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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Dec 03. 2020

비건과 논비건이 함께 즐길수 있는 식당

여의도 신동양반점

대전에 사는 부부가 서울에 올라온다며 연락이 왔다. 우리가 애정 하는 부부다. 늦게 연락해서 미안하단 말과 함께 주말에 시간이 되면 저녁 식사를 한 끼 하자고 제안했다. 부부는 특별한 일이 있어 온 게 아니라 오래간만에 놀고 쉬기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 일분일초가 소중한 시간일 텐데 여행 시간 일부를 우리에게 내어주고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오히려 반가웠고 고마웠다.


이 부부는 내가 비건 지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채식 옵션이 가능한 중국집을 예약했다. 누구나 배려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나도 타인을 배려하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부부 중 한 명이 아주 오래전부터 페스코 베지테리언을 시작했다. 내가 채식을 하게 된 데에는 분명 이 친구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참 신기하다. 타인의 삶이 내 삶에 스며들듯 영향을 끼친다. 내 삶도 누군가에게는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가 간 식당은 여의도에 위치한 신동양반점. 지도를 따라 여의도 5번 출구로 나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신동양반점이라는 상호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헤매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건물 최고층에 한자로 新東陽. 상호가 한자로 쓰여있는, 진짜 중국집이었다. 중학생 때 열심히 공부해뒀던 한자가 이렇게 쓸모 있을 줄야. 주입식 교육의 수혜자로서 스스로가 기특했다.


식당 안에 들어서자 넓은 홀이 있었다. 직원은 안쪽에 룸으로 우릴 안내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다시 한번 우리가 '중국집'에 와있음을 깨달았다. 중국 특유의 화려한 무늬. 주황색 조명과 빨간색과 황금색으로 치장된 벽과 의자. 길게 늘어뜨린 실크 식탁보. 우리는 그야말로 여의도 속 중국에 와있었던 것이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로비스트들이 회동할 법한 장소처럼 보였다. 악수라도 하면서 사진 한 장 남겼어야 하는데 사진 찍지 못한 게 정말 아쉽다. 만나자마자 수다를 떨다가 음식이 나오자 먹기에 바빠서 사진을 못 찍었다.


좌: 표고탕수, 채소군만두 / 우: 볶음밥(?)


가격이 비싸지 않았다. 5명이 메인 메뉴 4개(지삼선, 표고탕수, 고추잡채와 꽃빵, 군만두), 식사 메뉴 3개(볶음밥, 짜장면, 짬뽕)를 먹었고 십만원 정도 나왔다. 더군다나 음식이 조금 남았다. 음식 남기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배불러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메뉴판은 두 개다. 초록색 메뉴판은 채식 메뉴판이고, 붉은색 메뉴판은 육식 메뉴판이다. 나는 채식주의자이지만 붉은색 메뉴판에서 음식을 주문해도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친구 한 명이 오늘은 초록색 메뉴판에서만 주문을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음식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왼쪽의 표고탕수와 군만두. 집에서 주로 식사를 하다 보면 기름에 튀긴 음식을 먹기가 쉽지 않은데 바삭바삭한 식감과 튀김옷 사이로 베어 나오는 기름이 일품이었다. 짜장면은 독특한 향이 났고 짬뽕은 얼큰했다. 지삼선은 바삭바삭한 맛을 기대했는데 눅눅한 식감이어서 친구들이 맛있게 먹었다. 기름 가득한 중국 음식에 콜라가 빠질 수 없다. 콜라는 1.5L 한 종류밖에 없었고 마지못해 큰 걸로 주문했지만 다 마셨다. 매우 풍성하고 맛있는 채식 저녁식사였다.




이 부부와의 함께한 식사는 처음이 아니다. 1년 전 우리 집에 초대해서 밥을 먹었던 적이 있다. 당시 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었고 우렁 파스타란 망작을 식탁에 올렸다. 부부는 그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우렁 파스타였다. 손님을 불러놓고 처음 해보는 음식으로 대접하다니, 다시 생각해보니 참 부끄러운 기억이다. 맛없고 예의도 없는 초대였다.


우리도 초대를 받아 대전에 내려간 적이 있다. 참 인상 깊은 하루였다. 오후 1시쯤 대전에 도착하여 7시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동하는 시간 외에는 반나절 동안 그 부부의 집에서 식사하고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었다. 7시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시간은 금세 흘렀다. 이전에는 당일치기 여행을 하더라도 이곳저곳 많이 다니면서 스탬프 찍듯 여행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대전에 가서 아무 데도 가지 않고 한 장소에서 친구들과 수다 떨고 편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마음이 정말 풍성해지는 시간이었고 이렇게도 여행할 수 있단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이전에는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는, 편식하지 않는 잡식성 육식주의자였다. 요즘은 누구와 먹느냐에 못지않게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해졌다. 음식에 대한 신념이 생겨 육식하지 않는, 편식하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아직 채식이 보편화되어있지 않다보니 채식 식당을 고를 때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채식인인 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차 한 잔 하는 게 육식인에게는 꽤 번거로울 수 있다. 이런 걸 생각해보면 나와 만나 채식하고 차 한 잔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눌수 있는 친구들이 참 소중한 관계라는 걸 깨달아가고 있다. 채식만 하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건 너무나 꿈같은 바람이다. 차라리 외국처럼 채식이 보편화되어 어느 식당을 들어가더라도 비건과 논비건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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