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변비가 2주 동안 계속됐다.
9시 정시 출근에 5시 칼퇴근하는 주제에 뭘 그렇게까지 표현하냐 싶지만,
정말로 2주 동안 브런치에 손도 못 댈 만큼 일이 머릿속에 꽉 찼다.
브런치 두 번째 <나도작가다> 공모전에 참여하는 것조차 실패해버릴 만큼, 마음의 여유가 일에게 몽땅 잡아먹힌 것이다. 일과 생활을 구분해서 정신 건강에 힘써야 하는 이 시국에 한동안 처참하게 워라밸을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 왜지?
기분이 썩 괜찮다.
생각의 변비
새로운 프로젝트를 두 개나 하다 보니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우리 팀에서는 UX Architect (회사 내에서는 줄여서 UXA라고 부른다)가 이해관계자들이 기획 단계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 전략, 기획, 가치 분석 및 목표 설정... 온통 추상적인 생각을 다듬어나가는 과정은 머리를 사정없이 굴러가게 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다른 부서와 충돌할 것 같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걱정이 많았다. 기싸움이나 정치싸움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가장 원하는 경험을 만들어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충돌의 위험을 콜라보레이션의 기회로 바꿔보려고 머리를 굴렸다.
똥인지 된장인지 일단 쏟아보기
한참을 이런저런 프로젝트 기획서와 진행상황 보고서를 읽으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려고 했다.
정보는 너무 많고, 부서별로 프로젝트 진행 상황 속도가 달라서, 콜라보레이션 기회를 명확하게 잡아내는 게 어려웠다.
결국 매주 목요일마다 만나는 각 부서의 UXA들 앞에서 지금 고민하고 있는 부분을 우르르 쏟아서 보여줬다.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문서, 발표자료, 그리고 연구 질문까지, 날 것 그대로 공유했다.
관심이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열명이나 되는 UXA들이 한 마디씩 거들어주었다. 새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 사이에서 어떻게 coherent (일관된) 멘탈모델과 경험을 전달해야 할지 각자 고민하던 부분을 털어놨다.
쾌변의 순간
엉망진창으로 뒤섞였던 생각이 점차 모양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주는 상쾌함! 머리에 꽉 찼던 두루뭉술한 것들이 점차 형태를 가질수록 보람차다.
UXA 열명이 모이니까, 화장실 휴지가 술술 풀리듯이, 다른 팀들과 내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의 겹치는 부분, 충돌할 위험이 있는 부분들이 더 구체적으로 보인다.
완벽한 모습으로 콜라보레이션 기획서를 제안할 생각만 하다가, 생각의 변비 상태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 오히려 쾌변의 기쁨을 선물해주었다.
일과 생활의 경계를 뚜렷하게 하고 싶었는데, 생각할 수 있는 머릿속의 공간이 온통 일로 가득 찼던 2주. 덕분에 생각의 변비로 고통받았다.
변비의 고통을 공개한(?) 덕분에, 어느 정도 쾌변의 쾌감을 즐길 수 있었다.
이제 다시 브런치를 위한 마음의 공간을 다시 만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