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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Jan 09. 2021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후지산 정상

허약체질 후지산 등반기 3편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났다. 대피소나 산장에서는 저녁 일찍 소등을 하기 때문에 새벽 일찍부터 눈이 떠진다. 새벽 풍경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흑암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원이 다른 추위가 느껴졌다. 칼바람이 피부를 긁는 것 같았다. 찬기가 장기를 타고 몸속을 쓱 한 바퀴 돌았다.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지금 올라갔다가는 사고가 날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나는 한치의 고민 없이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전날 밤 잠에 들 때와 이불 느낌이 달랐다. 전날은 내 몸통 두배 정도 되는 두께의 솜이불에 깔려 자는 것 같아 조금 답답했다. 새벽 칼바람을 맞고 오니 이불이 내 몸을 감싸고 언 몸을 녹여주었다. 잠을 잔 건지 눈만 감고 있었던 건지 헷갈린 상태로 2시간이 흘렀다. 새벽 4시 30분이었다.



바깥은 바람이 세차게 불고 안개가 자욱했다. 바깥 풍경에 카토도 두려웠나 보다. 카토는 아침을 먹지 않고 나와 함께 등산하기로 했다. 내심 카토가 같이 가겠다고 하여 마음이 놓였다. 옷과 신발끈을 단단히 여매고 산장을 나섰다. 산장을 나선 지 5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가방에는 노트북을 비롯해 4박 5일 짐이 가득했고 아침이라 몸이 무거웠다. 강한 바람을 정통으로 맞았다. 장풍을 맞은 듯 몸이 흔들리며 무거운 가방 때문에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지만 옆에 있던 카토가 붙잡아줬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구간에는 좌우로 나무도 없고 붙잡을 만한 게 없었다. 등산로를 벗어나 넘어지기라도 하면 데굴데굴 굴러 어디로 갈지 몰랐다.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나와 카토는 잠시 바람을 피했다가 가기로 했다. 이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몸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숨이 가쁘게 쉬어지고 한 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카토는 나를 기다려주었다. 최대한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한 걸음 내디뎠지만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지 않을 때에야 정상적으로 호흡할 수 있었고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호흡이 가빠졌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고산병이구나.' 도서관에서 등산 책을 여러 권 봤었는데 허투루 읽었던 건 아닌가 보다. 고산병이 오면 보폭을 줄이고 최대한 천천히 이동하라는 글이 기억났다. 되도록이면 쉬는 게 좋지만 태풍 같은 바람이 들이치는데 산 중턱에서 마냥 쉴 순 없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1시간 정도 걷자 해발 3,300m에 이르렀다.


좌: 3,300m 지점 산장 / 우: 정상에 오르기 전, 신사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3,300m 지점에는 산장이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한참을 쉬었다. 이른 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정상에 올라 일출을 보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산행하며 목표를 바꾸었다. 일출은 됐으니 무사히 정상에 올랐다가 무사히 집에 돌아가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비바람까지 몰아쳐 정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후지산이 뭐라고 사서 고생하나'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안의 가오가 그때마다 뛰쳐나와 육체를 지배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걷게 했다. 무모하지만 힘찬 발걸음이었다. 지루하고 고된 산행 끝에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좌: 후지산 정상 분화구의 모습 / 우: 후지산 정상에서 카토와 나

응? 이게 뭐지. 정상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바람이 강한 데다가 안개가 자욱해서 기대했던 풍경은 볼 수 없었다. 백두산 괴물이 갑자기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이 광경을 보고자 개고생을 한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풍경도 나름 특별한 추억이 될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일단 인증샷을 남기기로 했다. 카토와 나는 비석이 있는 곳으로 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안개가 걷힐지 몰라 10분 정도를 기다렸다가 옷만 더 젖었다. 나는 내려가기로 했고 카토는 분화구 주변을 둘러보고 내려온다고 했다. 우리는 안갯속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나는 매점으로 내려와 언 몸을 녹였다. 매점 입구에서는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고 음료 자판기가 비치되어 있었다. 메달 각인기도 눈에 띄었다. 후지산 정상 등반을 기념하는 메달에 이름을 각인하여 주는 자판기였다. 물론 돈을 내야 한다. 매점 옆쪽엔 작은 식당도 있었다. 라면, 우동, 믹스 커피를 판매했다. 충격적이었던 건 믹스커피 한 잔이 500엔. 스타벅스보다 비싸다.

라면이든 우동이든 커피든, 여기서 사 먹는 건 무지하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바르르 떨려 따뜻한 무언갈 뭐라도 먹어야 했다. 일본어를 못하니까 그냥 쌓인 컵라면 중 아무거나 하나를 골랐다. 500엔을 결제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우동이었다. 복불복에 실패했다. 라면을 먹고 싶었는데 우동이 걸렸다. 일단 국물을 들이켰다. 따뜻한 우동국물이 온몸을 돌더니 뇌까지 전해져 짜릿했다. 면과 국물을 싹 비우고 그 자리에서 한참을 쉬었다. 올라온 만큼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다. 등산은 왜 오른 만큼 내려가야 할까.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내려가서 온탕에 몸을 따뜻하게 지질 생각을 하니 다시 내려갈 힘이 생겼다.



2017년에 다녀왔습니다. 시간표와 금액 등은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시즈오카에 방문하시거나 후지산에 방문할 예정이 있으신 분은 시즈오카 블로그와 후지산 관광정보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 후지산 관광정보 http://app.fujiq-resorts.com/fujitozan/kr/

- 시즈오카 관광정보 https://blog.naver.com/goshizuo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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