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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Sep 22. 2020

모두 비건이 되어야 하는 걸까

완벽한 육식주의자가 될 바에 차라리 모순적인 채식주의자가 되자.

기후위기다. 세상은 지구의 멸망과 생명체의 멸종을 이야기한다. 이제 우리는 모두 비건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완벽한 비건 한 명보다 불완전한 비건 지향인 100명이 더 가치 있다.
_만화가 보선


비건, 말이 쉽지, 실천은 어렵다. 도전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은 약하다. 대다수가 실패하는 이유는 머리가 아니라 몸에 있다. 이외에도 저마다 비건 되기가 어려운 이유들이 있다. 육식을 해야만 하는,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 비건 불모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도 한몫한다.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대부분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건축 현장에서 일할 때였다. 점심시간에 채식 식당을 찾다가 굶을 뻔했던 위기의 날이었다. 어플을 통해 두 군데의 채식 식당을 찾았다. 한 곳은 폐업, 한 곳은 휴무일이었다. 한 시간을 걷고서 현장 앞에 있는 일반식당에서 10분 만에 바지락 칼국수를 해치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알았다. 비건이 되려면 열정과 부지런함을 넘어 굶을 수 있는 헝그리 정신을 가져야 되겠구나.


채식이 트렌드라고 하지만 비건 식당은 차치하더라도 여전히 채식 식당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잘 몰랐을 땐 된장찌개, 콩나물국밥, 온갖 과자가 비건인 줄 알았다. 나름 뿌듯했다. 하지만 된장찌개와 콩나물국밥에게 뒤통수를 맞을 줄 몰랐다. 된장찌개에도 콩나물국밥에도 동물성 식품첨가물이 들어간다. 어떻게 채식을 하란 말인가. 매번 도시락을 싸서 다니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기후위기와 동물권에 관한 각종 기사와 영상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쏟아진다. 금방이라도 비건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비건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막상 비건이 되려고 하면 핑계는 늘어난다. 경험상 철저한 채식주의자, 비건은 정말 힘들다. 수양이다. 높은 수준의 엄격함과 부지런함을 요구한다. 때론 차라리 먹지 않겠다는 헝그리 정신도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모든 비건을 존경한다. 못하는 게 너무 많다. 못 먹는 게 너무 많고 확인할 게 너무 많다. 못 입는 옷도 많다.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지갑과 가방도 마음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못 만나게 되는 사람도 생긴다. 채식주의자와 육식주의자가 만나면 불편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만남들에 비해 식사메뉴를 고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채식주의자가 호들갑 떠는, 유별난 사람이 되는 건 한 순간이다. 이런 불편에도 채식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가? 있다면 반드시 비건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아니다.




만 명의 채식주의자가 있다면, 만 가지의 채식주의가 있다.

모순적이라고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게을러도 되는 채식주의를 소개할까 한다. 비덩주의가 있다. 덩어리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다. 동물성 식품첨가물까지는 허용하는 것이다. 식당에 가면 고깃덩어리가 안 들어간 된장찌개는 있지 않은가. 직장인들에게 추천한다. 이것도 어려운가?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라는 채식주의도 있다. 해산물은 먹는다. 가금류와 육고기만 먹지 않는다.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은 참치김치찌개를 먹어도 되고 해물순두부찌개를 먹어도 된다. 권하고 싶진 않지만 초밥을 먹어도 된다.


그렇다. 육식을 줄이자는 생각과 실천이 중요하다. 비덩주의자만 되어도, 페스코 베지테리언만 되어도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고기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육식을 끊기 어렵다고 채식의 흠을 애써 찾을 수고는 하지 말라. 채식주의자를 비판할 필요까지 있는가. 채식으로는 영양분을 섭취할 수 없다고? 정말 그러한가. 핑계다. 우리 솔직해지자. 고기를 포기하는 게 힘들고 싫은 게 아닌가. 자기 객관화가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를 속이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어차피 우리 삶은 충분히 모순적이고 우리 사회도 그렇다. 모순은 떠안아야한다. 완벽한 육식주의자가 될 바에 차라리 모순적인 채식주의자가 되자. 우리는 모순을 떠안겠지만 덜 폭력적이고 지구에 덜 해로운 식사를 할 수 있다.     



물론 정당성이라는 게 중요하다. 채식이 영양학적으로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의미 있는 운동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말이다. 영양학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양학적인 면을 설명해주는 콘텐츠는 많다. 게다가 내가 영양학적인 면을 설명할 깜냥도 되지 않는다. 영상으로는 다큐멘터리 넷플릭스 <더게임체인저스>를 추천한다.) 굳이 영양학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채식을 폄하할 필요까진 없다. 비건이 어렵다면 비덩주의자가 되면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적응될 것이고 매 끼니마다 육식을 줄여간다면 동물의 고통도 줄어들 것이다. 비덩이 적응되어 조금 더 욕심을 싶다면 페스코 베지테리언을 하면 된다.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면 락토 오보 채식을 하면 된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비건이 되는 것이다.


요즘 장마와 태풍 그리고 온난화로 인해 녹는 빙하 등 갖가지 기후 현상 때문에 우리는 기후위기라는 네 글자로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게 기후위기가 채식을 하기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만드는 것 같다. 장마 때문에 채소값이 폭등했다. 앞자리가 바뀌었다. 가격이라도 싸야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할 텐데. 고깃값이 더 싸다. 채식 위기다. 그럼에도 용기 내어주길 바란다. 지구를 지키는 플렉스를 해보자.




'야, 너도 할 수 있어.'

똑같은 사람 하나 없듯 채식주의자도 마찬가지다. 다양하다. 비덩주의자, 페스코 베지테리언, 락토 오보, 락토, 오보, 프루테리언, 비건. 더 많은 채식주의자가 나오길 기대한다. 주중 채식주의자, 홈 채식주의자, 워크 채식주의자, 주말 채식주의자, 수요 채식주의자, 저녁 채식주의자, 점심 채식주의자, 노 치킨 채식주의자, 노 삼겹살 채식주의자, 노 피쉬 채식주의자. 당신은 어떤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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