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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Feb 06. 2021

3776m, 산소통을 메고 걷는 사람들

허약체질 후지산 등반기 4편 (완)

마치 다른 행성에 있다가 지구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정상에서 살짝 내려오니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른 얼굴을 내비쳤다.

구름이 움직이는 모습에 멍하니 한참을 쳐다봤다.

고텐바 코스로 오르면서 봤던 풍경과 비슷한 풍경이었다. 구름이 내 눈 앞에서 움직이는 풍경은 다시 봐도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한자리에 멈춰 구름이 움직이는 모습을 한참 관찰했다. 구름은 격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았고 어떤 규칙에 따라 움직이지도 않았다. 자연스럽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그야말로 구름은 유유자적이었다. 내가 본 풍경은 딱 그 순간에만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순간이 꽤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이 순간을 함께 간직할 친구가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었다.

산소를 마시는 등산객도 보인다.

산소통을 메고 산을 오르는 젊은 일본인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등산을 좋아했다. 굳이 높은 산이 아니어도 동네 뒷산을 오르거나 사는 지역 근처의 산을 올랐었다. 10년 전만 해도 산에서 젊은 사람을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스스로를 '애늙은이'가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고 주변에서도 산을 좋아하는 내 취향이 특이한 것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요즘처럼 젊은 세대가 등산을 많이 하던 시절이 있었을까? 코로나여서 그런지, 유튜브와 인스타의 영향 때문인지 최근에 산을 찾는 2030 세대가 굉장히 많아졌다. 후지산을 올랐던 2017년만 해도 국내에는 산에서 2030 세대를 보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후지산에는 젊은 부부나 커플 그리고 청소년들도 굉장히 많이 보였다. 그들과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아 산을 좋아해서 온 건지 억지로 끌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졌었다. 후지산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기도 하고 1년에 3개월만 개방되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산에서 젊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신선한 경험이었다.


후지산은 해발이 높다 보니 산소통을 메고 올라온 등산객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산소를 마시는 모습이 굉장히 신기했다. 산소통의 산소를 들이쉬는 모습을 직접 본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후지산 여행을 준비할 때 얼핏 '산소통 필요성'에 대한 정보를 보기도 했다.' 에베레스트도 아니고, K2도 아니고, 산소통이라니? 호들갑 아니야?'라고 생각했었는데 호들갑이 아니었다. 새벽에 정상에 오를 때 고산병 증세로 살짝 고생하면서 산소통을 메고 올라온 등산객들이 왜 그랬는지 '몸소' 깨달았다. 후지산을 오를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평소 체력과 등산 경력을 고려해서 산소통에 대한 고민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다. 맨 땅에 헤딩해도 뭐든 결과는 나오겠지만 헬멧을 쓰고 헤딩하면 안전하지 않은가.

아이를 안고서 오르는 아빠 등산객


제 몸 하나 끌고 등산하는 것도 힘든데 아이를 안고 오르는 등산객을 봤다. "스고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빠의 힘이었던 건가?

후지산을 오르는 일본 등산 동호회


후지노미야 코스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

후지노미야 코스는 도쿄에서 가깝기도 하고 후지산 등산 코스 4개 중 가장 거리가 짧은 코스다. 해발고도 차는 요시다 등산로 다음으로 적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코스다. 등산로와 잘 정비되어 있어 초보자도 다소 쉽게 오를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사가 심해서 단시간 내에 몸에 가해지는 자극이 크기 때문에 고산병에 주의해야 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한국에도 동호회와 같이 단체로 등산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텐바 코스에 비해 후지노미야 코스에서는 단체 등산객들이 많이 보였다.


후지노미야 등산로 입구 식당의 모습


오를 때는 카토와 함께 올랐지만 내려갈 때는 혼자 내려가다 보니 사색할 시간이 늘어났다. 나는 무엇 때문에 비행기까지 타고 바다를 건너 후지산까지 왔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약체질 몸을 이끌고서 지리산 2박 3일 코스로 종주하고 설악산, 덕유산, 적상산, 계룡산, 무등산을 올랐었다. 후지산에 오른 이유를 철학적으로도 생각해보고 과한 의미 부여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후지산을 오른 이유가 마라톤을 할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저 3,776m 숫자를 내 몸에 새기고 싶었던 것 같다.

 

동시에 몸이 겪었던 공포도 함께 남았다. 3,776m라는 숫자와 함께 고산병의 공포도 함께 남았다. 에베레스트, 히말라야 산에 대한 꿈은 꿈으로만 간직해도 괜찮겠다는 현실적인 생각도 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후지산에 오르기를 참 잘했다. 무엇보다, 무식하게 산을 올랐지만 누가 뭐래도 3,776m라는 숫자가 참 뿌듯하다. 마라톤 완주했을 때처럼 뭐라도 된 기분이었다. 3,776m라는 숫자와 함께 뭐라도 저지를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생겼다.


생각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후지노미야 코스 등산로 입구까지 와있었다. 그리고 혼자 상상했다.

"가장 높이 올라본 산이 어디예요?"

"하하. 후지산입니다. 3,776m죠. 고산병도 경험해봤습니다."


나는 후지산 등반이라는 경험을 내 몸에 새겨 '흥미로운 인간'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2017년에 다녀왔습니다. 시간표와 금액 등은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시즈오카에 방문하시거나 후지산에 방문할 예정이 있으신 분은 시즈오카 블로그와 후지산 관광정보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 후지산 관광정보 http://app.fujiq-resorts.com/fujitozan/kr/

- 시즈오카 관광정보 https://blog.naver.com/goshizuo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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