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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Apr 12. 2022

툰드라에 생긴 거대한 싱크홀... 바로 우리 탓이다

'가디언즈 오브 툰드라' 4부작 후기

네네츠족 아이들이 턱과 입 주변이 빨갛게 피로 물든 채 환히 웃고 있다. 도살당한 순록의 몸에서 피를 떠서 마시고 살점을 떼어내어 생으로 먹었기 때문이다. 이는 네네츠족의 전통문화다.


시베리아 평원, 툰드라는 농작물이 자라기에 척박한 환경이다. 이끼나 작은 들풀들이 자라는데 이는 인간의 식량으로 사용하기엔 적절치 않다. 순록은 단백질을 비롯한 에너지 공급원이기도 하지만, 툰드라의 이끼를 먹고 자란 탓에 비타민도 함유하고 있다. 보통은 채소를 통해 비타민을 섭취하지만 네네츠족은 순록을 생으로 먹으면서 필수 비타민을 섭취한다. 네네츠족이 순록 살점과 피를 생으로 먹고 마시는 오랜 유목 생활에서 얻은 지혜일지도 모르겠다.


SBS 창사 20주년 특집 <가디언즈 오브 툰드라> 4부작이 방영되었다. ⓒ 유튜브 SBS 교양 공식채널 달리


지난 3월 25일부터 2주에 걸쳐 SBS 창사 20주년 특집 <가디언즈 오브 툰드라> 4부작이 방영되었다. 이는 시베리아 네네츠족의 툰드라 유목 생활과 북극해 근방의 소수민족 축치족을 밀착 취재한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가 더욱 눈길을 끈 건, 도시인들에게 낯선 툰드라와 북극 환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2010년 SBS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최후의 툰드라> 4부작을 제작한 바 있는데 그때의 배경과 인물들이 그대로 나온다. 10년을 훌쩍 넘은 툰드라와 네네츠족 일상의 변화가 다큐멘터리에 고스란히 담겼다는 점이 의미가 깊다.


기후변화로 인한 툰드라의 변화, 그리고 툰드라 사람들과 동물들의 변화


10년 사이 툰드라의 변화는 툰드라를 터전으로 삼는 네네츠족, 축치족, 순록, 바다코끼리, 고래, 북극곰의 일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동물권 활동가로서 <가디언즈 오브 툰드라>를 시청하며 동물권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지점들이 있었다.


첫째, 툰드라에서의 동물 사냥과 도시에서의 동물 사육과 도살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축치족은 바다에서 물살이와 바다코끼리, 고래를 사냥한다. 축치족에게 사냥은 생존에 있어서 필수적인데 법적으로 허가된 숫자만큼만 사냥이 가능하다. 판매 목적의 사냥은 불가하고 오직 생계를 위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도시와 툰드라 모두 동물을 먹기 위해 사육하거나 사냥하지만, 둘은 차이가 있다. 전자는 무차별적인 착취를 기반으로 인간이라는 종은 포식자 위치에 서지만, 후자는 사냥하는 종과 사냥당하는 종이 자연의 일부로서 관계를 설정한다. 전자는 먹이 피라미드 세계관에서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 종의 오만한 태도가, 후자는 순환하는 생태계 속에서 인간 종의 겸손한 태도가 보인다.

  

둘째, 툰드라 네네츠족은 순록과 일상을 공유한다. 물론 네네츠족은 순록을 길들이고 이끌면서 툰드라의 주인임에 자부심을 느낀다. 순록과 인간 사이에 위계가 완전히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네네츠족은 수많은 순록 사이에서 각각의 순록들을 구분할 정도로 순록 개체들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고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즉 도시에서 인간이 비인간 동물과 맺는 관계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유목민들과 순록이 철도를 건너고 있다. ⓒ 유튜브 SBS 교양 공식채널 달리


셋째, 툰드라 한복판에 깔린 철도와 가스관은 도시의 욕망을 상징한다. 철도 공사 전 약속한 건널목도 지어지지 않았다. 철도에 깔개를 덮고 썰매와 순록들이 지나가지만 울퉁불퉁한 구조물이 영 불안하기만 하다.


"철도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우리 유목민들을 위한 건널목 같은 것을 계획했었는데요. 실제로 모든 공사가 완료됐을 때 건널목은 만들어지지 않았죠."
- 유리 후디, 전 4번 유목단장


가스관과 송유관 또한 도시의 욕망을 상징한다. 툰드라는 세계 최대 천연가스 매장지다. 10여 전부터 가스개발 시설들이 계속 건설되고 있는 상태인데 툰드라에서 캐낸 천연가스는 가스관을 통해 유럽에 공급된다. EU는 천연가스의 약 40%, 석유의 30%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실정이다. 순록들에게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가스관과 송유관은 낯설기만 하다. 순록들이 가스관 아래를 섣불리 지나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장면이 눈에 아른거린다. 



넷째, 기후변화로 인해 툰드라에 거대한 변화가 찾아왔다. 툰드라에 포격이 가해진 것 같은 거대한 싱크홀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씽크홀은 폭은 약 35m, 깊이는 약 50m의 거대한 구멍이었다. 기후변화로 상승한 온도로 인해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천연가스가 폭발하면서 생긴 구멍이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영구동토가 녹으며 무너지고 있죠. 영구동토의 표면이 가스층의 압력을 받아 볼록하게 올라오며 경계가 흔들리게 되지요. 급기야 폭발이 일어나면서 얼음이 지표면을 뚫고 사방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 바실리 이고르비치, 러시아 석유가스대학 교수

 

네네츠인은 이를 두고 "대지의 어머니가 분노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영구동토층에 묻혀 있던 탄저균이 대기에 노출되면서 순록이 몰살되기도 했다.


바다사자는 바다에서 사냥을 하고 빙하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습성이 있는데 빙하가 녹게 되면서 바다코끼리의 휴식처가 사라졌다. 이는 빙하 위 바다코끼리를 사냥하는 네네츠족에게도, 북극곰에게도 악영향을 가져다주었다. 다큐멘터리에는 사냥에 어려움을 겪는 북극곰이 북극해로부터 1,000km 이상 떨어진 내륙지역까지 먹이를 구하기 위해 이동한 사례도 소개된다. 도시에서의 무분별한 개발과 산업화의 결과, 기후변화로 인해 툰드라를 터전으로 삼는 생명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다.


툰드라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팽창한 가스가 폭발하여 생긴 싱크홀 ⓒ 유튜브 SBS 교양 공식채널 달리


툰드라를 통해 동물권을 생각하다


흔히 채식과 동물권 담론에서 빠지지 않는 반론이 있다. 인간은 잡식이고 원래 동물을 사냥해서 살아왔다는 이론. 맞다. 원시 시대에 가까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네네츠족과 축치족을 보면, 이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툰드라의 사례가 현대 공장식 축산을 비롯해 동물을 마음껏 착취하고 학대해도 되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순록의 살점과 피를 생으로 먹고 마시는 그들이, 문명화된 식탁 위에서 스테이크를 비롯한 온갖 화려한 동물 요리를 먹는 우리보다 훨씬 더 동물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동물권은 단순히 비인간 동물을 보호하거나 애정하는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잃어버린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동물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활동이다.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연을 지배하는 삶이 아닌 자연에 기대어 살아야만 한다. 툰드라를 터로 삼은 사람과 동물들처럼.


문명화된 도시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자연의 일부라는 진실을 잊고 살 때가 너무 많다. 우리는 기후변화가 불러온 툰드라의 참사가 지구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비록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험이 이 도시에 가시적으로 나타나진 않더라도 말이다. 우리의 이기심이 지구를 얼마나 파괴하는지. 지구 반대편 우리의 동료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툰드라가 보내는 경고와 분노에 뼈저린 반성이 없다면, 우리와 우리가 딛고 살아가는 지구에게 다시는 회복할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오마이뉴스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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