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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Nov 30. 2021

엄마와 담근 생애 첫 김장

비건 김치(소금 김치) 만드는 법

고향에 내려가기 전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피곤한데 쉬지, 뭐하러 내려와"

"코스트코도 가고 얼굴도 볼 겸, 겸사겸사 가는 거지 뭐"

"지난주에 김장을 다하긴 했는데. 엊그제 전주 할머니 집에서 배추가 싱싱해 보이는 게 있어서 열 포기 가져왔거든. 젓갈 안 넣고 김장해보려고"


첫 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다. 엄마는 마당에서 빨간 고춧가루를 대야에 휘젓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우릴 보자 "피곤한데 뭐하러 내려왔냐"며 전화 속 음성을 그대로 재현했다. 하지만 아들과 며느리 얼굴을 보는 게 내심 좋았는지 입이 귀에 걸렸다.



채식한 지 어엿 2년이 넘었다. 외식할 때는 거의 김치를 먹지 않지만 집에서는 어머님(아내 어머니)이 보내주신 젓갈이 들어간 김치를 먹곤 한다. 비건 김치도 몇 번 사 먹어보고 겉절이도 자주 만들어먹지만 귀찮음을 이유로 아직도 젓갈이 들어간 김치를 먹는다.


엄마는 젓갈을 넣지 않고 소금 김치를 하겠다며 몇 포기 가져가라고 말했다. 김장해야 할 배추는 총 열 포기. 엄마는 옷이 더러워진다며 그냥 앉아서 쉬라고 말했지만, 처음으로 비건 김치를 담글 생각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말이 비건 김치이지, 사실 비건 김치는 최근에 새로 생겨난 게 아니다. 젓갈이나 액젓을 뺀 소금 김치가 비건 김치다.


"최근에야 하얀 새우젓 넣고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지, 네 아빠가 젓갈 냄새를 싫어해서 우리는 원래 소금 김치를 담갔었어"

"엄마 그러면 양념은 어떻게 해?"



비건 김치(소금 김치) 담그는 비법

소금 김치이자 비건 김치 만드는 비법은 다음과 같다.

1. 다시마와 버섯을 우려 채수를 만든다.

2. 고춧가루에 채수를 넣고 젓는다.

3. 빻은 마늘을 넣고 젓는다.

4. 채소 갓을 썰어 넣는다.

5. 쓴 맛을 완화시키기 위해 설탕을 넣는다.

(각 과정에 양념 맛을 봐가며 추가로 재료를 넣는다.)

6. 양념을 배추 속에 넣는다.


고무장갑을 끼고서 양념을 한 움큼 쥐고 배춧잎 하나씩 들어내며 양념을 배춧잎 앞뒤로 발랐다. 김장 30년 차 전문가 엄마는 열심히 양념을 바르고 있는 내게 "김치가 맛있으려면 이파리 부분뿐만 아니라 배추 심 안쪽으로도 잘 발라줘야 돼"라고 말했다. 김치에 손 한번 안 대고 입만 대 왔던 30년 차 김치 평론가 아빠는 "잘 바르고 있네"라며 칭찬해줬다.


열 포기 담글 때였나. 아내의 옷에 양념이 튀었다. 나는 "꼭 초짜들이 티 내고 일하더라. 나 봐봐. 깨끗하지?" 하며 웃었다. 모두가 함께 웃었다.


열 포기를 다 담그고 고무장갑을 벗을 때였다. 고무장갑 손가락이 쭉 늘어났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장갑에 붙어있던 고춧가루가 사방으로 튀었다. 수류탄이 터지고 파편이 퍼지듯 고춧가루가 내 상의에 안착했다. 좀 전의 아내와 엄마 웃음은 신호탄에 불과했다. 고춧가루 폭탄을 맞은 나를 보고서 모두 잇몸과 이가 만개했다. 나는 멋쩍게 옷에 묻은 고춧가루를 떼어냈다. 온몸에 김장의 흔적을 남긴 초짜의 첫 김장은 그렇게 끝났다.


물론 양념을 만드는 과정은 대부분 엄마의 몫이었다. 하지만 양념을 만들고 비건 김치를 담그는 과정이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고 다음부터는 직접 김치를 만들어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스스로 김치를 담갔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엄마, 아빠와 아내 그리고 내가 공유할 추억이 하나 생긴 것 같아 마음이 포근해지기도 했다.


생애 첫 김장, 엄마와 함께 담근 김장

생애 첫 김장이었다. 내 손으로 직접 담갔다. 겨우 열 포기 담갔을 뿐인데 허리가 조금 욱신거렸다. 채식을 시작하고 요리하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스레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에 깃든 모든 정성에 감사함이 생겼다. 그동안 매년 김치를 만들어준 엄마와 어머님(아내 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또한 김장 김치를 담그는 우리와 그 모습을 지켜만 보던 아빠를 바라보며 머리로만 알고 있던 사실을 몸소 겪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여성이 온몸으로 김장을 담그는 동안 남성은 눈과 입으로만 김장을 담그겠구나'


살아온 시간이 달랐기 때문에 물론 아빠가 이해가 안 되는 바가 아니다. 다만 과거의 문화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었다. 왜냐하면 나도 이번 김장이 처음이었으니까.


사실은 이전에도 여러 번 김장하겠다고 엄마에게 이야기는 해보았으나 그때마다 엄마가 거절했던 기억이 난다. 고작 양념 심부름 정도 했을 뿐, 나도 아빠랑 크게 다르지 않은 입만 쓰는 조선의 선비일 뿐이었다.


엄마는 내가 채식을 시작한 이후로 고향집에 올 때마다 "고기 귀신이 어떻게 고기를 끊었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네, 고기 안 먹고 싶니?" 매번 의심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음식 해놓을까?"라고 물으며 갖은 채소 반찬과 제철 나물들을 준비한다. 어쩌면 이번 김장도 젓갈을 넣지 않고 김장하길 원하는 날 위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매년 김장할 때쯤 엄마에게 "요즘 김치 저렴하게  나온다"라며  먹자고 얘기했었다. 그러나 매번 엄마는 누군가를 위해 김장을 했다. 앞으로도 그럴 테다. 김장은 무조건  하려고 생각할  아니라, 차라리  포기라도 옆에서 돕는 자식이 되어야겠다. 예전처럼 김장해서     챙겨주는 유교 김치공장이 아닌 이상, 가족끼리만 소소하게 함께 만들어 먹으며 추억을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오마이뉴스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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