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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Mar 05. 2021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집은 인권이다>를 읽고

한국은 주택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2002년을 기점으로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섰고, 2014년에는 118.1%에 이르렀다.


2015년부터는 '新주택보급률'이라는 통계를 새롭게 반영했는데 주택 수에 다가구 구분거처를 반영하고 가구 수에 1인 가구를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2015년 102.3%, 2016년 102.6%, 2017년 103.3%, 2018년 104.2%, 2019년 104.8%로 주택보급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가구 수의 변화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집이 멸실되는 것보다 새로 지어지는 주택의 수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이 부족하기 때문에 집을 더 지어야 한다는 말은 온당치 않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집이 없는 걸까. 매일 혹은 매달 잠자리를 옮겨 다니는 사람이 넘쳐나는 걸까. 2년마다 전세나 월세 집을 찾아다니는 나 같은 사람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비닐하우스와 거리에서 살고 죽는 사람들

<집은 인권이다>는 2010년에 출간된 책이고 소개된 이야기들은 이전의 이야기들이다. 철거민, 홈리스, 장애인, 이주노동자, 청소년, 비혼 여성, 성소수자가 살고 있는 집 그리고 생각하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집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집을 구하는 과정과 살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비닐하우스에 사는 '승짱'의 이야기가 있었다. 글을 읽으며 '11년 전에는 비닐하우스에 사는 사람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야 마땅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도 비닐하우스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11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 씨는 비닐하우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어쩌면 사회적으로 살해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후 경기도는 도내 이주노동자 주거환경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이주노동자의 49%는 비거주지역 숙소에 살며 38%는 비닐하우스 내 숙소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이주 노동자 문제들이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 과거형으로 바뀔 날을 고대한다.
- 247p



주거권은 당신과 나의 문제다

나는 결혼 3년 차 신혼부부다. 나라에서 공인한 부부가 된 덕에 우리는 감히 만질 수 없는 돈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을 수 있었고 이에 대한 이자를 내면서 방 하나, 거실 하나, 화장실 하나가 딸린 집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결혼 전에는 달랐다. 결혼하기 직전에는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26만 원, 관리비 별도인 집에서 살았다. 4.5평 반지하였다. 마음만 먹으면 옆방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소음에 취약했고 창문을 열면 바깥에서 담배 냄새가 흘러들어오는 집이었다. 상상력이 샘솟는 집이었다. 불이 나면 어떻게 탈출해야 할지, 홍수가 나면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상상하게 만드는 집이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 2014년 대학생 때는 발만 뻗으면 꽉 차는 집에 살았다.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8만 원이었다. 그곳에는 변기 하나 간신히 설치된 너비의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은 문이 없었다. 커튼이 문을 대신했고 방과 현관 그리고 화장실은 아슬아슬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천정이 다 뚫리고 높은 파티션으로 각각의 방이 구분된 기숙사에서 살았다. 강당을 개조한 것 같은 기숙사였다. 옆방 코 고는 소리는 옆방 담벼락을 넘어 우리 방으로 넘어왔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잠깐 고시원 생활도 했다. 발 뻗으면 닿는 크기의 방이었고 손바닥 두 개로 가리면 충분히 가려지는 창문이 하나 있는 고시원이었다. 내가 살았던 집들은 사실 집이 아니라 방이었다. 나는 방에 살았다. 가난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집에서 살고 있다. 가끔 층간 소음으로 괴롭기도 하지만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2년의 시간이 흐른 뒤 내가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 3에 따르면 내가 거주하기 원한다 하더라도 집주인이 거주하겠다고 퇴거를 요구하면 다른 집을 구해야 한다.


전세 보증금이나 월세를 증액하는 경우에도 이사를 고려하게 된다. 주택임대차보호법 7조 2항에 따르면 5% 상한 선이 정해져 있지만 전세금을 올린다면 보증금과 대출금리 부담에 따라 우리 부부는 또 다른 집을 구해야 한다. 더군다나 우리의 재정적 상태가 지금보다 열악해진다면 집주인이 허락한다 해도 우리는 이 집에 더 이상 남아있을 수 없다. 관리비와 대출 금리를 갚아나갈 여력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정착했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서울을 떠도는 방랑자 신세다.


신혼부부 특혜도 7년이란 기간으로 정해져 있다. 7년이 지나면 신혼부부 특혜도 누릴 수 없다. 만약 신혼부부 특혜가 사라지는 때에 우리 부부 명의로 된 집문서 한 장이 없다면 우리는 또 어디론가 떠나야만 한다. 우리는 어디로 밀려나는 걸까. 온갖 상상을 펼치게 된다. 결국엔 우리가 가진 돈이 우리가 살 지역과 공간을 결정한다.


'내 집 마련'이 대한민국 국민의 꿈이 된 것은 엄밀히 말하면 집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 때문이 아니다. 세 들어 사는 삶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전월세살이'가 불안정하지 않다면 모두가 집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1가구 1주택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든지 아니면 세 들어 살더라도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주거권은 인권이다

인간 삶의 3대 요소를 의식주를 꼽는다. 그야말로 기본 중 기본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살 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많은 인권 문헌들은 주거권을 빼놓지 않고 다룬다.

주거권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국제법적 해석은 1991년 발표된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일반 논평4-적절한 주거의 권리'다. 이에 따르면 주거권은 물리적인 주거만이 아니라 안전하고, 평화롭고, 존엄하게 살 권리를 말한다.
- 109p

사실 주거권이라는 용어가 낯설기 때문에 주거권이 무엇인지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주거권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14조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16조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 헌법

하지만 법의 가장 기초가 되는 헌법에는 주거권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주거에 관한 헌법 조항이 있지만 '주거권'에 대한 내용은 없다. 즉 국가가 사는 공간을 제공하거나 보장할 책임은 없다.


주거권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다른 권리와도 직결되는 권리다.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에 따르면 홈리스행동은 지난 5월 '노숙인 등' 102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실태에 관한 설문을 진행했다. 설문조사 응답자 중 재난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은 사람은 무려 77.5%에 달했으며, 신청하지 않은 이유로는 주소지가 멀어서(27%), 신청 방법을 몰라서(26%), 거주불명 등록자라서(23%) 순으로 다양했다. 50% 이상이 집과 관련된 이유였다. 이외에도 주소가 불분명한 홈리스 같은 경우에는 국민으로서의 권리,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국민'건강보험 혜택도 제공받지 못한다. 주민등록제와 주거권 그리고 기타 다른 국민으로서의 권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대한민국에서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2019년 기준 전체 주택 소유자는 1434만 명이고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한 다주택자들은 228만 명이다. 전체 주택 소유자 1434만 명 가운데 무려 16%에 달하는 수치다. 다섯 채 이상 가진 사람도 11만 8천 명이다. 왜 거주하지도 않는 집을 다섯 채나 가지려고 하겠는가. 경제 문외한도 이에 대한 답은 안다. 많은 이들이 집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집을 사고 있다. 살기 위한 집이 아니라 부를 쌓게 해 줄 집을 사기를 희망하고 있다.  


서두에 썼지만 집이 부족한 시대가 아니다. 집을 더 짓는 게 문제의 해결 방안이 아니다. 즉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 방안으로 집을 더 짓는다면 그 집은 반드시 집이 없는 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다시 밝히지만 <집은 인권이다>는 2010년 책이다. 10년도 더 된 글이 왜 오늘날의 일처럼 생생한 걸까.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오마이뉴스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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