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도시 리뷰 3편: 채식 딤섬에서 홍두고, 비건 베이징덕까지]
[연재 속 연재: 홍콩 도시 리뷰는 도시공학 전공자이자 채식 지향인으로서 도시를 리뷰합니다. 이는 프로참견러의 리뷰 연재의 일부입니다. 건축물, 교통수단과 공공공간, 동물과 먹거리, 마카오 번외 편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연재합니다. 5일 동안 108,167보(하루 2만 1천 보) 구석구석 걷고 관찰하면서 느낀 바를 기록했습니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홍콩 리뷰를 시작합니다.]
채식 지향인으로 살아온 지 8년 차다. 채식을 지향하는 데에는 환경, 동물, 건강, 종교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필자는 동물과 함께 살고 동물권을 고민하다가 채식을 시작했다. 엄격한 비건을 지향하고 싶으나 직장생활을 할 때나 여행할 때는 덩어리 고기만 먹지 않는 '비덩주의자(덩어리로 된 동물성 음식은 먹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말)'가 된다.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따라 채식의 종류를 달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유연하게 조절한다고 하더라도 사골국물과 같은 육수 향이 진하게 나는 음식은 먹지 못한다.
"홍콩은 좀 걱정되는데.."
아내와 홍콩을 여행지 후보로 논하던 중이었다. 10년 전에 홍콩으로 이미 여행을 다녀왔던 아내가 우려를 표했다. 아내에게 홍콩은 '육식 도시'로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기억에 남는 요리 대부분이 동물성 재료 기반"이라고 했다.
사전조사를 시작했다. 여행만큼은 MBTI 'P'가 되어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지만 채식을 지향한 이래 식당만큼은 알아두는 J가 되었다. '홍콩 채식', '홍콩 비건'을 검색해보기도 하고 채식식당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서 홍콩 내 채식식당을 확인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음식점이 검색되었다. 전문 채식음식점은 아닐지라도 일반 음식점에서 채식 옵션을 제공하는 음식점이 많았다. 인도네시아 발리, 길리 여행만큼 채식이 편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하진 않겠다고 생각하여 우리는 홍콩을 여행지로 택했다.
홍콩은 채식 지향인에게 친절한 도시일까
채식 지향인인 필자는 두 가지 렌즈로 홍콩을 바라봤다. 첫째, 채식 지향인의 눈이다. 홍콩이라는 도시는 채식 지향인에게 친절한가? 제공하는 채식 음식의 종류는 다양한가?
홍콩은 미식의 도시다. 먹거리가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길거리까지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홍콩에 여행하러 가는 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까. 현재 홍콩에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은 75개인 반면 서울은 36개다. 서울 인구 930만 명, 홍콩 인구 750만 명을 고려하면 인구 대비 많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가히 미식의 도시라고 칭할만하다.
과연 채식 지향인에게도 미식의 도시가 될 수 있을까?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옥토퍼스 카드를 구입하기 위해 지하철역에 갔다. 국내 지하철역과 비슷한 풍경이다. 편의점과 일본식 삼각김밥을 전문점도 있었다. 편의점에서는 채식 상품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지만 삼각김밥 전문점에서는 쉽게 채식 음식을 찾을 수 있었다. 상품명 옆에 귀여운 초록색 마크가 보였는데 영어로 쓰인 상품명을 보니 ‘plant-based‘, 채식 상품이다.
* 옥토퍼스 카드는 홍콩 전역 지하철(MTR), 버스, 트램, 페리 등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하고 대부분의 편의점, 식당, 자판기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불 충전 IC 카드다.
첫인상이 좋다. 홍콩 물가 때문에 가격은 좀 비싼 편이었지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채식 메뉴가 있어서 반가웠다. 국내에도 채식삼각김밥이 출시된 적이 있는데 판매가 부진했는지 금세 단종된 바 있다.
딤섬의 도시에는 채식 딤섬도 있을까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을 하나 꼽아보라면 '딤섬'이다. 길 가다가 둘러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딤섬집이다. 국내에서 분식집을 쉽게 찾을 수 있듯 말이다. 딤섬은 '점심(點心)'의 광둥식 발음이다. 광둥에서는 간단하게 먹는 음식을 뜻하는데 만두피 안에 고기나 야채를 속으로 넣어 만든 음식이다.
다행히도 많은 딤섬 전문점에 채식 딤섬이 있었다. 광둥어에 익숙하지 않지만, 채식 메뉴 옆에는 그림이 표기되어 있다.
‘오늘은 어느 딤섬을 맛보게 될까?’ 느긋하게 홍콩 거리를 걸으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 음식점을 가더라도 맛있었던 ‘채식 딤섬’ 덕분이었다.
채식 딤섬에는 음식점별로 재료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버섯이 들어가고 당근, 파와 같은 채소가 들어간다. 공통적인 특징은 딤섬피에 전분이 들어가서 그런지 쫄깃하다. 가장 맛있다고 생각했던 딤섬 전문점은 특히 쫄깃했고 속에 들어있는 고수 향이 다른 채소와 잘 어우러졌다. 사장님 말로는 다른 딤섬 집이 냉동 딤섬을 판매하는 반면 해당 딤섬집은 매일 딤섬을 직접 찐다고 말씀하셨다.
이색적인 홍콩 채식: 홍두고와 비건 베이징덕
한국에서 맛보기 힘든 이색적인 채식 음식이 있었다. 길거리 음식이자 서민음식으로 알려진 백당고(박통고우)다. 별다른 계획 없이 삼수이포 지역에서 몽콕으로 향해 걸으며 도심지를 둘러보던 중이었다. 이 지역은 서울 을지로, 종로처럼 건축 등 전문 자재상이 자리 잡고 있는 거리다.
그런데 갑자기 한 가게 앞에 홍콩인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얼 팔길래 줄이 서 있는지 살펴보니, 팥과 같은 곡류로 만든 떡 같은 음식이었다. 자연스레 줄을 섰고 옆에 있는 홍콩인에게 영어로 이게 무엇인지 물었다. 홍콩인은 영어를 할 수 없다는 대답과 함께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홍콩인은 나를 붙잡더니 "탑원, 탑투, 탑쓰리"라고 말하며 쇼케이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완벽한 의사소통이었다. 그는 탑원을 몽땅 받아서 어딘가로 갔고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우리는 탑원과 탑쓰리를 하나씩 먹어보기로 했다. 탑원은 홍두고, 탑쓰리는 백당고다. 홍두고는 팥양갱 같은 음식이었지만 팥의 식감이 살아있고 국내 팥양갱보다는 덜 달다. 백당고는 식감 자체는 우리나라 술빵과 매우 유사한데 술빵보다 조금 더 촉촉하고 말캉한 식감이다.
계획하지 않은 일정 가운데 로컬 핫플레이스를 찾은 것만 같아 기뻤다. 게다가 이곳이 비밀의 채식 디저트집이라니. 채식 지향인이 아니더라도 여행 도중 간식으로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식이었다.
이 외에도 정말 많은 채식 음식이 있었다. 채식 전문점에서 맛본 비건 베이징덕은 가격은 비쌌지만 정말 신기했다. 월남쌈과 비슷한 음식이었는데 노루궁둥이버섯으로 쫄깃한 식감을 살렸고 껍질은 식물성 재료로 바삭한 식감을 살렸다.
완차이 거리에 가면 블루하우스 앞에는 채식 옵션 음식이 있는 태국 음식점과 베트남 반미 음식점이 있다. 둘 다 미셰린 맛집으로 등록된 가게다. 여행 일정 끝자락에는 겨우 찾아낸 비건 에그 타르트도 맛보았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에그 타르트의 외관만 흉내 낸 타르트다. 달걀 대체 재료를 넣은 건 아니고 비건 아이스크림을 넣은 디저트였다.
인근 도시인 마카오에도 유명한 중식집이 있는데 이곳에 가면 채식 만두와 가지튀김을 맛볼 수 있다. 마카오 여행을 한다면 반드시 가지튀김을 꼭 맛보라는 후기가 많았다. 맛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원한 맥주 혹은 콜라와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이었다.
식재료 전시... 신선함인가, 잔혹함인가
둘째, 동물의 눈으로 바라본 홍콩이다. 동물을 식재료로 어떻게 다룰까? 동물을 식재료로 다루는 것에 관해서는 몇 가지 놀라웠던 점이 있다.
책 <홍콩 산책>에서 홍콩인들이 장수하는 이유를 신선한 식재료 때문일 거라고 유추하는 대목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홍콩에서 생선과 육류는 오래 보관하지 않고 그날그날 판매한다고 한다. 심지어 늦은 시간에 가면 다른 부위 식재료를 덤으로 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홍콩 완차이 거리에 가면 각종 식재료를 구할 수 있다. 채소, 과일 판매점뿐만 아니라 정육점과 생선 가게도 중간중간 보인다.
신선함을 보여주는 방식은 전 세계 어딜 가든 유사하다.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알록달록한 채소와 과일이 먹음직스럽다. 침이 고인다. 마찬가지로 정육점에서도 육류의 각 부위를 매달아 전시한다. 빨간빛은 이것을 더욱 선명하게 비춘다. 내게는 동물의 살점과 식재료 그 어딘가로 인식된다.
생선 가게에서는 살아있는 물살이를 토막 내어 가판대 위에 올려놓는다. 토막 난 채로 물살이가 꿈틀거린다. 신선함일까, 잔혹함일까. 또한 거위나 닭의 머리 부분을 제거하지 않고 쇼케이스에 진열하는 것도 식재료 신선함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음식에 머리 부분이 있어야 한 마리 전부를 다 줬다는 의미라고 한다.
우연히 돌아보던 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식당도 목격하게 되었다. 가게에는 곳곳에 뱀이 그려져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뱀과 관련된 취미가 있는 분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뱀탕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음식점에 버젓이 뱀 사진이 걸려 있고, 뱀탕이 판매되고 있다. 홍콩에서는 뱀 요리를 먹는 게 전혀 특별한 게 아니며 겨울철 대중적으로 많이들 찾는 보양식이라고 한다.
'다리가 네 개인 건 의자 빼고 다 먹는다'
홍콩이 속한 광둥 지역 음식 문화를 표현할 때 줄곧 사용되는 우스갯소리다. 그만큼 가리지 않고 식재료로 사용한다는 의미일 텐데 다리가 없는 뱀까지 먹을 줄야. 이런 것이 바로 '문화 충격' 아닐까. 국내에서는 뱀을 먹어본 사람도 드물고 식재료로 사용하는 건 불법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채식 지향인도 동의하는 미식의 도시 '홍콩'
여행할 때면 늘 새로운 경험을 하고자 한다. 보고, 듣고, 만지고, 걷고, 먹는 것까지도. 그래서 음식도 새로운 음식을 맛보려고 시도한다. 채식을 지향하기 때문에 거위, 비둘기, 뱀 음식은 먹을 수 없었다.
여전히 육식을 기본값으로 하는 홍콩의 모습은 아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홍콩뿐만이 아닐 테다.
필자는 여전히 식생활도 윤리적인 영역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믿는다. 다만 동시에 음식은 문화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하고 열린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사실을 홍콩에 와서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었다.
홍콩은 채식 지향인의 입맛도 사로잡은 미식의 도시다. 다행히도 홍콩에는 다양한 채식 음식이 있었고 입맛에 맞았다. 특히 채식 딤섬과 마카오에서 맛본 가지튀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백당고는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생각나는 음식이다. 혹시 채식 지향 때문에 홍콩 여행을 망설인 이가 있다면 한시름 놓아도 될 것 같다. 생각보다 꽤 많은 채식 음식과 디저트가 있으니까 말이다.
에필로그1: 거리의 동물들
홍콩은 식재료가 아닌 동물은 어떻게 대할까? 홍콩에도 반려동물 인구가 점차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라 반려동물 식품을 비롯한 용품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홍콩 거리를 하루에 10만 보 넘게 걸으면서도 한국과 동남아처럼 도심지에서 개나 고양이를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아마도 주거지가 아니라 도심지여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침사추이나 센트럴, 완차이 도심지에서는 반려견이나 떠돌이견을 전혀 볼 수 없었고, 해변 마을인 리펄스 베이나 스탠리 베이 근처에 가서나 볼 수 있었다.
고양이는 종종 볼 수 있었는데 대부분 주인이 있는 고양이었다. 몽콕 지역 상가 실내에 있던 고양이, 완차이 과일가게에 있던 고양이, 공항버스를 타기 전 상점 앞 목줄에 묶인 고양이가 전부였다. 거리에서 쉽게 고양이를 볼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추정컨대 집이 좁고 반려동물 식비부터 의료비까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이상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좀 신기했던 건 몽콕 골목 지역에서는 쥐덫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었다.
에필로그2: 자본주의와 홍콩 음식점
반면 채식과 동물 문화와는 별개로 홍콩 거리의 음식점을 돌아다니다 보니 곳곳에 자본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홍콩 건축 문화(이전 글: https://brunch.co.kr/@rulerstic/527)처럼 말이다. 비건 햄버거가 한화 2만 원이 좀 넘었고 채식 딤섬도 2~3개가 나오는데 대략 5천 원 정도다. 정말 뜨거운 물가 아닌가.
물가뿐만 아니라 메뉴판 배치, 합석 문화에서도 효율을 추구하는 홍콩 음식점을 관찰할 수 있었다. 아니, 어마어마한 땅값을 고려하면 효율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대다수 음식점은 매장 앞에 메뉴판을 두어 고객들이 미리 메뉴를 살펴볼 수 있다. 고객의 편의를 위함이기도 하겠지만 매장에 출입하여 메뉴판을 보면서 발생하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함이 아닐까?
또한 예약제로 운영하는 채식음식전문점에 갔을 땐 홍콩의 합석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한 커플의 배려 덕분에 합석하여 비건 베이징덕을 맛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