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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erumie Aug 24. 2020

회식을 Social이라 부르면 어떨까

런던에서 오랜만에 회식을 했다.

회식 문화가 한국을 떠나면 아예 없을 줄 알았었는데, 국적 불문하고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인가 보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회식은 존재했다. 대신, 영국에서는 회식 같은 그 시간을 Social이라고 불렀다.



소셜은 언제 할까?

길게는 한 달 전부터, 짧게는 일주일 전부터, 팀원들이 언제 시간이 되는지 참석 여부를 묻는 poll을 만들어서 돌린다. 보통 목요일이나 금요일, 업무 시간을 마칠 즈음에 시작하는 일정으로 투표를 한다.


어디서, 뭘 할까?

회사 근처 펍에서 주로 서서(!) 맥주를 마신다. 영국 사람들은 지역 불문하고 펍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Salford 오피스에서 팀원이 런던 오피스에 오거나, 반대로 런던팀이 Salford로 출장 가는 일이 있으면 하나같이 입을 모아서 말한다.

오늘 펍에서 한잔 어때요?


뭐하면서 한잔할까?

소셜에 갈 때마다 수다를 왕창 떤다.

일에서 벗어나, 개인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이야기한다. 말하다 보면, 평소에 사무적인 태도로만 대했던 사람과 한층 더 가까워지고 낯도 덜 가리게 된다.

게다가 서서 마시다 보니까 주제가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자리를 바꿔가며 회사에서는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과도 한 마디씩 하며 차츰 친해진다.


회식비는 어떻게?

회식비는 회사마다 다르고, 소셜 목적이나 주최 이유에 따라 다르다.


예전에 다니던 마케팅 회사는 일 년에 소셜 예산이 정해져 있어서, 각 팀마다 계획을 세워서 취향에 맞게 사용했다. 꼭 먹고 마시는 소셜 외에도, 골프, 볼링, 방탈출 게임 같은 체험형(?) 소셜을 많이 했는데, 회사에서 결제를 미리 마치기 때문에 소셜에서 돈을 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공영방송국이다 보니, 국민의 세금을 회식비로 사용하는 것이 올바르지 못하다고, 소셜에 드는 돈은 모두 각자 자기 돈으로 계산한다. 일 년 중에 가장 큰 행사, 크리스마스 파티도 각자 먹고 마신만큼 낸다.



각자 돈을 낸다고 했지만, 모두 같이 떠들고 편하게 마시는 자리에서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하다 보니, 같이 바(bar)에 가서 한 사람이 같이 대화하는 사람들에게 한잔씩 사준다. 그다음에는 상대방이 내주고, 대화가 계속되면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들끼리 어느새 한 잔씩 서로 사주는 셈이 된다.







코로나 19 경보가 한 단계 해제된 런던. 여름휴가철이라서 조금씩 소셜라이징을 허용하고 있지만, 회사 생활은 아직도 기약 없는 원격근무를 중이다.


서로 얼굴을 직접 보고 만나지 못한 지가 3개월이 넘었다. 화상채팅으로 매일 15분씩 stand up으로 안부를 묻지만, 재미가 없었다.


다들 잘 있는지, 어떻게 지내는 건지, 일 얘기 말고, 사람답게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재미없는 얼굴들로 정기 미팅을 마쳤던 어느 목요일. 취미로 마술을 하는 우리 UXA팀 크리에이브 디렉터가 센스 있게 소셜을 제안했다.  


이 시국에 회식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우리는 회식의 뉴노멀을 체험했다. 

UXA팀의 절반은 런던에, 나머지 절반은 맨체스터에 산다. 모두 다른 곳에 사는 우리가 물리적으로 만날 수는 없으니까, 화상채팅으로 두 시간. 우리는 소셜 타임을 만들었다.


2주 전부터 소셜 날짜와 시간을 조율했다. 어린이가 있어서 학교에서 픽업해와야 하는 사람, 휴가 계획을 미리 세운 사람, 가족 일정이 있는 사람, 다들 소셜에 참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소셜 당일, 앞선 미팅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소셜 시작 시간보다 5분 늦게 채팅창을 켰다. 미리 정한 소셜 시간인데 지키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허둥지둥 채팅 링크를 클릭했다.


모두의 얼굴이 보일 줄 알았는데, 빈 의자만 덩그러니 있는 화면 열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리둥절해 있는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화면에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랩탑 카메라 앞에다가 다른 사람들 보라고 붙여놨나 보다.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료 찾아서 10분 후에 자리로 모일 것


아하, 모두 자기 마실 거리를 찾으러 가느라 자리가 다 비었구나. 상황 파악을 마치고, 냉장고로 향했다. 술을 안 마시는데, 뭘 들고 회식 분위기를 내볼까 고민했다.


냉장고 문 쪽에 고이 모셔둔 스타벅스 신제품, 오트 밀크 바닐라라떼가 보였다. 빨대를 뚜껑에 뚫린 구멍으로 톡! 꽂아서 시원하게 빨아먹는 바닐라라떼. 그래, 오늘은 너로 정했다!


다들 술 마시는데 내가 흥을 깨는 건 아닐까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료니까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돌아왔다. 하나둘씩 자리에 돌아온 UXA 팀원들의 손에 들려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개성 강한 우리 팀, 역시 상상했던 것 이상을 보여준다.




원격 소셜을 마친 후에, 특히 기억에 남았던 재미있었던 점을 몇 가지 적어봤다.



배려하는 대화

펍에서는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서 둘씩 셋씩 대화하는데, 화상채팅으로는 모두가 듣고 한 명이 말하는 오픈 대화 형식에 더 가깝다. 그런데 이렇게 일대 다수를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스타일이 잘 안 맞는 사람을 배려하는 것을 느꼈다. 말을 잘하지 않거나 대화에 잘 끼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이 낄 수 있는 주제로 화제를 바꾸거나,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전체적인 대화의 흐름을 끊기가 힘들면, 화상채팅 대신, 채팅창에 글을 써서 다른 주제로 서서히 소외된 사람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다가 전체적인 대화의 화제가 변경될 때쯤, 자연스럽게 같이 화상채팅으로 함께 돌아온다.


장소 바꾸기

대부분 업무를 하는 공간을 홈오피스로 정해두고 일하다 보니, 미팅 때 보는 배경이 다들 거기서 거기다. 서재, 창고, 평소엔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맥주 가지러 가면서, 감자칩 찾으러 가면서, 랩탑을 들고 다니다 보니까 어느새 각자 집 소개를 하는 코너가 됐다.


정원 가꾸기에 취미가 있는 사람, 어린이 때문에 작은 놀이터를 만든 사람, 새로 고양이를 입양한 사람, 평소에도 정감 넘치는 UXA팀원들에게서 사람 냄새가 한층 더 강하게 풍겼다.


쿨내 나는 굿바이

소셜 시간을 정할 때, 시작 시간과 함께 끝나는 시간도 정했었다. 한국에서 회식할 때는, 2차, 3차, 기진맥진할 때까지 연장전이 계속되어도 누구 하나 끝을 외치는 사람이 없었는데, 소셜을 계획할 때는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을 정했다.


꼭 끝나는 시간까지 남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소셜을 시작한 오후 5시, 끝내는 시간은 7시. 그런데 신나게 떠들다 보니까 배도 고프고, 하루 종일 스크린을 보면서 업무를 했는데 채팅으로 수다까지 떠니까 눈도 피곤했다.


어쩐지 이르지만 그만 휴식하고 싶다고 느낄 때쯤, 시계를 보니 소셜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어떡할까 고민하는 사이에, 강렬한 쿨 향이 스크린 너머로 전해져 왔다.


배고파서... 굿바이!
오래 앉아있으니까 허리가 아파서.. 굿바이!
둘째 아이가 마당에 모래성 쌓은 거 사진 찍으러 가야 할 것 같아서... 굿바이!


그렇지! 소셜의 취지는 서로 마음 터놓고 시간 보내는 거였지, 끝까지 남자는 게 아니었다. 쿨내 날만큼은 못되고, 모두 함께 한 잔 (한 입?)하면서 시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고 인사하고 조금 일찍 소셜 채팅창을 닫았다.



다 같이 즐겁게, 사람 냄새 맡을 만큼 맡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 오랜만의 소셜은 참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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