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 & Cozy Nest 프로젝트| D-0
D-day, Home sweet homeD-day, Home sweet home
생각보다 글쓰기보단 실제로 집을 꾸미고 손님을 초대하는 게 늦어져 이사하고 이 집에 산지 만 한 달이 지나서야 쓰는 이삿날의 이야기.
모든 이사가 그렇듯, 앞선 짐 싸고, 키를 받고 그 사이와 앞 뒤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일단 이삿날의 이야기가 하고 싶다. 긴 이야기는 천천히 풀어보자.
분명 몇 주간 부지런히 짐을 싼다고 쌌던 거 같은데도, 이사 전날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짐 싸기가 끝났다. 너무 졸려서 두통이 오고 근육도 늘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진짜 말 그대로 이를 악물고 짐들을 다 싸서 방에 모아두었다. 아침 8시에 이삿짐센터가 오기로 했어서 쓰러지다시피 침대에 누워 7시 반으로 알람을 맞췄다. 무거운 게 몸인지 마음인지 모르겠지만 그걸 생각할 틈은 없었다. 알람이 울리고 일어났는데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큰 가구/가전제품 같은 배달을 시키거나 하면 보통 근방에 다 와서 전화를 한 번 주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전화가 올 법도 한 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사실 그 전날 밤에 쓰러져 잠들기 직전에 마지막 점검 차원에서 이삿짐센터를 고용한 앱으로 들어가 봤는데, 전화번호 연동을 안 해놓은 천재적인 과거의 나 덕분에 업체에서는 전화번호를 두 차례나 물어봤었고, 내가 그걸 이사 전날 밤 12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답장한 것이 진짜 불안의 근원이었다.
잠을 거의 못 자 머리가 깨질 거 같은 와중에도 심장소리가 뒤에 들릴만큼 불안했다. 내가 전화번호를 안 준 탓도 있으니 이쪽에서 취소하면 어떡하지, 아니야, 그래도 그런 무책임한 상황이 없도록 계약서도 사인해서 넘겼잖아? 하고 불안해하던 와중에 다행히 여러 번 전화 끝에 겨우 연락이 닿았고, 상관없이 오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말을 듣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불안의 코르크 마개가 뽁 하고 빠지듯 다른 감정들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8시를 5분 앞두고 초인종이 울렸다. 감정은 접어두고 바짝 정신 차려 일할 순간이었다.
둘 만 오기로 했던 인부들은 셋이 왔고, 거실로 빼놓은 짐들은 1시간도 안되어 모두 차에 실렸다. 문제는 셋이 왔다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트럭 앞자리도 딱 세 자리라는 게 문제였다. 나랑 고양이들도 트럭 앞자리에 타고 가려고 했던 내 계획이 조금 틀어질 뻔했지만, 고양이들이 있기도 하고, 다행히 새 집이 도보로 7~9분 거리라 막내 인부 분이 흔쾌히 걸어서 가기로 해주었다. (심지어 독일의 지독한 일방통행도로 덕분에 그분이 먼저 도착해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집에 있던 레드불 4개 들이를 뜯어 아저씨들도 나눠드리고 나도 잠을 깼다. 화학작용은 놀랍도록 정확해서, 정신이 번쩍 들고 센티해지려던 기분도 쿵쿵대는 심장에 맞추어 한층 업되었다.
짐을 다 싣고 집을 돌아보고 아련해질 틈도 없이 아저씨들과 함께 새 집에 왔고, 새 집에 짐을 올리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역시 프로페셔널은 달랐다. 짐이 거의 다 올라오고 나서, 이베이로 가구를 팔았던 현금을 들고 대장 아저씨와 계산을 시작했다. 사실 공고를 올릴 때엔 가구들과 10~12박스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16박스와 생각 못했던 선풍기라던가 스탠딩 램프 같은 자잘한 가구들이 추가로 있었다. 아저씨는 원래 계약했던 금액보다 50유로를 더 불렀고, 사실 걸어와준 막내 친구-사실 대장아저씨를 빼고는 다 나보다 훨씬 어린 20대 초반으로 보였다-가 고맙기도 하고 아저씨와 스몰토크도 많이 했고 해서 팁을 줄까도 싶었는데,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냥 높은 금액을 내라고 하라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무엇보다 갑작스러운 이사에 이리저리 돈이 생각보다 많이 나갔었던 시기라 훅 마음이 돌아섰다. 계약은 그렇지 않았다고 하고, 그럼에도 짐이 더 많았다는 아저씨에게 정말 웃기게도 "난 정말 지금 너무 돈이 없고 많이 힘들어"라고 했더니 의외로 통쾌하게 웃으며 "그래, 그럼 원래 금액만 내"라고 해줬다. 똑 부러지는 척 확인증을 겸할 아저씨의 돈 받았음 인증 음성메시지도 왓츠앱으로 받아뒀다. 정말 독일 생활에 이리저리 데인 것들이 다 헛되지는 않았다 느꼈다. 몰라서 못했다기보다는 그런 걸 요청할 배짱이, 그런 걸 안 받아두면 얼마나 후회할지 교훈이 쓸모 있게 쌓인 거였다.
그렇게 8시에 시작한 이사가 10시에 끝났다.
전날 잠을 그렇게 못 잤고, 긴장도 풀릴 것 같아서 원래는 고양이 친구들 짐만 풀어주고 한숨 자고 일어나 짐을 푸는 게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마신 레드불 때문이었을까, 솟아오른 엔도르핀 때문이었을까, 누웠어도 잠이 오지 않고 빨리 짐을 풀고만 싶었다. 이삿짐이 이렇게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넘쳐나겠다는 에너지를 놀릴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바로 일어나서 짐을 풀기로 했다.
짐을 풀기 위해 우선 짐을 풀 자리부터 만들어야 했다. 이미 있는 수납공간들에 짐부터 풀까 하다가, 그러다간 하루 종일 이 산더미를 헤치고 다녀야 한다는 생각에 우선 가구들부터 제자리에 두기로 했다.
처음 이 동네에 이사 올 때 며칠을 서칭 해서 찾은 이 식탁은 여러 가구 중에서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가구다. 모양도 클래식함과 모던함이 잘 섞여있고, 지금은 색이 좀 바랬지만 내가 좋아하는 오크색에, 손님을 자주 초대하는 내게 딱 맞게 확장하면 6인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된다. 그렇지만 좋은 가구답게, 이케아 가구들에 비해 상판도 다리도 무거웠다. 다리 세 개를 다 조립하고 나서야 아뿔싸! 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마저 남은 다리도 조립하고 나면 이제 이 식탁을 뒤집어야 하는데, 이 식탁은 나 혼자 뒤집을 수가 없는 것. 상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혼자서 넘기다 보면 지렛대가 될 다리들이 부러질 게 분명했다. 전날 식탁을 해체하기 위해 둘이서 식탁을 뒤집을 때까지도 나는 이걸 다시 조립하면 뒤집기 위해 또 두 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그 생각은 친절하게도 조립을 거진 마치고 나서야 찾아와 줬다. 순간 멕이 탁 풀렸다. 혼자서 다 할 수 있을 거 같이 에너지가 넘쳐 훨훨 날겠다는 내게 마치 저 식탁이, "정신 차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라고 태클을 거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내게는 다행히 도보 거리에 (새로운 집에서도, 이전 집에서도) 사는 친구들이 둘이나 있었다. 외국에 혼자 사는 내게는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친구 H가 운이 좋게도 스케줄이 맞아 퇴근 후 와서 같이 식탁을 뒤집고 근처의 팔라펠(Fallafel) 집에서 간단히 저녁도 함께 먹기로 했다.
온 김에 집을 둘러보며 정말 더 도와줄 게 없냐던 친구 H에게 나는 염치도 없이 물었다. 염치는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이 가구 하나만 너희 집 캘러(지하실)에 넣어둘 수 있을까? 이 집은 지하실이 Hauptmieter(집주인 겸 메인 세입자) 짐으로 이미 가득이야." 친구는 흔쾌히 "그럼 지금 나를까?"라고 답해줬다. 사실 둘이 이걸 10분 거리의 친구집 지하로 나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이걸 빼놓으면 짐 풀기가 훨씬 수훨할 거라는 걸 알아서 냉큼 그러자고 했다. 착한 H는 앞장서서 가구를 가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계단을 내려와 한 블록도 가지 않아 깨달았다. 아, 난 참 나 스스로의 체력과 근력에 쓸데없는 자존심이 있었지. 가뿐히 해내리라 의심치 않던 내 생각과는 달리, 본래는 10분이 조금 안 걸리는 그 집이 영원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두 블록을 겨우 낑낑대고 가다 결국 친구에게 잠깐 Pause(휴식)을 갖자고 말했다. 가야 할 길이 한참이나 남았는데, 후회와 절망감이 다시금 또 훅 올라왔다. 그때 갑자기 길 건너편의 독일인 아저씨가 외쳤다. "Do you need help?(도와줄까?)" 지체 없이 대답했다, YES! 아저씨는 운동용 신발만 집에 올려다 놓고 내려온다고 했다. 이미 이 행운같은 순간이 믿기지 않아 친구와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그 순간 코너에서 다른 남자애가 물었다, "Should I help as well?(나도 도와줄까?)"라고. 그 작은 골목 교차로에서 독일인 아저씨와 (이탈리안이라고 나중에 알려준) 남자애가 우리에게서 가구를 넘겨받아 엄청난 속도로 들고 걷기 시작했다. 나랑 H가 했다면 한참을 걸렸을 거리를 5분 만에 도착했고, 아무런 대가도 바라는 것 없이, 좋은 하루가 되길 바란다며 또다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꿈을 꾼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난 이사 후 만난 친구들이 "그래서, 이사는 어땠어?"라고 물어보면,
온 세상이 응원해 주는 기분이야!
라고 대답해 줄 수 있었다. 진짜로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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