 요지는, 매번 용두사미가 되고 나는 나의 시작들을 이번에는 꼭 꾸준히 해나가서, 나중에 내가 돌이켜봤을 때 이 시기를 내가 어떤 마음들로 버텨냈는지 볼 수 있는 기록을 남기겠다는 것.
이사가 결정되고 나서, 사실 막막하기만 했다. 내 막막함의 근원은 3개월 퀸디궁(계약종료통보) 기간과 집의 최소 계약기간 2년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집을 지원했지만, 30군데를 연락하면, 한 2 군데 연락이 오는 정도로 집을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자신감이 뚝뚝 떨어졌다. (독일은 집을 면접 보듯 봐야 한다. Dataschutz(개인정보보호)에 무척 예민한 독일인들도 집에 지원할 때만큼은 3개월치 월급 명세서, 보험서류, 자기소개서 등 자처해서 제출한다.) 그때 친구 삔새가 “내 주위에 발이 넓은 친구가 너 얘기를 듣더니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방 구한다는 걸 올려줬어”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고맙기만 했지 사실 설마 거기로 찾으리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포스팅을 보고 Zwischenmieter*를 구하던 그 친구의 친구가 연락을 해왔고, 여러 이야기 끝에 그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Zwischenmieter(쯔비쉔미터)는 기간이 한정되어 있는 임대의 형태에 들어간 세입자를 뜻하는데, 독일의 일반적인 집 계약은 무기한 계약에 앞서 말한 계약종료 통보기간 정도가 정해져 있는 거라 한국과 달리 기간 한정 임대에 대한 용어가 따로 있다.
계약서를 쓰고도 믿기지 않았다. 진짜 집을 구했구나. 막막하기만 했고, 끝없는 후회만 저 멀리서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이렇게 또 일이 풀릴 땐 순식간에 와다다 하고 풀리는구나. 다행인 한편, 새로운 시작과 함께 와야 하는 끝이 정말 실감 났다.
그런 감상적인 기분들은 제쳐두고 이제 집도 계약했겠다, 하나씩 정리하고 또 준비하기 시작해야 했다. 역마살이 잔뜩 낀 사주들이 모였다는 우리 가족은 내가 기억하는 것만 10번을 이사했고 그전에도 두세 번은 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정말로 역마살이 낀 것인지 이사가 내게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단어였다. 그야말로 이사 조기교육으로 자란 뭐 이상한 자신감이 있달까. 그래서 8년을 산 독일에서도 벌써 4번째 이사를 한다. 고양이 두 마리를 데리고 혼자 하는 이사.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난이도 상의 이사를 하게 될 줄 알았는데, 다행히 가구를 많이 줄이고 갈 수 있게 되어 그나마 부담이 적었다. 인생은 놀랍게도 어찌어찌 힘들지만 살아지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대부분 포장이사를 하는 한국과 달리, 독일에서 우리 또래는 대부분 셀프로 이사를 한다. 트럭이나 벤 정도만 빌려서 직접 미리 싸둔 짐을 당일 친구들과 같이 나르는 그런 젊음과 체력으로 자금을 땜빵한 그런 이사. 거기에 독일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가 많아 도가니를 잔뜩 소모하는 그런 이사를 하곤 한다. 나도 이 전 집이 독일식 5층, 그러니까 한국식으로 6층에 엘리베이터 없이 살았던 지라, 지금의 집으로 이사오던 때에도, 그전에도 친구 찬스를 잔뜩 썼었다. 계단도 좁아, 힘겹게 이사를 했어야 해서 이 집엔 10년은 살라고 이사가 끝나고 고생한 친구들이 농담처럼 말했었다. 굳이 그래서는 아니지만, 나도 양심이 있어서 이번엔 이삿짐센터를 고용하기로 했다.
독일의 만능 웹사이트, Check24에서 구한 이삿짐센터와 이베이에 올린 공고를 보고 연락 준 현금 job업체를 두고 돈을 아낄 것이냐, 조금 더 주더라도 안전한 보장된 이사를 할 것이냐 고민하던 내게 독일인 직원이 말했다. “Better to be safe than sorry”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듣는 Phrase인데, 혼자 이사하는 데다 평일이라 친구도 못 올 테니 믿을 만한 옵션을 선택하라는 조언이었다. 원래 이별을 핑계로 돈 쓰는 거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쓰냐 하고 냅다 그 조언을 따라버렸다. 본래 나는 이런 데에서 알뜰살뜰 사는 걸 좋아하는데, 심적으로 힘들어 그런가, 더 이상의 스트레스를 본능적으로 거부해 버렸다.
이삿짐을 싼다는 건 내가 소유한 물건들을 , 그러니까 내 추억이 묻은 물건들을 하나씩 손에 쥐어본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이삿짐을 쌀 때 아주 오래 걸린다.
1. 박스를 들고 짐을 비울 곳에 자리를 잡는다.
2. 물건을 집어 들고 버릴 것인지, 가져갈 것인지 혹은 팔 것인지 결정해서 분류한다.
3. 물건이 깨끗하지 않다면 닦고, 깨질 수 있다면 포장한다.
4. 만약 그게 책이나 사진들, 편지라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추억여행에 빠진다.
4. 만약 그게 고양이 물건이라면, 오래간만에 시루 보리와 활용해 본다.
4. 만약 그게 자주 안 입던 옷이면 일단 입고 거울에 비추어 본다.
5. 잘 시간이 가까워지면, 정신을 차리고 채우던 박스만 마저 채우고 자러 간다.
저 만약의 조건에 걸리는 물건들이 꽤 많아, 자꾸만 샛길로 새서 이삿짐을 싼 지 1주일이 넘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사실 지금도 부엌짐을 싸다가, 남은 자리에 넣을 만한 물건이 마땅하지 않아(짐은 많다, 그냥 딱 맞아떨어지는 사이즈와 무게의 무언가를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는 거지) 이리로 와 마저 글이나 쓰고 있다. 그래, 마저 짐을 싸고 오늘도 얼른 자야겠다. 이제 겨우 월요일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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