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 & Cozy Nest 프로젝트| D+3
어릴 적 부터 우리 가족은 이사를 많이 했다. 내가 한국에 살 때까지만 해도 내가 태어난 뒤로만 도합 8번의 이사를 했다고 했다. 사주팔자를 따지시던 할머니의 말로는 엄마, 아빠 그리고 나까지 역마살이 꼈다고 했다. 사주를 믿는 건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나만 해도 독일 8년차 만에, 4번째 이사인데다 그 기간동안 가족들도 한국서 3번의 이사를 했다. 이사를 자주하면서 우리 모두 느낀 점은, 일단 이사가 정해지고 나면 이상하게 살던 집에 정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집에서 다운그레이드를 해서 이사를 간다고 해도, 앞으로 어찌되었든 새로이 살 공간에 대한 부푼 마음과 계획이 생기는 만큼, 떠날 집에 대한 마음의 방이 줄어드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엄마와 나는 동의했다.
지금 이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면서도, 분명 집의 위치도 크기도 전의 집이 나은데도 불구하고, 이사가 확정되고 나서는 내 마음의 중심이 바람을 탄 듯이 날아 새 집으로 옮겨갔다. 그래서인지 이사 후로도 약 2주 정도의 시간동안 살던 곳을 정리해야 했는데, 새 집에 짐을 풀고 정돈하는 만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사실 짐은 천천히 풀어도 되는 건데 새 집에만 있으면 엉덩이가 들썩들썩해서 몸은 피곤한데도 쉴 수가 없었다. 마음이 체력을 이기는 순간들이 있지 않은가. 아이러니하게도 정해진 날짜를 향해 심지가 타들어가고 있는 전 집에서는 아무런 기운이 나지 않고 빨리 새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앞서 말했던 것 처럼, 독일에서는 집 키를 주고, 받을 때마다 우버가베 프로토콜(Übergabe-Protokoll)이라는 걸 하는데, 이사 나가는 집도 그래서 들어갈 때 정도의 상태로 돌려놔야 했다. 그 와중에 나는 거실 벽 두 개나 초록색으로(것도 어두운 "포레스트 그린"으로) 칠해놨더란다. 돌이켜보니, 늘 가지고 싶던 초록색 벽을 그 집에서 칠하기로 했던 건, 내 마음 속에 그 곳에선 오래 살 거란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을테다. 그때의 내 마음이 참 귀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영화 <인터스텔라> 속의 주인공처럼 책장 뒤에서 소리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다. "너 결국 2년도 못 채우고 나갈거야! 있는 대로 살아! 초록벽의 집은 언젠가 더 나중에 진짜로 가지게 될거야!"라고. 그래도 나도, 내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도, 모두 이 초록벽을 예뻐했다. 언젠가 내가 정착할 그 집에, 꼭 다시 가져올 녹색의 벽.
무튼 이 어두운 초록색으로 칠해버린 벽을 다시 독일집의 기본값인 하얀 벽으로 돌려놔야했다. 독일의 실용주의가 돋보이는 부분인데, 대부분의 자가가 아닌 집들은 모든 벽을 하얀색으로 칠해서 받고, 돌려주는 게 기본이다. 심지어 생활감이 묻어날 정도로 오래 산 경우거나, 집 계약서에 써있는 경우에는 나갈 때나 들어올 때 하얀색 위에 더 깔끔하게 한 번 더 칠해야한다. 그래서 나처럼 이렇게 어두운 색으로 칠할 때는 다시 하얀 벽으로 돌려놓기 위해 들 시간과 체력을 미리 고려해두어야 한다. 한 번 칠해서는 본래의 하얀색으로 돌아오지 않아, 여러 번 덧대어 하얀 페인트를 칠해야하는데 그게 또 생각보다 힘든데다, 이사를 하면서 해야하니 더더욱 힘들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뭐든 백지화가 더 힘든 법인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나의 이사는 군데 군데 친구들의 애정어린 도움이 묻었는데, 페인트칠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본인은 출장을 가게 되었다는 진진은 나와 한 번 본 남자친구를 보내줬고, 마누와 영이 언니도 흔쾌히 와서 도와주겠다고 나서줬다. 다들 바쁜 와중에도 무리해서 시간을 내준 걸 알아 더 고마웠다. 그래서 더 무례하지 않은 페인팅 호스트(?)가 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한 그림은, 한 두 코트는 미리 칠해둔 벽에 신나는 노래와 맥주를 곁들이며 마무리 느낌으로 두 코트를 더 칠하고 구석들만 꼼꼼히 처리하는 거였기에, 당일에 조금 일찍 퇴근해서 맥주만 사두려고 했다. 페인트와 브러쉬는 이미 준비가 되어있었고 기본 코트는 룸메가 칠해두기로 했었다. 그런데 역시 인생은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고 특히나 내 인생의 장르는 유독 시트콤인 편이라, 당일에 되서야 룸메는 전날 페인트칠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급하게 오후 반차를 쓰고 달려갔다.
나이가 한 해 한 해 들 수록 좋은 것은 내 경험치가 쌓인다는 거다. 물론 피로도도 쌓이지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나는 매 해 더 빠르게 정신을 차리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발을 동동 구르기 보다는 일단 쿨하게 반차를 쓰고 간 나 자신을 칭찬하면서 도착해보니 그나마 다행힌 건 기본적인 셋팅은 되어있었다. 친구들이 왔을 때 너무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페인트칠을 혼자 먼저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난 이런 페인트칠하는 날을 좋아한다. 내가 책임지고 해야하는 부분에서 스트레스가 올 뿐이지. 어린 아이들이 벽에 마구잡이로 낙서하고 쾌감을 느끼는 건 본능에서 비롯된 걸 거라는 게 내 이론이다. 평소에는 조심히 자국도 안남게 해야하는 벽에 페인트를 왕창 칠하는 일은 알 수 없는 쾌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벽을 초록색으로 칠할 때도 잔뜩 그림부터 그리고 시작했었다. 이 날도 나는 다시 낙서부터 시작했다.
낙서를 신나게 하고 친구들 오기 전에 덮으려고 했는데 두 번을 덧칠해도 생각보다 멀리서 보면 보여서 당황했다. 유치하고 부끄러워라. 다급한 마음이 생겨 전화위복이랄까, 다행히 친구들이 오기 전에 꽤 칠해둘 수 있었고, 친구들은 오자마자 척척 도구를 집어들고 약속이라도 한 듯 공간을 나눠 덧칠해주기 시작했다. 다들 독일 생활 짬빠가 있다보니 적게라도 누군가의, 아니면 자신의 이사를 위해 페인트 칠을 해본 적이 있었던 덕분일까?
1시간 쯤 지나고, 내가 피자를 픽업하러 다녀온 사이 페인트칠은 귀신같이 끝났다. 아무런 가구도 없는 공간에서 굴러다니는 상자를 테이블 삼아 피자를 먹으며 수다를 떠는데, 아 이제 진짜 끝이 다가오는 구나라는 마음이 확연해졌다. 밖에는 비가 저녁 내내 내렸고,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남은 맥주를 한 잔 하다보니 복잡하고 애매했던 마음도 비에 씻겨내려갔다.
한국에서는 셀프로 집안에 페인트칠 할 일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집 안에 쓰는 화이트도 톤이 천차만별이고, 벽지에 덧하여 칠하는 페인트는 벽지가 벽에 잘 안 붙어있는 부분들을 들뜨면서 덧칠할 수록 롤러에 페인트가 묻어나오기만 한다. 그럴 때는 페인트가 먼저 마르고 다시 덧칠을 해야하는데, 성격이 급한 한국인들에겐(나에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걸 셀프로 하는 독일에서의 삶은 처음엔 화도 많이 났지만 지금은 한국에 살 때보다 나도 모르게 느긋함이 아주 조금, 정말 조금 더 생긴 것도 같다.
매일 절망과 행복을 오가는 내게 친구 진진이 어느 날엔가 "매일 부정적인 마음 지우기가 아니라 긍정을 더하는 마음으로 살아봐"라는 말을 해줬다. 힘들고 어려운 이사였지만 끝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헀고, 온 길이 가야할 길보다 더 길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으면서 이 날도 긍정을 더해봤다. 무엇보다 그 길에 든든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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