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Cat & Cozy Nest 프로젝트| D-2

by 채루에 Ruhe

Cat & Cozy Nest 프로젝트| D-2Cat & Cozy Nest 프로젝트| D-2Cat & Cozy Nest 프로젝트| D-2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쯔비쉔미터, 그러니까 단기 계약(내 경우 13개월짜리)으로 들어오게 된 이 집의 원래 세입자는 오랫동안 베를린에 가서 살아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와중에 좋은 기회가 베를린에 생겼다고 했고, 모든 걸 다 두고 가기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우선은 이 집을 쯔비쉔을 내놓고 나간다고 했다. 그렇지만 내년 초, 그러니까 반년 뒤에는 돌아올지 베를린에 남을지 결정해서 알려준다고 했다.


침대도 램프도 두고 갔다. 매트리스는 직접 버리고 새로 사야 했지만, 침대 밑까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집의 어떤 가구들은 우선 두고 갔다. 대부분 돌아오지 않게 될 경우 내게 넘길 거라고 했고, 이전 집에서 가구를 나눠야 했던 내게는 사실 그야말로 딱인 소식이었다.


가구를 넘겨받는 걸 사실 좋아하지 않지만, 이 하나도 타이밍이 맞지 않은 이사는 내게 이미 큰 경제적 타격을 주었기에 가구를 이삿짐에 포함하지도, 사지도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대여기간은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집먼지 진드기 알레기와 고양이 두 마리라는 최고의 조합을 가진 내게 오래된 천 소파와 8년이 넘은 매트리스는 무리하는 감이 있어, 우선 매트리스라도 사기로 했다. 키를 받고 어른이 되었다는 기분에 도취된 나는 사실 조금 더 비싸더라도 이케아 말고 매트리스 전문점에서 누워보고 매트리스를 사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하루 날을 잡아 자전거를 타고 시내에 있는 매트리스 전문점을 돌았는데, 웃기게도 비교해 보니 결국 이케아가 가성비, 배송기간 그리고 다른 잡다한 니즈에 딱 맞아 결국 돌아 돌아 이케아로 돌아갔다.


나랑 가자, 이케아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유럽의 이케아는 대부분 약간의 시외곽에 있어 접근성이 크게 좋지 않았다. 도취된 어른의 기분과 달리 나는 사실 아직 무면허다. 반면 그런 나의 새 출발을 가장 가까이서 응원해 주던 친구 삔새는 독일 운전의 짬이 꽤 된다. 매트리스를 이케아에서 사려고 한다고 하니 선뜻 먼저, 카쉐어링으로 같이 다녀오고 나를 게 있다면 조금 짐도 나르자고 제안을 해줬다. 그녀는 내가 후회하고 돌아갈까, 새 출발을 머뭇거릴까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인가 순간 생각했다. 나는 혼자가 되고 더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은 여러 형태로 나를 응원해 주었다. 다른 도시에 살면서 내게 언제든 와서 홈오피스도 하고 일주일 정도 쉬다 가라는 언니는 한 달 반정도를 거진 매일 내게 전화해 줬다. 다른 언니는 한국에 갈 때 고양이들을 맡기고 가라고 걱정 말라고 해줬고, 또 어떤 친구는 출장을 갈 때마다 자기 집 키를 내게 주고 거기서 내 집처럼 지내라고 집도 내어줬다. 늘 바쁘고 여행 다니던 언니는 나를 데리고 훌쩍 파리 올림픽도 데리고 다녀와줬다.


슬픔이 잦아든 마음에는 벅차오름이 가득했다. 이건 고마움을 넘어선 벅차오름이다. 내 친구들이 나를 사랑하는구나. 학창 시절부터 있던 사랑받지 못할까, 버림받을까 하던, 내 기저에 깔려있던 불안이 비로소 자취를 감추었다. 불안이 사라진 자리엔 행복감과 이어진 안정감이 찾아오고 있는 거 같다.


티끌 모아 뒷좌석 가득


그렇게 키를 받은 다음날 삔새는 아침 9시에 우리 집에 차를 가지고 왔고, 이삿짐 센터 직원들이 조심히 다뤄줄지 확신이 없어 걱정인 식물친구들과 잔뜩 채운 캐리어 두 개를 차로 나르기로 했다. 식물을 다 내가 가져가기로 하긴 했지만, 하나 둘 씩 사 모았던 거고, 사실 죽인 애들이 살아남은 애들만큼 많아서 그렇게 까지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막상 식물들을 조심스레 차에 실어보니 뒷좌석을 가득 채운 건 물론이고 가장 키 큰 선인장은 앞좌석에 나랑 타야했다.


차로는 4분 거리의 위치의 새 집으로 가면서도 우리는, 선인장을 다리 사이에 두고 차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살짝의 호들갑과 함께 즐거웠다. 주말의 이른 아침 찬 공기와 함께 낭만이 마음을 간지럽혔다. 새 집 거실에 후다닥 식물 친구들과 캐리어를 올려두고, 지체없이 이케아로 향했다.

날씨가 유독 좋았던 날. 이케아는 갈 때 마다 설렌다.

타협없는 내 스타일의 매트리스


이케아에 오면 매번 정신이 혼미해져서 본래의 목적을 자꾸만 잊는 나지만, 삔새는 계속해서 쉐어카 대여시간을 내게 리마인드해주었다. 시간은 돈이다. 특히 대여해둔 차가 주차장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는 이 순간에는. 그래서 생각해둔 몇 가지만 확인하고, 집어들곤 거진 바로 매트리스 코너로 직행했다.


한국에서야, 부모님이 사주신 침대를 그냥 썼었고, 딱히 우리랑 매트리스를 고르고 했던 기억은 없다. 독일에 와선 집에 있던 매트리스를 그냥 Übernehmen(위버네멘)* 받아서 쓰거나 같이 사는 사람과 서로 스타일을 조정해서 타협된 스타일의 매트리스를 골라 샀었는데, 이번엔 사실상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쓸 매트리스를 내가 골라서 쓰게 되는 거였다. 난 작년에 30대가 되었고, 관절의 연약함과 소중함을 동시에 배웠다. 그래서 이 타협없이 오롯히 나만을 생각해 고를 매트리스가 매우 기대되었다. 20대엔 푹신하고 말랑한 매트리스를 선호했던 나지만, 어쩔 수 없이 주어졌던 침대들이 딱딱했고 나이가 들면서 그 딱딱한 침대가 오히려 더 편안하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특히 스프링이 아닌 매트리스는 쓰면 쓸 수록 내 몸의 형태가 배인 느낌이라, 여행다녀와 내 침대에서 자고나면 확실히 좋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매트리스 철학 강론이 되었지만, 30대 무렵이 되어 좋은 건 이런 거다. 내가 뭘 좋아하는 지, 뭘 더 편하게 느끼는 지 딱 알아서 찾고 피하고 할 수 있다는 것.

Übernehmen(위버네멘)은 영어로 Take over, 그러니까 한국어로는 넘겨받다 같은 뜻인데, 독일은 전 세입자에게서 다음 세입자에게 가구 등을 팔아서 두고 갈 때가 꽤 잦아, 집을 찾을 때Übernehmen(위버네멘) 리스트 여부를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아무튼, 삔새와 나는 딱딱하다고 표기된 매트리스는 다 누워보고, 또 다시 괜찮았던 것들만 다시 누워보고 하면서 취향과 버젯에 맞는 딱 좋은 매트리스를 찾았다. 큰 가구들 코너에는 있는 주문대에 가서 원하는 제품과 사이즈를 이야기하니 아래층 픽업지에서 보여줄 종이를 프린팅해줬다. 심지어 마침 9월에 독일 이케아가 Schlaf Gut을 슬로건으로 잠자리와 관련된 제품들은 할인을 하고 있던 덕분에 30유로 저렴하게 구매했다. 옆에 있던 삔새는 이걸 듣고는 나보다 더 신나했다. 이런 사소한 운좋은 모먼트들이 하루를 생각보다 많이 기분좋게 해준다. 아낀 돈 보다, 그런 기분 좋은 순간들이 더 소중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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