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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Dec 22. 2020

채식이 비싼 이유

고기가 비싸다는 시절은 지났다. 공장식 축산으로 인해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자본주의의 특기 아닌가. 육질은 좋아졌고 양은 많아졌다. 장마를 비롯한 기후위기에 채소값이 요동치지만 삼겹살은 요지부동이다. 간혹 친구들이 "채식이 돈이 더 들지 않아?"라고 질문한다. 물론 돈 아끼려고 채식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채식이 비싸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채식은 육식에 비해 더 많은 비용이 들까? 

결론부터 말하면 식단 구성과 양에 따라 달라진다. 육식을 예로 들면 삼겹살을 구워서 쌈장에 찍어 쌀밥이랑만 먹을 수도 있지만 상추와 깻잎, 고추를 곁들여 먹기도 하고 버섯과 고구마, 감자, 소시지를 함께 구워 먹기도 한다. 채식도 마찬가지다. 갖은 야채를 넣어 먹는 버무림(샐러드)만 해도 수십가지 종류로 즐길 수 있다. 어떻게, 얼마나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개인이 직접 요리해서 먹는 경우에는 비용이 천차만별이지만 '채식 식당'에서 사 먹는 경우만 생각해보자. 실제로 채식전문점이나 채식 옵션 식당에 가면 음식이 비싸다고 느낄 때가 많다. 실제로 가격이 비싼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 비싼 데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채식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요리를 조금이나마 할 줄 알고 장을 직접 보기 때문에 식재료 값에 빠삭한 편이다. 식당에서 나오는 요리를 보면 대략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었는지 알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채식 요리는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실제로 채식 요리가 비싼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신선도. 채소가 갖고 있는 재료의 특성 때문이다. 고기에 비해 채소는 신선도를 유지하기 힘들다. 물론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고기 보관이 더 힘들었다. 고기는 실온에 두면 상하기 때문이다. 냉장고가 생기고 고층 빌딩에 살게 되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채소는 더 이상 밭에서 뽑아 먹지 않고 마트에서 구입한다. 고기는 구입하더라도 냉동으로 보관하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채소는 구입하면서부터 신선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신선도 압박감'이라고 해야 할까. 얼른 요리해서 먹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아마도 비건 식당 혹은 비건 카페는 이런 압박감을  자주 그리고 강하게 느낄 것이다.


둘째, 육식 인구에 비해 채식 인구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한국채식연합(KVU) 따르면 2019 국내 채식 인구는  150 , 비건(완전 채식주의자) 인구는 50 명으로 추산된다. 소비층이 얇다. 수요가 줄어들면 공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공급이 줄어들면 자연스레 식재료의 순환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금액은 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요가 줄어들면 음식의 (quality) 함께 떨어진다. 장사 잘되는 호프집의 생맥주가 맛있다는  들어본 적이 있는가. 재료의 순환이 일어나지 않다 보니 음식의 질도 떨어지는 것이다.


셋째, 채소는 국내 날씨에 영향을 받는다. 축산업은 날씨에 덜 영향받는 편이다. 채소와 축산물, 모두 국내산과 수입산이 있지만 채소는 국내 의존도가 높다. 장마와 가뭄에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 장을 봐서 요리를 해본 이들은 경험했을 것이다. 올해도 장마로 인해 채소값이 천정부지로 올랐었다. 앞자리가 바뀌었었다. 그럼에도 축산물 가격은 그대로였다.


넷째, 경쟁이 없다. 걸어가서 한 끼를 먹고 올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채식 식당은 많지 않다. 지금 당장 가까운 거리로 나가 식당을 한 번 둘러보라. 비건 식당은 차치하더라도 채식 옵션이 가능한 식당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간혹 하나도 없는 경우도 있다. 건축 현장에서 일할 때였다. 한 번은 채식 식당을 두 군데를 찾아갔는데 두 군데 모두 폐업한 곳이었다. 점심시간 10분을 남기고서 일반식당에 찾아가 덩어리 고기 없는 칼국수를 먹고 돌아왔다.


누가 밥 한 끼 먹자고 매번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겠는가. 채식 식당이 가까운 곳에 많지 않으니 직접 요리를 해 먹는 이들은 늘어나고 그러면 자연스레 채식 식당은 운영  힘들어진다. 자본주의의 순리다. 자연스레 폐업하는 채식 식당은 많아지고 경쟁으로 인해 가격이 낮아지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악순환이다.




이와 같은 채식 요식업 생리를  알고 있는 이들이 의도적으로 비건 음식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경우도 생긴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박리다매가 되지 않으니 다른 수가 없다.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채식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소비하는 신세가 되는데 이런 현상을 막으려면 채식 인구가 늘어나는  급선무다. 비건은 아니더라도 채식 지향인이 늘어난다면 채식 식당도 늘어나고 운영에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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