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 키를 받았다. 안녕 내 새로운 보금자리.

Cat & Cozy Nest 프로젝트| D-3

by 채루에 Ruhe

Cat & Cozy Nest | D-3

짐은 화수분과 같아 싸도 싸도 끝이 없는데, 벌써 키를 받으러 가는 날이 왔다. 계약은 9월 15일에 시작이지만, 독일에서는 대부분 하루 이틀 전에는 여유롭게 키를 주곤 해서, 나도 13일에 키를 받기로 했다. 원래 살던 집에서 걸어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새 집이라 그런가, 키를 받으러 가는 길에 기분이 더 묘하기만 했다.


자주는 아니어도 종종 걷고는 하던 길이 앞으로 이제 내가 가장 자주 걷게 될 길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부웅 벅차올랐다. 사실 처음 집을 보러 간 날, 집의 구조나 가격, 위치, 크기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마음에 걸렸던 부분이 집을 “일단” 넘겨받는 거다 보니, 청소나 페인트 칠이 일반적인 이사와 다르겠다는 거였다. 특히 내 집주인 격인 Hauptmieter가 이사를 하기 직전에 가서 그런지, 아니면 8년 간 살았다는 생활감이 짙어서 그랬는지 그 급한 와중에도 아주 조금 망설임이 생겼었다.


그런데 집에 들어간 순간 걱정했던 것보다 너무 깨끗하게 청소해 주고 또 어떤 방들은 페인트칠까지 해줬음에 그런 걱정들이 바보 같았단 생각이 훅 들었다. (그래도 바보 같진 않다. 혼자 새로운 집을 구할 땐 조심해서, 걱정해서 나쁠 거 없다, 진짜로)


사실 한국에선 독립을 해보지 않아서 어떤 지 모르겠지만, 독일에서는 계약이 10/1일이면 보통 하루 이틀 전에는 집을 같이 둘러보고 하자나 특이점, 혹은 수리 계획이 있다면 함께 노트해 두고 같이 서명하고서야 키를 전달해 준다. 아 물론 신축이 아니고선 키의 양도 대단하다. 보통 건물 입구 키, 집 현관 키, 지하실 (Keller) 키, 그리고 우편함 키까지. 요새는 키를 통일하는 건물들도 있지만, 아직 나는 독일에서는 받아보지 못했다.


그래도 독일에서 Wohnungsübergabe-Protokoll*을 한 게 벌써 몇 번째, 새로운 집주인과 원만한 시작을 하고 싶은 마음에 늘 좋게 좋게 넘어갔던 게 지난번 이사 때 화가 되었어서 이번에는 이런저런 사진도 찍어두고, 동영상도 찍어뒀다. 물론 그러고 나서도 한 두 가지는 아쉽게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지만, 중요한 건 발전이 있었다는 거니까 하고 여전히 뿌듯해했다. 하지만 2주가 되기도 전에 엄청나게 중요한 걸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키를 전부 다 꽂아서 확인해보지 않은 것. 메인 키세트만 확인해 봤고, 스페어 키들은(보통 2~3개의 Key Set을 받는다.) 개수만 확인하고 사인을 했는데, 스페어 키 중에 하나가 전혀 엉뚱한 키였고,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스페어 키로 고양이들을 봐주러 온 친구는 전혀 들어올 수 없었다. 다행히 어찌어찌 해결은 봤지만, 이번에도 어처구니없는 점을 놓쳤다는 생각에 언제쯤 나는 꼼꼼한 어른이 되는 건가 싶었다.


Wohnungsübergabe-Protokoll(보눙스우버가베 프로토콜)은 키를 주고받는 날 집에 하자가 얼마나 있는지, 들어갈 땐 내가 만들지 않은 하자는 잘 기록해 두는 게 중요하고, 나갈 땐 들어올 때 기준으로 생활감 제외 물어내야 할 하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처음엔 좋은 게 좋은 거지 생각했다 뒤통수를 크게 맞았다.
발코니가 아주 작게 침대방에 달려있다. 그래도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 정도는 들어갈 사이즈로.

독일에서 처음 가진 내 공간


독일에서 산지도 벌써 8년, 이 집은 내 5번째 보금자리인데, 사실 처음 가진 내 독립적인 공간이다. 처음엔 회사에서 호텔을 지원해 준 2주 내로 급하게, 또 가난하고 어린 인턴의 용기와 간절함을 다해 구하다 보니 정말 어르신들만 사는 동네에 한 독일 노부부의 개조한 벙커에서 시작을 했었는데, 다정하시긴 했지만 종종 내 방이나 화장실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 보시곤 하고, 벙커를 개조했다 보니 내 집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 뒤로는 플랫메이트가 늘 있는 플랫쉐어링(WG)을 살아 공간을 공유했었고, 이 집이 그래서 내겐 처음 가지는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한국을 떠난 23살에서 항상 머물러 있던 기분이었는데, 이 날은 “아 그래, 내가 이제 30대 어른이지. 혼자 사는 어른.”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31살이 되어서야 가진 내 오롯한 집에서의 시작이 너무 기대된다. 이 투 룸짜리 집이 내게 어떤 1년을, 바라건대 더 긴 시간을 만들어 줄지, 그 계획이 마구잡이로 머릿속에 팡팡 샘솟기 시작했다.


안녕, 잘 부탁해.


키를 건네준 집주인이 나가고 나서,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 잠시 한숨을 돌렸다. 짐을 싸다 보니 이삿짐센터에 말해둔 것보다 짐이 많아, 이삿날까지 매일 조금씩 캐리어로 짐을 옮길 심산이었던지라 키를 받으러 가는 와중에도 29인치 캐리어를 가득 채워왔었다. 이사 준비기간엔 시간이 그야말로 금이다. 한 번의 방문도 보다 알차게 만들어야 한다. 그 짐을 풀고 간단한 청소를 하고 가려고 했는데, 막상 소파에 앉으니 이 낯선 공간이 내게 곧 보금자리가 되어줄 "내 공간"이라는 사실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푹 기대어 앉아 이 기분을 즐겨보기로 했다. 또 익숙해지면 다실 못 느낄 그런 기분이니. 마치 새 집과 인사하는 것 같이. 가구만 몇 개 덩그러니 있는 이 집을 또 내 취향이 가득 담긴 내 집으로 만들거니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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