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 & Cozy Nest 프로젝트| D+1
전날은 휴가를 쓰고 이사를 했고 그다음 이틀은 홈오피스를 신청했다. 밤낮으로 빨리 짐을 풀고 이 집을 완성하고 싶어 출퇴근 시간을 줄이는 것도 중요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고양이들. 시루는 벌써 같이 세 번째 이사이고, 이사할 때마다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무던하고 적응력 빠른 고양이인데 반해, 보리는 조금 더 장소의 변화에 예민한 편이다. 더군다나 최근에 보리는 스트레스를 받아 오버그루밍(그루밍을 심하게 해서 자체적으로 털을 뽑음)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바로 다음 며칠은 함께 있고 싶었다. 고양이들이 오롯이 내 손에 맡겨졌고, 그 시작을 고양이 친구들이 보다 아늑하고 안정적으로 느끼길 바랐다.
이사 전 날 일종의 안정제 효과가 있다는 Feliway제품을 미리 고양이들이 제일 먼저 접할 침대방에 꽂아놨다. 다음 날 아이들이 왔을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주위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 중 써본 사람들이 효과는 정확히 몰라도 쓰고 있다고 했는데 나도 비슷했다. A/B테스팅이 어려운 경우다 보니, 사실 이걸 쓰니 고양이들이 덜 불안해한 거 같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내 마음에는 도움이 되었다. 사실 고양이들을 키우는 날들의 많은 순간들이 별반 다르지 않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이 작은 생명체들에게 내가 잘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위안이 필요해 괜스레 쓰는 에너지와 돈이 적지 않다.
헛수고는 아니었는지, 고양이들은 그날 밤 나와 Feliway가 꽂혀있는 침대방에서 평소와 같이 다리 사이를 비집고 와서 함께 첫날밤을 보냈다. 집을 보러 다닐 때는 한창 더운 여름이었는데, 이사를 마치고 보니 이제 늦여름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고 초가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날씨가 되었다. 발코니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생각보다 찼고, 새 매트리스에서 보낸 첫 밤은 조금 춥고, 생소했지만 고양이들이 함께 해주어 내 '집'에서 잤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늘은 어색하지만, 우리가 함께 살아갈 우리 집.
집 키를 받고 4일 뒤에 들어오는 이사이다 보니, 키를 받은 날부터 아마존에서 이것저것 바로 시켰는데, 다행히 모두 타이밍 좋게, 전에 왔으면 한 것들은 전에 오고, 이삿날 이후에 올 것들은 홈오피스를 하는 바로 다음날과 다다음날 도착했다. Feliway도 때 좋게 이사 전에 도착한 것들 중 하나. 나머지는 근무시간 내내 하나씩 도착했는데, 현관이 있던 집에서 현관이 없는 집으로 이사하니 고양이들을 못 나가게 하면서 택배 받는 것도 일이었다. 서양문화권은 다들 집에서 당연히 신발을 신는 게 기본값이리라 생각했던 나의 편견과 달리, 독일 가정도 대다수가 집 안에서는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것 같다. 물론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아파트에는 '현관'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런 독일에서 운이 좋게도 전의 집에는 현관 비슷한 공간이 있었는데, 중문을 닫아두면 고양이들이 나올 걱정 없이 현관을 열고 닫을 수 있어 편리했다. 아마 그런 집을 다시 찾긴 어려울 테니 적응해야 한다. 적응할 것이 참 많다.
첫날 넘치는 에너지로 짐을 혼자 뿌듯해할 만큼 풀었지만, 8년 독일살이 맥시멀리스트의 짐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다음 날은 녹초가 되어 일어나자마자, 재택을 하던 만큼 아직 잔뜩 풀리지 않은 짐들 가운데서 노트북을 펼치고 일을 해야 했다. 고양이들은 루틴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루틴이 없는 이 집에서 조금 혼란스러워했지만, 어쩌겠니, 엄마는 우선 너희의 사료값을 벌어야 한단다. 전 날 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완성해 창가에 세워둔 식탁 위에 짐들을 밀어 두고 노트북을 펼쳤고, 시루와 보리는 내 주위에 각자 편안한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마찬가지로 고양이 두 마리를 키웠던 전 세입자가 말해줬던 것처럼, 거실의 창턱에 밖을 구경하는 건 고양이 친구들에게 꽤나 재밌는 텔레비전인가 보다. 보리는 창가에서 한참을 구경하더니, 식탁 위 짐들 사이에 나름 편한 자리를 찾아 꽈리를 틀었다. 조금 더 느긋한 성격인 시루는 금세 흥미를 잃었지만 햇살이 가장 잘 드는 창가에 놔둔 캣타워 맨 윗자리에 앉아 우리와 함께했다. 다행히 날이 좋아 일을 하면서도 셋이 함께 햇살을 같이 즐길 수 있었다. 남향이 이래서 중요하다.
고양이들에게는 수직 공간이 중요하다고 해서 우리 집에는 캣타워가 총 3개가 있다. 시루를 입양해 올 때 산 가장 작은 캣트리와 시루만 있을 때 한국에서 사 오고, 보리를 데려오면서 해먹을 하나 더 사 온 캣 폴 하나, 그리고 이전에 살던 집에 보리도 데려올 겸, 거실에도 수직공간을 만들어 줄 겸 산 2단 캣타워로, 각자 나름의 추억과 사연이 있다. 그만큼 고양이들도 캣타워가 방마다 있으면 조금 더 안정감과 친근함을 느끼리라 생각했다.
그중 가장 고난도인 캣폴은 하필 유일하게 이사를 위한 분리가 불가피했고, 기왕지사 혼자서 설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천장과 바닥을 미는 힘으로 지탱하는 만큼 위아래로 최대한 뻗도록 빡빡하게 돌려줘야 하는 동시에 균형이 맞게 잡고 돌리고 있나 확인해 가며 해야 했다. 처음 사 왔을 때는 분명 혼자서 설치해 봤던 거 같은데, 몇 년 만에 혼자서 설치하려니 생각보다 자꾸만 꽉 조이기가 어려웠다. 관절이 좋지 않아 지고서 악력이 많이 떨어진 내 손에 원망이 한숨처럼 떨어졌다.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하는 마음에 괜스레 서럽게 손을 만지작 거리고 한참 앉아있는데 고양이들이 삼분의 일쯤 조립된 캣폴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감성을 허용하지 않는 단호한 자세였다.
고양이들의 성화 아닌 성화에 고무장갑까지 동원해서 조립하고 나니 막상 완성된 설치결과는 제법 나쁘지 않았다. 하필 침대 발치로 자리를 정해서 혹시나 자다가 캣폴이 쓰러지면 어디 하나 부러질 거 같아, 몇 번을 재차 확인한 뒤에야 마음을 놓았다. 혼자 든 백지장은 무겁고 조금 느리게 나를 수 있었지만, 나름 들만 했고, 또 뿌듯함은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새로운 캣폴 자리에서 시루랑 보리는 발코니 너머의 Innenhof(이넨호프: 안뜰)을 구경할 수 있다. 똑같이 혼자 고양이를 두 마리 키웠던 전 세입자이자 내 임대인의 말에 따르면, 청설모와 새를 종종 볼 수 있다고 하니 꽤 괜찮은 가든뷰를 선사해 주리라. 기대해, 시루 보리.
마찬가지로 반려묘를 키우는 독일인 동료 D가 이사를 마치고 복귀 한 뒤 물었다. "고양이들은 어때, 새 집을 좋아하는 눈치야? 잘 적응하고 있어?", 그 질문에야 우리 애들이 새 집에서 어떻게 사나 다시 한번 돌이켜봤다. 루틴을 좋아한다는 고양이들 답게, 이전 집에서부터 가져온 루틴을 지키는 부분도 있었고, 새로운 루틴도 만들었다. 예를 들면 귀신같이 8시가 되면 밥 달라고 야옹거리는 보리는, 새 집에 와서도 여전히 8시만 되면 야옹 거리며 밥그릇 근처를 맴돌았다. 새로운 점은 거실에 둔 캣트리는 본래 맨 윗 받침대만 시루보리가 애용하던 장소였는데, 새 집에서는 중간의 박스칸을 유독 애용해 줬다. 새로 생긴 습관들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니 동료 D도 이사하고 나서 키우는 고양이에게 갑자기 새로운 습관이 생겼었다며 또 이해할 수 없는 고양이 세계를 논하며 낄낄댔다. 낄낄대면서도 내심 안심이 되었다. 우리 고양이들만 뭔가 적응하기 어려워서 박스에 들어가고 그런 건 아니구나, 그냥 같은 가구도 새로운 집에 가면 또 새로운 공간처럼 느끼기도 하는구나 하며, 새로운 사실을 배우면서.
고양이들과 이사하는 건, 우리가 왜 새로운 곳에서 삶을 시작하게 되는지, 여기가 앞으로 계속 살 집인지 설명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온갖 몸짓과 뇌물을 들여가며 이 새로운 상자들을 함께 사랑해 보자고 온몸으로 외치는 것과 같다. 이사한 지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도 진행형이고, 지금 또 관심을 요구하는 둘째의 야옹 소리에 노트북을 덮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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