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계인수

by RUKUNDO
인계인수 引繼引受
(명사) 물려받고 넘겨줌.

회사에서는 인수인계가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진다.

단순하게 회사의 주요 물품들을 주고받기도 하고,

신규 프로젝트가 구체화되어 기획부서에서 진행되다가 운영부서로 넘어오기도 하고,

조직이 개편되며 업무들이 조정되어 이루어지기도 한다.

매년 인사이동이 끝나고 나서 이루어지는 것이 인수인계이기도 하다.


신입으로 회사에 입사하면 가장 먼저 받는 것이 업무의 인수인계다.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전임자가 남겨둔 PC와 대량의 종이 뭉치 정도다.

아무리 깔끔하게 정리된 폴더들이어도 낯선 환경과 업무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에겐 미로와도 같다.

운이 좋아 전임자가 같은 부서에 남아있거나 옆 부서에 있어 대면해서 설명을 받을 수 있겠지만,

미로를 헤쳐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것은 신입사원 개인의 몫이다.

이렇게 시작된 회사생활에서 신입사원은 기성사원이 될 때까지 수없이 많은 인수인계를 경험하게 된다.

주는 쪽이 되기도 하고 받는 쪽이 되기도 하고 입장과 위치는 바뀌지만 말이다.

사실, 기성직원이 되어도 인수인계는 끊임없이 이뤄진다.

퇴직할 때까지 아마 수없이 반복하지 않을까.


새로운 업무를 받게 되면 미지의 세계로의 탐험이 시작된다.

이때가 되면 직급에 상관없이 신입사원이었던 그때의 어리바리했던 그 시기로 돌아간다.

다만 연차와 직급이 쌓이며 목적지에 도달했던 경험이 함께 쌓여 신입 때보다 평온한 마음으로 어리바리함을 즐기게 된다. 한 발자국 앞에 뭐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매 순간 조마조마하고 망설여진다. 전입자의 자료가 아무리 꼼꼼히 정리가 되어있어도 암호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고, 해석하며 전임자 욕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항상 업무를 넘기고 간 사람은 악마고 무책임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사고 치고 수습하고 망설이고 넘어지고 부서지고 회복하기를 반복하면 어느 순간 목적지에 도착한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뒤늦게 전임자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새로운 전임자가 될 준비를 하기도 한다.


십여 년의 회사생활을 하며 내가 경험한 인수인계는 서류와 자료가 대부분이었다. 대면해서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맨땅에 헤딩하기’는 내 특기가 되었다.

맨땅에 헤딩하기가 특기인 나도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전임자가 PC에 자료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퇴사해 버린 것이다.

이렇게 깨끗한 컴퓨터는 입사 후 처음이었다.

캐비닛 비밀번호와 서랍 열쇠도 놓고 가지 않았다.

전화를 해서 따지고 싶었지만 이미 간 사람에게 따진다고 해결된 문제는 아니었기에 속으로 욕을 삼켰다.

내가 하던 업무나 대학에서 배웠던 지식이 도움이 되면 좋았겠지만,

하필 그때 배치받은 업무는 기초지식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머릿속은 하얗고 어질어질했다.


상사에게 상황을 간단히 보고했다.

최선을 다해 업무에 적응해 보겠지만 신속한 처리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양해를 구했다.

어쨌든 회사에서 이 업무를 하라고 자리를 옮겨놨으니 업무를 파악하고 적응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때려치우고 나가기엔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신입사원이 된 마음으로 절차서를 뒤지고, 비슷한 업무 경험이 있는 후배, 선배, 동료 가리지 않고 도움을 요청했다. 회사 인트라넷에 남겨진 자료를 뒤지고, 전임자의 전임자, 전임자의 전임자의 전임자까지 찾아내 남아있는 기초자료가 있는지 구걸했다. 시스템 비밀번호라도 업무를 시작할 테니 말이다. 신기한 것은 시간이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경로로 자료를 구하고, 시간을 소비하니 해결되는 일들이 하나둘 생겼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업무에 익숙해졌다.


인사이동을 앞두고 있다. 인수인계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오랜만에 이동이라 걱정도 되고 두렵기도 하다. 먼저 현재의 업무를 잘 정리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동안 해왔던 업무를 들춰보며 하나둘 정리를 시작했다. 내가 했던 삽질들을 대면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미뤄왔던 폴더정리를 하며 시간여행을 한다.

간단하게 인수인계서를 작성하는데 뿌듯한 마음이 든다.

비록 내가 작성한 인수인계서와 자료들을 보며 후임자는 욕을 할지도 모르지만.

맨땅에서 시작한 전임자의 노고와 수고를 알아주진 않겠지만, 뭐라도 남길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게 새로운 곳에 가서 내가 받을 인수인계를 다시 걱정한다.

주고받는 곳이 달라 무게추가 기우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이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항상 전임자는 가볍게 떠나고 후임자는 무겁게 도착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개인의 선택이고 사연이 있을 테니 말이다.

다만 나는 할 수 있는 선에서 내 업무를 정리해서 남겨주고 홀가분하게 떠는 전임자가 되고 싶다.

무엇보다 마음을 가볍게 하고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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