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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erumie May 22. 2020

공짜 티백은 맛이 없다

회사의 아침은 밀크티로 시작했는데

한국에서는 ‘밥 먹었니?’가 안부인사라면,
런던에서는 ‘Tea?’가 인사말이다.


아침에 회사로 출근하면 가방을 내려놓고 직장 동료들과 가볍게 인사하면서 말했다.



Tea?



팀원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밀크티를 만들었다. 희한하게도 매 번 맛이 없다.



펄펄 끓는 주전자의 물을 부어도 우러나지 않는 티백 때문에, 한 번에 두 개를 넣고 우린 적이 있었다. 지나가던 라인 매니저가 깜짝 놀라서 괜찮냐고 안부를 물은 적도 있었다.



탕비실에 비치된 공짜 티백. 투명한 병에 담긴 티백은 브랜드도 모르고, 언제 리필되었는지도 모른다.


맛이 없다고 낄낄대면서, 각자의 취향대로 만든 차 한잔을 들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하루에 두 세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을 때마다 탕비실에서 티를 만들었는데, 한 번도 집에서처럼 맛있게 만들 수가 없었다.



소소하게 대화 나누던 즐거움만큼 맛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 나의 아침은 고소하고 따듯한 라떼와 함께 시작된다.



느긋한 주말 아침에만 예뻐해 줄 수 있었던 캡슐 커피 머신이, 재택근무를 시작한 날부터 우리 집의 바리스타가 됐다.


알록달록한 캡슐들이 담긴 통에서 오늘의 기분에 따라 어떤 맛 커피를 내릴지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갓 내린 커피의 고소함과 따듯함이 회사에서 만들던 밀크티보다 이천 이십 배는 맛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가끔, 맛없는 티가 그립다.   



공짜 티백을 까면서 낄낄대고 소소한 일로 키득거리던, 사람들이랑 차를 마시던 그 시간이 그리운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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