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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Dec 15. 2020

면접 도중 발차기한 사연

세 명의 면접관을 앞에 두고 나는 발차기를 했다. 사연은 다음과 같다. 여행사 모델 선발에 지원했다. 사실 모델에 욕심을 낸 게 아니라 여행을 무료로 보내준다고 하길래 덜컥 지원했다. 특기에 태권도를 적었더니 면접관이 발차기를 보여달라고 하셨다. 깔끔한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나는 다리를 높게 그리고 절도 있게 뻗어 허공을 갈랐다. 옆차기를 하며 슬쩍 본 면접관의 표정은 냉담했다. 현타가 찾아왔다. 나는 왜 생면부지 면접관들 앞에서 청바지를 입고 발차기를 하고 있는가. 심지어 이 면접은 모델을 뽑는 자리가 아니던가?


하긴 나에게는 모델 포즈를 취하는 것보단 발차기하는 게 쉬웠으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런데 정말 반전은 따로 있었다. 바로 내가 모델로 선발된 것이다. 태권도 도복 모델 말고 여행상품 모델로. 실제로 현장에는 모델 지망생과 헬스 트레이너가 왔었는데 나를 뽑았다고 했다. 그렇게 3박 5일 즐거운 여행을 무료로 다녀왔다. 전자랜드 나태주 광고를 보면서 내가 그때 여행사 모델로 발탁된 게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태권도를 그만두지 않고 더 열심히 했더라면 '하이마트 광고는 내가 맡지 않았을까' 후회 아닌 후회를,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본다.


정권지르기!
태! 권! 태! 권!


여행사 모델에 태권도 발차기로 선발될 정도로 꽤 근사한 발차기를 구사했지만 누구나 올챙이 시절이 있는 법이다. 태권도 발차기 기술이 무르익지 않은 시기가 있었다. 태권도장에 갓 등록한 시기에 태권도장에서 악당을 만났다. 그 악당들은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차이가 날 정도로 키가 컸다. 악당들은 고등학생 누나 네 명이었다. 내 양팔과 다리를 빨래 펼치듯 잡고서 원형을 그리며 뛰었다. 당시 나를 던졌는지 땅에 놓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기억이 편집되어 나를 던진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악당들은 나를 던지고서 자기들끼리 비열하게 웃었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악당은 학교에도 있었다. 체구도 작고 뽀얀 피부 때문에 학교에서도 나를 건드리는 녀석들이 많았다. 그래도 시비를 걸거나 무시하는 녀석들이 있으면 싸움을 피하지 않는 편이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믿는 구석은 바로 태권도였다.


나는 태권도를 잘하는 편이었다. 스트레칭 중 다리를 양쪽으로 찢는 동작이 있는데 내게는 그 동작이 가장 고통스럽기도 하면서 시원한 쾌감이 있는 동작이었다. 나는 그 동작을 좋아했고 잘했다. 묘하게 성취감도 느껴졌다. 그게 일종의 '레벨'을 나타내 주기도 했다. 태권도를 잘하고 오랫동안 수련한 사람은 180도가량 찢는, 나름 '무술인'의 위용을 보여줄 수 있었다. 물론 나도 그 자세를 열심히 한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 '무술인'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자세를 잘하면 다리를 하늘로 올려 상대방 머리를 내려찍는 '내려찍기' 발차기나 뒤돌려차기, 옆차기 등 다양한 발차기를 구사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



다리 찢기도 잘되고 발차기도 높게 그리고 시원하게 찰 수 있는, '무술인' 반열에 들면서 점차 내게 시비를 거는 녀석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친구들이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고 스스로도 자신감이 생겼다. 몸에 대한 자신감은 매사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공부든 뭐든 주체적으로 했다. 또한 태권도로 기른 유연성과 순발력, 심폐지구력은 다른 운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다른 운동들도 곧잘 해냈고 어떤 스포츠든 리더 역할을 종종 맡았다. 태권도장은 3품을 따고서 그만두었다.




태권도는 성인이 되어서도 잊힐만하면 내 삶에 툭 튀어나와 영향을 끼쳤다. 친구들과 오락실에 가면 노래를 부르고 가끔 펀치 기계를 쳤다. 친구들은 두 손을 모아 말 그대로 '펀치'를 날렸는데 나는 옆으로 비껴 서서 왼발을 디딤발 삼아 오른발 돌려차기로 기계를 찼다. 오랜 기간 동안의 발차기 수련은 펀치 기계를 때리기 위함이었던가. 별 것도 아닌 것에 어깨가 으쓱대었다.


태권도를 통해 지구 반대편 아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어 교회에서 필리핀과 우간다로 선교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최고 유단자라는 이유로 태권무를 직접 제작하고 제작하게 되었다. 필리핀과 우간다 두 곳에서 모두 인기가 많았다. 특히 태권무 마지막 부분에 격파 퍼포먼스에 열광했다. 태권도를 배워놓았던 게 참 뿌듯했다. 태권무 공연이 끝나면 아이들은 내게 다가와 결투 포즈를 잡으며 이소룡 흉내를 내었다. 태권도는 지구 반대편에 살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친구들과의 만남에 다리가 되어주었다.




태권도복을 입으면 아이언맨이 슈트를 입은 것처럼 자신감도 생기고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작은 체구와 좁은 골격의 허약체질에게 태권도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열쇠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태권도로 다져진 몸으로 다른 운동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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