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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Dec 12. 2020

초콜릿, 달콤함과 씁쓸함 사이 그 어딘가

나는 고등학생 때 쉬는 시간마다 초콜릿이나 사탕을 하나씩 까먹곤 했다. 사실 나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친구가 얼마 전에 해준 이야기다. 그만큼 단 음식을 좋아한다. 초콜릿은 달달한 디저트의 대명사다. 커피의 맛을 알기 이전에는 카페에 들르면 초코 음료를 마셨다. 여름에는 아이스 초코, 겨울에는 핫초코를 즐겼다. 친구들이 아직도 '아기 입맛'이라며 놀려댔다. 아기 입맛과 어른 입맛이 따로 있나. 입맛을 구분하는 게 오히려 유치하다. 성인이 되면 쓴 커피만 마시란 법 있나.


흔히 먹는 브랜드 초콜릿 원재료명


그러던 어느 날 우유의 진실을 깨닫고 초콜릿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모든 식품이 그렇듯 초콜릿에도 초코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우유를 비롯해 기타 식품첨가물이 첨가된다. 초콜릿뿐만은 아니었다. 환상의 조합 믹스커피와 에이스에도 우유가 함유되어 있었다.


그런데 우유가 뭐가 문제냐고? 아래 링크 글에서 우유의 문제가 자세히 나오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우유는 동물학대와 동물 착취 산업의 식품이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강간과 학살 산업이다. 우유를 소비하는 일은 강간과 학살에 가담하는 일이다. 그런 우유가 들어간 초콜릿을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이후 초콜릿을 대신하여 당 충전을 해주는 식품은 과일이었다. 마트에 들르면 제철과일을 듬뿍 장바구니에 담았다. 과일을 먹으면 당 충전도 되었고, 가공품이 아닌 신선식품을 먹는다는 생각 때문에 건강해지는 느낌은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초콜릿을 끊은 지 2~3개월 정도 되었을까? 어떤 자극 때문인지 기억이 안나는데 초콜릿이 당겼다. 결국 우유가 들어가 있지 않은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초콜릿 만드는 데 사용했던 재료들


초콜릿 파우더 활용하여 비건 초콜릿 만들기

마음먹고 시간만 들이면 뭐든 할 수 있는 시대다. 나는 유튜브를 참고해서 초콜릿 만들기를 시도해봤다.

첫째, 초콜릿 100%인 초콜릿 파우더를 구매한다.

둘째, 초콜릿 파우더와 올리브유 그리고 아몬드 브리즈를 섞는다.

셋째, 올리고당이나 설탕을 넣어 단맛을 조절한다.

넷째, 마구 휘저어준다.

다섯째, 견과류(호두, 아몬드, 피스타치오 등)을 넣고 또 저어준다.

여섯째, 초콜릿 전용 컨테이너에 초콜릿을 담아 냉동실에 넣어둔다.

초콜릿 전용 컨테이너는 구매하기 귀찮아 집에 남은 락앤락 통에 종이 포일을 깔고서 냉동실에 넣고 얼렸다. 20분 정도만 얼리면 끝이다. 냉동 상태의 초콜릿을 칼로 잘랐다. 아니 부수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 느낌이었다. 얼었던 초콜릿이 입에서 부스스 녹아내렸고 달콤하면서도 씁쓸했다. 예상보다 맛있어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실온 상태에 두니 초콜릿이 녹아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냉동실에 넣어두고 당이 당길 때 하나씩 꺼내먹는다. 초콜릿이 녹지 않게끔 하려면 '일종의 코팅' 과정이 필요할 것 같은데 사실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워서 방법을 따로 알아보고 있진 않다.


좌: 초콜릿을 만드는 과정 / 우: 완성된 초콜릿


비건 초콜릿 상품을 발견하다

사실 초콜릿을 만들 생각을 처음부터 하던 건 아니었다. 인터넷으로 비건 초콜릿 검색을 수차례 했었고 상품을 찾기도 했다. 그런데 상품이 마음에 썩 들지도 않았고 웬만하면 택배를 이용하지 않기 위해 고심하던 차에 초콜릿을 직접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노브랜드 매장에 들렀고 노브랜드 초콜릿이 비건 초콜릿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맛도 나쁘지 않았다. 귀찮은 걸 싫어하는 편이라 앞으로는 초콜릿을 만들지 않고 노브랜드 초콜릿을 구매할 것 같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근처 이마트에도 노브랜드 초콜릿이 있었다.


ⓒ 노브랜드 자이언트 초콜릿

 

초콜릿의 위기

'동물 착취' 상품을 거부하는 데 열중하는 사이에 한 가지 간과했던 사실이 있었다. 초콜릿 산업은 전반적으로 인간동물을 착취하는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비건은 인간동물을 착취하는 상품도 거부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인간도 동물이니까. 그런데 초콜릿 산업은 심지어 '아동 착취'를 기반으로 한다.


미 시카고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코코아의 주요 원산지인 서아프리카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에서 5~17세 어린이의 43%가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 10년간 코코아 생산에 동원된 아동 비율이 14% 늘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코코아 생산량이 62% 증가한 데 따른 것으로 밝혀졌다.


내가 비건 상품을 소비하고 비건 식단으로 먹는다 해도 당당하게 비건이라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달달함 안에 감춰진 진실. 손바닥만 한 초콜릿 안에 수많은 착취를 때려 넣었다. 우리는 럭셔리해 보이는 금빛깔의 포장지를 뜯어 달콤한 초콜릿을 즐길 뿐이다. 그 안에 담긴 착취의 삶들은 깡그리 무시된다. 초콜릿을 통해 자본주의를 발견한다면 과한 해석일까? 과연 그럴까. 나도 모르는 채로 착취에 가담하고 있단 사실에 무기력해지고 가끔은 견디기 너무 힘들기도 하다. 초콜릿도 직접 생산해야 하는 걸까? 대안이 있긴 하다. 우유와 같은 동물성 식품을 소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비건' 상품을 구매하면 되고, 인간동물 착취 산업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서는 '공정무역' 상품을 구매하면 된다. 아, 그런데 막상 이 두 개의 교집합을 찾아보는 게 만만치 않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손바닥만 한 초콜릿을 먹는 일에도 간편함과 싸우는 일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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