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베이킹

비건 친구 생활백서 EP 13 | 빵순이가 비건 친구랑 놀 때

by 채루에 Ruhe

허구한 날이면 날씨가 좋지 않은 독일에 살며 집적거린 수많은 취미 생활 중 나와 롱런하고 있는 취미 중 하나는 베이킹이다. 한국에 살 때부터 엄마의 오래된 오븐을 꺼내 종종 하던 베이킹이, 재료도 쉽고 보다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독일에 살며 본격화되었다.


계란과 버터 없이 베이킹하기


베이킹의 기본 재료는 밀가루, 유지류(버터나 크림), 달걀, 그리고 팽장제(베이킹파우더나 이스트)라고 생각한다. 그중 유지류나 달걀은 모두 비건이 먹지 않는 재료에 해당된다. 4가지 중 2가지나 빠지게 되니 베이킹은 사실 요리보다도 더 비건에게 제한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나 풍미를 가져오는 재료들이 빠지다 보니, 더 어려운 것도 같다.


오리지널 레시피에 계란과 유제품이 없는 베이킹


그렇지만 홈베이킹이 인기를 끌고,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자기 만의 색을 가진 베이킹 레시피들을 내어놓으면서 세상엔 많은 베이킹 레시피가 생겨났고 그 덕분에 계란과 유제품이 포함되지 않은 비건 레시피들도 다양하게 등장했다. 오리지널 레시피 그 자체가 비건인 베이킹들이 찾아보면 생각보다 많다.


언젠가 성공하리라 바나나 브레드


바나나 브레드는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잘 알려진 비건 베이킹이다. 많은 카페에서도 바나나 브레드는 비건으로 판매하고 있을 만큼 본래 레시피가 비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베이킹을 자주 하지 않는 친구도 집에 바나나가 너무 검어졌다고 바나나 브레드를 그냥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비슷한 파운드 케이크는 잘 만들면서, 나는 왜인지 매번 바나나 브레드만큼은 실패한다. 바나나 브레드가 아니라 바나나 떡이 되어버리는데, 사실 원인을 분석할 만큼 자주 만들지도 않아, 그 이유는 알기가 어렵다.


왼쪽은 비나가 만든 토실토실 예쁜 바나나 브레드, 오른쪽은 작년 내 생일에 사무실에 구워간 파운드 케이크와 바나나 브레드. 딱봐도 납작하고 떡져보이는 그게 바나나 브레드가 맞다.

그렇지만 남은 바나나 처리에도 좋고, 맛도 너무 좋아 꼭 언젠간 마스터하겠다는 의지가 생기는 레시피다. 기본 바나나 브레드를 마스터하고 나면 초코칩이나 넛츠를 넣는 변형도 시도해 보리라.


요즘 빠진 Baked Oat 레시피


방금도 오븐에 넣어놓고 온 오늘의 글에 사실상 영감을 준 Baked Oat다. 요즘 내 인스타그램 피드를 도배하고 있는 알고리즘의 주체이기도 하다. 나는 원래 오트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핀란드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시절, 핀란드의 기본 아침식사인 포리지(Porridge)는 주로 오트밀이었는데 나는 그게 밍밍하니 그렇게 맛이 없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흔히 말하는 "나이가 드니 입맛이 바뀐다"를 겪고 있는데, 이게 신기하게도 건강식에 관심이 생겨서인지 그냥 당기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건강하다고 알려진 재료들이 맛있게 느껴지고 있다. 아무튼 이 Oatmeal을 주재료로 한 Baked Oat는 여러 가지 레시피가 있는데, 내가 자주 사용하는 레시피는 계란과 유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비건이다. 심지어 밀가루도 안 들어가니 글루텐 프리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크리스티나라는 언니(@nourishwithcristina)는 여러 가지 변형된 Baked Oat레시피를 공유하고 있는데, 나는 그중 바나나와 초콜릿칩이 들어간 레시피를 받아서 쓰고 있다. 게시글에 댓글을 남기고 받은 레시피에는 사실 정확한 계량이 적혀있는데, 계량용 저울이 따로 없는 나는 그냥 느낌적 느낌으로 굽고 있다. 섞기 전 사진을 찍어두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모든 재료를 찍고 나서야 "아, 사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한 레시피를 원하면 여기 인스타그램에 댓글을 달으면 자동으로 온다. 아무래도 높은 Engagement를 위해 댓글로만 공유해 주는 레시피이니 내가 퍼다 나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내 나름대로 변형해서 쓰고 있는 레시피는 이렇다.

나오자 마자는 조금 물컹거려 살짝 식어야 모양을 잡고 잘라서 덜 수 있다. 나는 감미료를 잘 안 넣어 조금 밍밍했지만 살짝만 휘핑한 생크림과 함께 먹으니 오히려 맛있었다.

바나나 1개 반을 으깬 다음, 나머지 재료들을 순서 없이 집어넣고 섞은 뒤, 토핑처럼 남은 반개의 바나나와 초콜릿칩을 얹는다. 맞다, 초콜릿 칩도 조금 토핑용으로 빼놓으면 좋다. 그런 다음 180도 정도로 예열된 오븐에 (나는 오븐도 오래된 가스 오븐이라 정확한 온도는 지정할 수 없다) 넣고 25분에서 30분 정도 굽는다. 이렇게 하면 비나랑도 먹을 수 있지만, 맛잘알인 나는 사실 따뜻할 때 아이스크림이나 생크림을 곁들여 먹긴 한다. 비건 친구와 먹는 것이지 내가 비건인 것은 또 아니니까.

재료: 바나나 2개, 비건 초콜릿 칩 한 줌, 오트밀 한 컵정도, 치아시드 두 숟가락 정도(취향에 따라 조절하면 된다), 비건 단백질 파우더 한 스쿱, 식물성우유, 메이플 시럽이나 아가베 시럽 한 두 숟가락


계란과 유제품 대체제를 활용한 레시피


세상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고, 그래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의 일면으로 비거니즘 역시 과거에 비해 많이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고, 그만큼 삶의 한 방향으로 선택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래서 인지도가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비건 역시 당당한 소비의 한 갈래가 되었다는 것이고, 제조사들에서도 비건을 대상으로 한 제품들을 연구하고 시장에 내어놓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요즘엔 계란과 유제품 대체제 역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독일의 슈퍼마켓에서는 베이킹 코너 혹은 비건/유기농 제품 코너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한국은 쿠팡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사면 다음날이면 도착한다.


사실 비건이 먼저 인기를 끌고 자리를 잡은 서구는 특히 빵을 주식으로 한 나라들이 많은 많아 이런 수요가 보다 많았을 건 당연하다. 수요가 있다면 공급이 따라오는 건 말 그대로 시간문제다.


제일 쉬운 치트키, 믹스


누군가 그랬다. 명문대를 졸업한 대기업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기성제품이 어떻게 맛이 없겠냐고. 맞다. 베이킹도 쉽게 하라고 똑똑한 사람들끼리 모여 만든 믹스를 사용하면 세상 어렵지 않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비건 베이킹 믹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비건 믹스는 브라우니, 바나나 브레드(그래도 이건 내 자존심에 믹스 없이 계속 시도 중이다). 그리고 시나몬 롤이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슈퍼마켓에 이 셋 중 하나는 찾아볼 수 있다.


비나와 쥬진이 놀러 온 날 중 하루는 비건 브라우니를 구웠다. 하필 공휴일인데 집에 식물성 우유가 없어 SOS를 쳤고 쥬진이 집에서 고이 모셔온 두유로 베이킹할 수 있었다. (그렇다 독일은 일요일과 공휴일엔 모든 상점이 일체 닫는다.) 믹스에는 심지어 붓고 오븐에 넣을 종이틀까지 들어있었다. 막상 구워서 먹으니, 일반 브라우니와 차이를 알 수 없었다. 이게 바로 대기업의 힘인가 순간 생각도 들었다.


계란 대체제를 활용한 아이싱


날씨가 쌀쌀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빵은 다름 아닌 시나몬롤이다. 마찬가지로 어릴 때 누군가 코스트코에서 사다 주면 이게 무슨 맛인가 했던 시나몬롤은 나이가 들면서 인지, 이전에 살던 집 앞의 베이커리 시나몬 롤이 유독 맛있어서인지, 이젠 가을만 되면 생각나는 빵이 되었다. 그리고 단 맛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내게 시나몬 롤의 마무리는 달콤한 아이싱이다. 아이싱은 보이는 것과 달리 계란 흰자가 바로 주재료다. 계란 흰자와 슈가파우더로 만들어진 아이싱 역시 비건이 아닌 재료인 것.


어디서 본 것처럼 만들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내 틀이 너무 커서 시나몬롤끼리 부대끼는 그림은 나지 않았다.


비건 브라우니 믹스로 자신감을 얻곤 비건 시나몬롤 믹스와 비건 버터(사실상 마가린)로 신나게 굽고 있는데 막상 위에 얹을 아이싱은 비건이 아니라고 하니 어찌나 당황스러웠는지. 그렇지만 그런 나도 쉽게 쓸 수 있는 계란대체제를 슈퍼에서 팔았다. 어디까지 계란을 대체해 주는 것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이걸 물에 푸니 계란 흰자 같은 끈적거리고 슬라임 같은 질감은 났다.

39124597_digital-image.png 까먹고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이렇게 15g씩 작은 포로 팔고 있다. 가격도 매우 착한 편.

다행히 슈가파우더를 넣자 일반 아이싱 만들 때와 유사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유일한 문제는 내가 저 파우더 한 포에 얼마만큼의 계란양이 나온다는 건지 모르고 "비건 계란"을 너무 많이 만들어 버린 것. 그래서 가진 슈가 파우더를 다 쓰고야 적당한 질감이 나왔다. 다행히 아직 시나몬롤이 따뜻할 때 준비가 되어, 식기 전에 아이싱을 뿌릴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비건과 논비건의 아이싱을 모두 뿌려 두 가지 버전의 시나몬롤이 완성되었다. 다음날 사무실로 가져가 비나를 포함한 모두와 나누어 먹었다.

생각보다 엄청 똑같게 나오지는 않았다. 쨍한 하얀색이 일반 아이싱, 조금 누런 색이 비건 아이싱이다.



첫 유럽살이는 핀란드에서 한 1학기의 교환학생이었는데, 끝나고 돌아갔을 때 나를 처음 본 엄마의 말을 잊지 못한다. "한국까지 굴러왔니?" 그만큼 빵과 버터, 그리고 치즈를 잔뜩 먹어대고 살이 쪄서 돌아갔었다. 한국보다 훨씬 싸고 흔한 유제품들이 내 입에 유독 맞는데, 베이킹을 하다 보면 먹고 싶다는 의지가 조금 나아진다. 다만, 혼자 살며 베이킹을 해대면, 배치별로 나오는 기본 양이 있기 때문에 주변에 나눠줄 수밖에 없다. 아쉬운 점은, 아직도 내 베이킹은 계란과 버터를 버리곤 어려운 레시피들이 많아,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비나에게 나눠주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어서 바나나 브레드를 성공하고, 나눠주기 좋은, 그렇지만 나도 만들면서 행복한 레시피를 더 찾아야겠다. 버터와 계란이 빠진 베이킹 냄새가 즐거울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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