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 & Cozy Nest 프로젝트| D+2
가끔 한국에서 독립한 동생이 부러울 때가 있다. 엄마가 주말에 올라오면 반찬을 싸줄 때, 이사를 나를 제외한 온 가족이 도와줄 때, 무거운 가구를 옮겨야 하면 아빠와 남동생이 출동해 줄 때. 같은 독립이지만, 물 건너 넘어오게 되면 물리적으로 정말 오롯이 혼자가 된다. 혼자가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정말 나는 오롯한 혼자인 적이 있었는가 생각해 보면, 그렇다고 할 수는 또 없다. 내게는 좋은 친구들이 늘 있었고, 멀리서 마음으로, 가까이서 살뜰히 들여다봐주고 도와주는 이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가족이 옆에 없다는 사실은 이런 인생의 순간들에서 내가 혼자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혼자서 해야 하는 것들이 남겨져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앞서 말한 쯔비쉔미테(Zwischenmiete), 그러니까 Sub-renting에 큰 장점이 있다면 가구가 대부분 필수적인 건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집의 집주인과 나의 니즈는 딱 맞았는데, 내가 가져올 가구와 하나도 겹치지 않고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수납할 물건들이 다르다 보니 몇 가지 새로 사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1년 뒤 다시 이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고, 1년 뒤에 다시 나간다고 해도, 귀찮음 혹은 금액을 고려해도, 내 1년의 삶을 충분히 윤택하게 해 줄 것들만 사려고 노력했다. 맥시멀리스트에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힘겹게 추린 리스트는 이랬다.
Bottom Freezer 냉장고 (2미터 이하)
화장실 하부장
화장실 유리 선반
재택 근무용 책상
냉장고는 사실 부엌에 딸려있었는데, 너무 작아서 집에서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내게는 사는 내내 스트레스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큰 짐이 될 예정이라 고민했지만, 부엌에서의 시간은 내게 중요한 일종의 취미생활이기도 하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온라인에서 미리 비교해서 후기에는 2인 가구에게 딱이라고 적혀있지만, 내게는 그게 딱 1인용인 걸 알기에 184cm 높이의 냉장고를 하나 시켰다. 저가 브랜드의 냉장고지만, 후기가 그래도 좋은 걸로, 알뜰살뜰하게 리퍼제품을 아마존에서 주문해 두어 제 때에 맞추어 홈오피스 하는 날 딱 도착했다. 리퍼 제품을 아마존에서 시킨 건 처음이었는데, 계단 밖에 없는 건물의 2층이다 보니, 미리 아래로 불러 아저씨들이 리퍼 제품인 거 알고 시킨 거 맞는지, 어디에 흠집이 조금 나있는데 상관없는지 먼저 확인을 했다. 생각보다 꼼꼼한 절차에 사실 조금 놀랐다. 예전에 아마존에서 세탁기를 시켰을 땐 자기 허리가 안 좋다고 그냥 1층에 팔레트 채로 두고 갔었는데, 이번에 운이 좋았던 건지 서비스가 개선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다행이었다.
냉장고는 배달 이후로 몇 시간 정도 세워둔 뒤, 전원을 키는 걸 추천한다. 독일에서 Flur라고 하는 방과 방 사이를 이어주는 현관 공간에 두려고 했기에 딱 세워뒀는데, 전기 콘센트가 딱 하나 멀리 있어 우선 대강 멀티플러그로 연장만 해두었다. 인건비가 비싼 독일에선 대부분의 삶이 DIY일색이라, 이 정도는 어렵지 않게 케이블 고정용 못으로 깔끔히 정리해 둘 수 있다. 사실 냉장고는 자리에 맞춰두고 밑의 바닥이 뒤뚱거리지 않게 높이 조정만 잘 한 뒤 전원을 꽂으면 끝이라, 설치 자체는 난이도 최하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날, 아마존과 DHL아저씨들은 (혹은 동생들) 여러 번 우리 집을 방문했는데, 좁디좁은 한 뼘짜리 복도 겸 현관에서 나는 열심히 택배를 뜯고 조립을 시작했다. 가장 절실했던 화장실 하부장과 유리선반도 흠집 없이 잘 왔는지 확인하려던 것이 택배를 뜯는 순간 훅 하고 미래의 조립왕 의지가 튀어나왔다. 나는 이케아 가구 조립도 즐거워하는 편인데, 글자 하나 없는 설명서를 거창한 말이지만 분석하고, 그에 맞는 조각들을 찾아 조립하는 쾌감이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의 조립왕은 결국 재택 퇴근하자마자 드라이버를 꺼내 들었다. 우선 다 풀지 못한 짐들을 풀게 도와줄 화장실 하부장을 열었다. 아마존의 중국 셀러가 판매한 제품이 분명한 이 하부장은, 디자인은 예쁘지만, 자재와 연결고리들은 저렴한 제품들인 게 확연히 티가 나서, 잘못 조립했다 풀면 망하겠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의 독일 8년 차 경력은 물경력이 아니기에, 어렵지 않게 조립을 마쳤다. 아귀힘이 약해져서, 뻑뻑하게 경첩 나사를 조이거나 할 때 조금 힘들었지만, 고무장갑의 힘을 빌어 혼자서 잘 마무리를 했다. 나의 영원한 슈퍼바이저 고양이들의 검사를 중간중간받아가며, 누가 잡아주면 좋겠다 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럴 땐 두 발이 의외로 좋은 도구가 된다. 다만 고양이들의 관심이 종종 고맙지 않달까, 꼭 발란스를 잡고 있을 때 올라가 보고 싶은 심보 심리는 무엇인지, 고양이가 되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아마 7유로~8유로 정도에 구매했던 것 같은 저렴한 유리 선반은 사실 약간 도박의 마음도 있었다. 전의 집에는 화장실 유리가 장에 달린 문이어서, 화장품이며 세면도구며 그 안에 정리해 둘 수 있었는데, 이 집은 정말 거울과 세면대만 있어, 폼클렌징, 칫솔 치약 같은 필수적인 것들도 올려놓을 곳이 부족했다. 이제는 세수하고 바로 로션을 바르지 않으면 당기는 30대고, 피부과를 한국처럼 갈 수 없는 독일에 살고 있으니, 세면대 위에 기초화장품은 필수. 그래서 바로 해결책을 찾는데, 마침, 정말 마침 싱크대 바로 위 벽에 구멍이 딱 4개 뚫려있었다. 느낌 상, 전 세입자 혹은 그전 세입자들도 유사한 용도로 뚫어둔 게 아닐까 싶은 위치였다. 그렇지만 시킬 유리 선반의 길이와 고정대 간격이 맞을지가 걱정이었다. 아마존 후기를 아무리 봐도 이 고정대의 위치가 유리 선반에 뭐 구멍이 뚫려있다거나, 정해져 있다는 말이 없어, 대략적으로 이미 벽타일에 구멍이 난 위치들을 커버할 만한 길이만 맞추어 주문을 했다.
그래서 택배포장을 뜯을 때 너무 두근거렸는데, 뜯어보니 다행히 바랬던 대로 유리는 길게 구멍 난 자리 없는 선반 그 자체고, 고정하는 피스들에 고무가 있어 압력과 마찰로 고정하는 원리였다. 그래서 다행히 이미 나있는 구멍에 딱 맞추어 선반을 설치할 수 있었다. 다만 저렴한 걸 사서인지, 이런 류의 선반이 원래 그런 것인지 나사를 꽂은 채로 돌리기가 너무 어려웠다. 수직으로 나사를 돌려야 하는데 피스의 올라온 끝이 있어, 수직으로 드라이버에 힘을 주면 힘을 너무 주면 균형을 잃고 빠져나가고, 너무 안 주면 지지가 안되어서 고정해야 하는 핀이 빠지는 데에 다가 밑의 고정판을 먼저 설치하고 위의 고정판을 살포시 얹은 뒤 그 둘을 연결하는 나사를 밑에서부터 돌려 올려야 하는, 논리는 알지만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 어려움이었다. 높이도 키에 애매한 데라 계속되는 실패에 짜증도 나고 목과 허리도 아팠다. 게다가 싱크대 위에서 해야 하니, 잘못해서 나사가 떨어질 때마다 나사가 어디에 떨어졌는지 찾는 것도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사를 하며 나온 아드레날린은 무엇이든 긍정의 힘으로 이겨내게 했다. 사진을 잔뜩 찍으며, 나는 이걸 몇 번을 실패해도 어차피 오늘 안에는 성공적으로 설치할 거라는 걸 알기에 끝나고 나면,
아 그래, 이제 또 혼자 할 줄 아는 게 늘었네.
라고 생각할 거라는 마음이 드니, 또다시 시도할 기운이 났달까. 마치 포트폴리오라도 쓸 것처럼 뿌듯했다. 짜증 나는 마음은 잠깐 숨을 돌리고 나니 쉬이 치워버릴 수 있었다. 이 또한 요령이 는다. 의지가 잘 생기지 않아서 그렇지.
유리선반까지 모두 조립을 마치고, 좁은 화장실 변기를 의자 삼아 앉아 뻐근한 목과 손을 주물렀다. 성격이 급해 장갑을 끼고 일하지 못한 내게 주어진 대가는 거칠어진 손이었다. 겨울도 아닌데 손톱은 갈라지고 손끝도 거칠어진 손은 뿌듯해야 하는 걸까 속상해야 하는 걸까. 이왕이면 뿌듯한 게 나은가 싶다가도 그랬다가는 매일같이 거친 손을 관리하지 않겠지 하는 또 자기 검열스러운 의문이 들었다.
독일에서 산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소비의 우선순위가 다르지 않은 이상, DIY와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 강제적으로 터득한 조립과 설치의 요령들은 이제 내 마음속 혼자 살기 포트폴리오에 가장 큰 폰트로 쓰인 항목 중 하나다. 한국에 살 때 우리 집의 맥가이버는 아빠였다. 전구도 항상 아빠만 갈았고, 싱크에 빠진 무언가도 아빠에게 얘기하면 꺼내주었고, 고장 난 내 가방 버클도 아빠에게 말하면 다음 날 아침에 고쳐져 있었다. 그래서 내가 혼자서 무얼 할 수 있는지 집안에서 알아갈 기회도 이유도 딱히 없었다. 그래서인가 이런 아빠가 해줬을 법한 것들을 스스로 척척(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하게) 해낼 때면 내가 괜히 다 큰 어른 같고 잘 독립한 성인 같다. 물론 나는 30대가 되었지만 아직도 내가 어른이라는 자각을 하지 못하고 살고 있기에, 그런 기분을 느낄 때면 뿌듯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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