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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Feb 18. 2022

동물은 당신이 '키워야 할' 존재가 아니다

반려인구 천만 시대다. 2020년 통계청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2,092만 가구 중 반려동물 보유 가구는 312만 가구(14%)로 조사되었다. 1가구 2.41명 기준, 750만 명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 통계에 따라 추정되는 반려인구는 각각 다르지만 천만 내외인 것으로 파악된다.


5천만 인구를 생각해볼 때 천만 반려인구(20%)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이 때문일까. 20대 대선에서도 각 후보들이 구체적인 반려동물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놀이터, 진료비 표준화, 의료보험, 공공장례시설 등 과거에는 사람에게만 어울렸던 용어들이 '반려동물'과 짝을 이루고 있다.


© unsplash(Hannah Lim)


번식장, 경매장, 펫숍, 구매... 고통의 순환고리


반려인구가 증가하면서 반려동물의 형편은 나아졌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해를 거듭할수록 유기동물이 증가하는 추세다. 2019년 유기동물 중 24.8%는 자연사했고, 21.8%는 안락사되었다. 구조되는 동물의 절반에 가까운 동물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유기동물 문제는 반려동물 산업과 연관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로 펫숍을 꼽을 수 있다. 펫숍은 말 그대로 반려동물을 구매하는 가게다. 펫숍에 가면 젖을 떼지도 못한 새끼 강아지들이 있다. 


펫숍에 공급되는 동물이 어디에서 오겠는가? 번식업장이 없으면 펫숍이 존재할 수 없다. 상품을 생산하듯 품종견을 찍어내는 곳을 ‘강아지 공장’이라 일컫는다. 강아지뿐이겠는가. 특정 품종묘를 찍어내는 ‘고양이 공장’도 있다. 그곳에는 임신과 출산만을 반복하는 강아지, 고양이가 있다. 인공수정이라 일컫지만 실은 강간과 다름없다. 사육 환경도 문제다. <TV 동물농장> 765회에서는 번식장 환경을 고발한다. 뜬장 아래는 배설물과 털이 엉켜 쌓여있고 뜬장 위에는 강아지가 있다. 이런 환경에서 동물이 건강할 리가 없다.



번식장에서 태어난 새끼 강아지나 고양이가 펫숍에서 판매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2017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이 펴낸 <반려동물 연관산업 발전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 위축 또는 과잉생산으로 (반려동물) 판매가 부진하면 경매가 유찰되고, 유찰된 반려견이 식육견으로 판매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강아지 공장의 강아지가 펫숍에서 판매되지 않으면 식육견으로 판매된다. 펫숍에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구매하는 일은 이 거대한 동물 착취 산업에 공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일은 '또 다른 동물'을 희생시키는 일


반려동물 산업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힘은 반려동물 사료 산업이다. 반려동물 사료와 간식은 돼지, 소, 닭, 말, 오리, 연어, 참치 등 수많은 동물을 원료로 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일은 또 다른 동물을 희생시키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동물 사료를 만드는 주된 방법은 렌더링이다. 렌더링은 모아놓은 동물 사체를 갈아 넣은 뒤 고온·고압으로 처리, 분말로 만드는 것을 일컫는다. 렌더링 업자들은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거나 병에 걸렸거나 불구가 된 동물을 수거한다. 예를 들면 도살장에서 병이 들었거나 불량품으로 판정된 동물, 동물병원과 보호소에서 안락사당한 개와 고양이 사체, 로드킬 당한 동물 사체, 동물원에서 죽은 동물까지 수거한다. 사람이 먹는 육류로 만들어졌지만 오염되거나 상한 상품도 수거한다. 


책 <개, 고양이 사료의 진실>에 나오는 미국 내 거대 렌더링 회사인 ‘베이커코모디티’는 정기적으로 보호소와 동물병원에서 죽은 동물을 수거한다. 캐나다에서도 안락사된 개와 고양이 사체를 렌더링한 원료로 사용하는 것은 합법이다. 


과연 해외만 그런 걸까? 2019년 제주도청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 직영 동물보호센터는 약 9개월 동안 자연사한 1,434마리와 안락사한 2,395마리의 유기견 사체를 렌더링 처리했다.


렌더링하지 않은 사료를 구분하여 구매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렇다면 그 사료는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지겠는가? 내 편의 동물을 먹이기 위해 내 편이 아닌 동물을 죽이는 것은 매한가지다.


애완, 반려, 동거까지... 동물의 삶 나아졌을까?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 반려동물에서 동거동물이라는 단어까지 생겨났다. 애완동물은 한자로 愛玩動物, 반려동물은 한자로 伴侶動物, 영어로 companion animal이다. 동거동물은 同居動物, cohabitation animal이다. 애완동물의 완(玩)은 '완구'의 완과 동일한 한자다. 애완동물은 동물이 장난감 혹은 놀잇감으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완동물을 제외하고는 동물 앞에 붙인 단어의 뜻이 좋다. 반려동물은 짝이라는 뜻이고, 동거동물은 함께 사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역지사지를 해보자. 동물 입장에서 인간을 짝으로서, 함께 사는 동물로서 택한 것일까?


동물이 인간의 집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동물은 네 발이 아니라 두 발로 들어온다. 사람이 동물을 케이지나 가방에 담아 오기 때문이다. (간혹 길고양이나 유기견이 집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지만 극히 드물다.) 이때만큼은 인간이 신이 된다. 반려와 동거를 선택하는 건 인간의 전적인 권리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동물 앞에 붙인 반려와 동거와 같은 단어들은 인간의 마음이 편하기 위해 만들어낸 단어 아닐까?


네이버에서 반려동물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고자 가까이 두고 기르는 동물'이다. 다시 말해, 반려동물은 애초에 ‘동물’을 위함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반려동물 무료 전시회에 초대합니다


반려동물과 인간의 권력관계를 잘 드러내 주는 공간이 바로 SNS다. SNS에는 귀엽고 예쁜 동물의 모습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SNS 뿐이겠는가. 포털사이트 다음 메인의 동물 카테고리를 보자. 이모티콘도 마찬가지다. 동물은 귀여워야만 하고 예뻐야만 한다. 


동그란 눈망울, 쫑긋 선 귀, 사람을 바라보는 아련한 눈빛, 통통한 엉덩이, 풍성한 털, 짧은 다리, 쭉 뻗은 다리, 세차게 흔드는 꼬리, 몽롱한 눈빛을 비롯한 특유의 행위들.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러한 강아지와 고양이의 모습에 미소를 짓는다. 어쩌면 귀엽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감정은 다분히 자연스러운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나조차도 그런 감정을 매일같이 경험하니까. 하지만 동물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 SNS 게시 행위로 연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20년 필자 SNS


동물원, 수족관 등에 있는 동물을 우리는 전시동물이라 부른다. 오늘날 반려동물은 전시화되었다. SNS 활동의 자기애가 반려동물에게도 발현한 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각종 개량된 품종묘와 품종견의 출현 그리고 이를 소유하기 위해 애쓰는 현실은 이를 방증한다.


SNS에 동물을 전시하는 행위는 또 다른 위험성을 함의한다. 동물은 말이 없다. 그 누구도 동물에게 사진을 허락 맡고 올리지 않는다. 동물에게 초상권이 있냐고 되물을 수 있다. 동물이 초상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고 게시물을 올리는 행위를 통해 동물이 입는 직접적인 손해나 불이익은 없어 보인다.


다만 인간이 동물을 대상으로 하여 사진을 맘껏 찍고 올릴 수 있다는 것에는 권력이 숨어 있다는 위험성을 인지해야 한다. 인간 종의 특권이 사회 속에서 인간과 동물 사이에 만들어내는 폭력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동물을 좋아한다면서 동물의 귀여운 모습만을 찾는다. 반드시 알려져야 하는 동물의 현실은 SNS에 잘 보이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펫숍의 존재, 유기동물 증가, 반려동물 사료의 실체, 또 다른 동물의 학대와 착취 같은 현실들 말이다.


개, 고양이 이외 종은 SNS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 누구도 사육장과 도살장의 돼지를 들여다보거나 SNS에 게시하지 않는다. 동물의 현실을 나타내는 피칠갑, 악취, 괴성 등은 가려진다. SNS를 통해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실제로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매우 흡사하다.


SNS와 인터넷 펼쳐지는 강아지와 고양이 무료 전시회. 우리는 이 전시회를 열고 초대받고 초대에 응한다. 전시하는 이유, 전시에 우리 시선이 머무는 이유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쯤 되면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구호를 외치기보다는 진정 동물 입양이 필요한 일인지 우리 사회에 되물어야 한다. 물론 돌봄이 필요한 개체들이 존재한다. 또한 이미 함께 살고 있는 반려동물을 위해서라도 반려동물 보호자 교육은 필요하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입양해서 키우는 걸 권장해야 할 일인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서울시립대학교 인권센터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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