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우 Dec 19. 2020

채식주의자를 위한 선물

2년 차 채식주의자의 달라진 생일 풍경

생일은 항상 기말고사 시즌이었다. 시험 준비하느라 바쁠 텐데 내 생일을 잊지 않고 축하해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웠다. 물론 기말고사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친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건 생일을 기억해주고 축하해준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그렇기에 나도 누군가의 생일을 챙기려고 하는 편인데 마음도 몸도 게으른 탓에 친구들의 생일을 잘 챙기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 게으름은 핑계다. 나는 생일이나 기념일 챙기는 게 귀찮은 걸 넘어 싫어했다. 이유는 뭔가 숙제를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물을 주거나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건 '내가 하고 싶을 때' 해야 된다는 생각이었는다. 참 이기적인 생각이다.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야.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고 싶다.


다행히도 못난 나를 아직 곁에 두는 친구들이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친구들은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코로나 때문에 대면할 수 없었지만 메시지와 선물을 함께 보내주었다. 생일이 별거 아니라고 나는 친구들에게 떠들어대지만 생일날 축하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감동받는 건 사실이다. 이렇게 생일 글을 쓴다는 건 내가 이미 생일에 굉장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아마 축하 메시지 한 통 없었더라면 울적했을 거다. 매년 연말에 하는 '올해 되돌아보기'는 앞당겨 생일날 했을 거고 주요 키워드는 인간관계가 되었을 것이다.



채식주의자의 생일 풍경

나는 작년부터 채식을 지향했다. 작년 생일부터 고기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작년부터 생일상 풍경이 달라졌다. 그래도 유제품은 먹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보내준 케이크를 비롯해 디저트류는 먹었다. 올해에는 유제품이 들어간 케이크를 먹지 않기로 하여 올해 생일에는 몇몇의 친구들이 보내준 케이크를 거절했다. 친구들이 선물로 치킨이나 케이크를 주면 마음이 불편하다. 친구들이 준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쾌하다기보다, 내 생일을 기억해주고 선물까지 보내준 건데 선물을 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되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물성 재료가 핸드크림이랑 립밤에도 들어가?
내가 그런 걸 잘 몰라서 먹는 건 도저히 못 보내겠고 저걸 보낸 건데...
특별한 선물이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그런 경우는 지향하는 바나 좋아하는 게 분명할 때인 것 같아.
그래도 아이스크림은 먹지?


항상 그 해 생일이 가장 특별했지만 올해 생일은 더욱 특별했다. 선물도 선물이지만 메시지들이 참 고마웠다. 나는 채식주의자(비건 지향인)다. 미리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선물을 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인지 물어봐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카카오톡을 열어 손가락으로 열심히 스크롤하여 적당한 가격과 '있어' 보이는 선물을 보내면 되는 시대다. 선물을 보내기 전에, 선물을 보낸 후에 신경을 쓰는 친구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생일 선물이 뭐라고, 인생을 잘못 살고 있지 않다는 위안도 얻었고 앞으로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또한 올해 생일이 특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내 덕분이기도 하다. 생일 당일 아내가 비건 케이크를 찾지 못해 내가 비건 케이크를 사 왔고 아내는 촛불을 켜고 열렬히 축하해주었다. 특별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생일이었다. 축하는 선물이 중요한 게 아니다. 마음이 중요하다.




채식주의자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축하해주는 진심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여전히 '무엇을' 선물할지 고민한다. 만약 채식주의자(혹은 비건 지향인)에게 선물한다면 어떤 선물을 줘야 할까? 단순히 선물 고르기도 어려운데 채식주의자를 위한 선물을 고르는 일은 더욱 까다로운 일이다. 친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하고 그 좋아하는 걸 내가 사줄 수 있는 여유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금액대는 만원에서 삼만 원 선으로 생각하고 선물을 고르는 기준을 정리해보자.

첫째, 선물이 음식이냐 아니냐를 결정한다.

둘째, 만약 음식 선물을 주기로 결정했다면 어떤 단계의 채식을 하는지 알아본다. 채식 단계는 매우 다양하다. 아래 사진에 나온 게 전부가 아니다.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채식의 형태가 있으니 친구에게 물어보는 게 중요하다.

ⓒ 투어페이퍼

하지만 친구가 어떤 채식 단계를 하고 있는지 알아도 선물을 고르기 난처한 건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동물성 재료가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동물성 재료가 포함되었는지 확인하려면 성분표를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이는 채식인에게도 번거롭고 쉽지 않은 과정이다. 채식을 하지도 않는 이에게는 두말할 필요 없이 어려운 일이다.


가장 간편한 방법은 비건 상품을 선물하는 것이다. 비건은 가장 엄격한 채식 단계이기 때문에 다른 채식 단계를 지향한다고 해도 문제 될 게 없다. 물론 정말 '비건' 상품을 선물하고자 한다면, '비건 인증'을 받은 상품을 구입하는 게 정답이겠지만 자체적으로 '비건'이라고 홍보하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한국에도 비건인증원이 생겨 많은 상품들이 비건 인증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많은 비건 상품을 구매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만약 카페나 베이커리 기프티콘을 선물한다면?

많은 사람이 커피 기프티콘을 선물한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카페모카, 라테는 비건으로 주문이 가능하다. 라테나 카페모카는 우유 옵션을 두유로 변경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거트 음료는 옵션 변경이 안되고 케이크 종류는 만들어진 상품이기 때문에 비건 주문이 불가하다. 하지만 모든 기프티콘이 그렇듯 결제금액에 맞춰 상품을 변경하여 주문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다른 카페나 베이커리의 경우 비건 상품 자체가 없어 구매가 불가능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아메리카노는 비건이 이용할 수 있는 음료이고 라테를 비건 음료로 즐기려면 우유를 두유나 귀리유로 변경하여 주문해야 한다. 옵션 변경 주문이 가능한 카페는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커피빈이다. (2020년 12월 기준)


만약 음식이 아니라면?

여기서부터는 더 복잡해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상상 이상으로 동물성 재료가 곳곳에 쓰이기 때문이다. 캐시미어, 구스다운, 모피, 가죽 신발, 가죽 가방, 가죽 지갑은 말할 것도 없고 화장품이나 도자기, 컵에도 동물성 재료는 포함되어있다.


* 아래는 올해 생일에 받았던 선물들이다. 혹시 채식주의자(비건)에게 선물이 고민된다면 이 중 하나를 선물해줘도 좋을 것 같다.

비건 핸드크림과 립밤, 커피와 자몽티 같은 음료 기프티콘, 오설록 차 세트, 코코도르 방향제, 비건 컵케이크, 코르크 볼펜, RUSH 샤워젤.


당신이 무얼 선물하든 진심을 글이나 말로 담아 표현한다면 친구는 고마워할 게 틀림없다. 더군다나 당신이 친구 선물을 위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좋은 친구다. 친구를 위해 정보를 찾아보고 마음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채식 여부를 떠나 선물에 담긴 진심을 알아보면 누구나 기쁜 법이니까. 친구가 좋아하는 건 뭔지, 필요한 건 뭔지, 생일을 핑계로 겸사겸사 안부도 묻고 마음도 나누는 생일이 되길 바란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선물? 정답은 없다. 하지만 진심은 전해지고 통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콜릿, 달콤함과 씁쓸함 사이 그 어딘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