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면 떠오르는 산?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북한산과 관악산, 그리고 일반 시민들에게는 데이트 코스로 알려진 남산과 낙산 정도가 유명하다. 오늘 소개할 산은 불암산이다. 서울의 산이다. 불암산은 산쟁이들에겐 익숙한 산일지도 모르겠지만 등산 초보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불암이라는 이름 때문일까. (실제로 노원구는 최불암 선생님을 명예 산주로 임명했다.) 이름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기억을 되짚어보면 5년 동안 서울에 살면서 불암산에 관해 들어본 적은 없었다.
풍수적으로 조산인 불암산은 중요하다. 불암산은 높이 510미터로 매우 아름다운 산이다. 관악산보다 낮으면서 서울서 멀리 떨어져 있고 위압감도 전혀 주지 않으니 온화하고 선한 인상을 준다. 도읍지의 조산이 이렇게 아름다운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안산인 관악산의 기세에 눌려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만약 불암산과 관악산이 바뀌었더라면 서울은 명당으로서 최고의 조건을 갖추었을 것이다.
<사주명리 인문학>, 김동완 /p.288-289
나는 <사주명리 인문학> 책 덕분에 불암산을 알게 되었다. <사주명리 인문학>에서는 한양의 풍수지리학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한양의 산들을 소개한다. 한양의 동서남북을 이루는 산을 주산이라고 하는데 북악산, 남산, 인왕산, 낙산, 네 개의 산이 주산에 해당된다. 그리고 관악산, 불암산, 북한산, 수락산 등이 조산이다. 작가는 불암산을 극찬한다. 어떠한 모습이길래 이런 찬사를 아끼지 않는 걸까. 확인해보고 싶었다.
불암산은 서울 어디에서든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종로 집에서도 출발한 지 40분 만에 도착했다. 산 아래, 당고개역에서 바라본 불암산은 아름다웠다. 등산로에 들어섰다. 서울 산들의 특징 중 하나가 바위가 많다는 것인데 불암산도 바위가 많았다. 부드러운 흙의 등산로가 대부분이었지만 종종 거칠고 딱딱한 바위 등산로를 걸었다. 푸른 침엽수 나무들과 덕분에 그늘 아래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반면 푸른 나무들이 울창하다는 건 그만큼 산행 도중에는 산 아래의 풍경을 감상하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정상에 도착하기 전,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산 아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등산로가 아닌 길로 접어들었고 큰 바위 위에서 예기치 않은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만 감상할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되돌아보면 특별한 추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마터면 위험에 처할 뻔했던 아찔한 기억이기도 하다. 다행히 친구와 함께 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등산로를 찾게 되었다. 불암산은 국립공원이 아니다. 유명 관광지도 아니다. 아름다웠지만 불친절한 산이었다. 안내판이나 표지판이 적소에 설치되어 있지 않아 애를 먹은 등산객이 우리만은 아닐 것이다.
산행 초보이거나 불암산 산행이 처음이라면 친구와 함께 가는 걸 추천한다. 여러 이유로 산은 혼자보다 함께인 게 좋다. 만일의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산을 오른다면 대화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산을 오르는 시간만큼 둘의 관계도 깊어진다. 침묵을 견딜 수 있는 친구와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대화도 하고 때론 사색의 시간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르는 데 2시간이면 충분했다. 조난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람쥐광장에 도착했다. 다람쥐광장은 정상 옆 자락에 넓게 펼쳐진 바위지대다. 그 바위 지대 위에서 한참 동안 풍경을 즐기며 사진을 찍었다. 다람쥐광장에서 바라본 정상 풍경과 도심 쪽 풍경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서울의 높은 빌딩 숲들을 내 발아래 두고 본다는 사실이 묘하게 마음을 안정시켰다. 높게 솟은 바위와 완연하게 개화한 진달래 보랏빛은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했다. 진달래가 피는 딱 그 시기에만 누릴 수 있는, 봄 특유의 풍경이었다.
정상으로 이동했다. 산 정상에 가니 남양주와 서울이 한눈에 들어왔다. 남양주 방향의 풍경은 서울산을 오르면 보게 되는 친숙한 풍경이었다. 깎아내린 듯한 아찔한 암벽과 암벽 사이사이로 고개를 내민 나무들은 서울산 고유의 느낌을 뿜어냈다. 반대편 서울 방향의 풍경은 달랐다. 이전에 올라갔던 산에서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탁 트인 전망은 시원스러웠고 완만한 산등성이를 덮는 푸른 숲의 풍경은 포근했다. 북한산에서 웅장함과 경이로움을 느꼈었다면 불암산에서는 포근함과 따스함을 느꼈다. 자신을 뽐내기보다 방문한 등산객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산 같았다. 봄을 맞이한 불암산은 아름답고 포근했다. 높이 솟은 바위 정상에 피어난 보랏빛 진달래, 그리고 산 아래로 완만하게 형성된 연두 빛깔의 울창한 침엽수, 정상 옆 자락에 보이는 다람쥐광장의 회색 빛깔의 넓은 바위지대, 미세먼지에 가려져 희미하게 보이는 서울의 빌딩 숲, 이 모든 것이 조화로웠다. 우리는 당고개역 쪽에서 올라 정상에 들렀다가 불암산공원 입구가 있는 상계역 쪽으로 내려왔다. 여름이 되면 완연하게 물들 초록 빛깔의 불암산을 기대하며 하산했다.
감히 이렇게 칭하고 싶다. 서울의 가장 아름다운 산, 불암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