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직장러의 사춘기

by Rumierumie

하얀 벽 앞에 빨간 원피스를 입고 선 소녀.

소녀와 벽이 빨갛게 물들 때까지 토마토를 마구 던지는 광고가 있었다. 광고 카피는 단 한 줄.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TTL 광고가 유명하던 그때는 몰랐다. 이 도발적인 한 마디가 평생 마음을 시끄럽게 하는 질문이 될 거라고는.






20대 후반, 사춘기가 왔다.

런던에서 직장러로 산 3년 만이었다.

한 회사에서 3년 일한 것은 내 사회생활에서 가장 긴 기록이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팀도 커지고, 후임도 생겼다. 직급이 올라가면서 연봉도 오르고, 대우도 좋아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답답해졌다.


애초에 내가 왜 영국에 와서 살기로 했는지, 회사 다니면서 이러고 사는 게 맞는 건지.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타워브리지를 몇 번씩 왕복으로 걸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게 뭘까. 서비스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을까.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대학원에 갔다가, 졸업 후에 취업을 못하면 어떡하나.


결정을 못하고 한숨을 푹푹 쉬어대는 모습이 걱정됐는지, 런던 남친이 진지하게 말했다. 내 두 손을 꽉 쥐고, 쌍꺼풀 진한 두 눈으로 진심 어린 광선을 뿜어내면서.



오늘부터 매일 너의 꿈이 뭔지 물어볼 거야.
그리고 우리 같이 꿈을 이루는 방법을 찾을 거야.



당장 그날 저녁, 남친은 내가 관심 있어하던 대학원 입학설명회 방문 신청을 했다. 같이 가야 된다면서 회사에 휴가도 신청했다. 이렇게까지 밀어주는데 어디 한 번 가볼까. 그렇게 직장러의 사춘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사치스러운 디딤돌

서비스 디자인 경험이 아주 조금, 병아리 눈물만큼 있는 내 이력서를 보고, 바로 서비스 디자이너로 채용할 회사를 찾는 것은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였다. 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디딤돌이 필요했다.


딱 알맞은 세트메뉴처럼, 대학원에 입학만 하면 서비스 디자이너가 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이 착착 내 앞에 차려질 것 같았다.


영국의 대학원은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과정이다. 짧은 시간 안에 한 가지 분야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운다. 커리큘럼마다 다르겠지만, 회사 또는 사업체와 연계해서 일하면서 배우는 live project를 하기도 한다. 대학원의 네트워킹 수준에 따라서, 필드에서 뛰어다니는 실무자들을 수업에 초대해서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생생하게 소개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졸업 후 취업으로 연결되는 부분도 신경을 많이 써준다. 학기 중반부터는 대학원 또는 튜터를 통해서 인턴 프로그램이나 단기 채용 기회도 제공한다. 모든 학생에게 기회가 골고루 주어지지 못할 때도 있지만, 열심히 준비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은 기회가 있으면 대학원에서 빠지지 않고 도와준다


이렇게 좋은 대학원에 왜 진즉 가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냉큼 대답하겠다. 영국 유학 비용은 진짜 비싸다고.


유학생은 입학 및 수강료만 2만 파운드가 넘는다. 런던에서 생활비와 기타 비용까지 합치면 5천만 원을 훌쩍 넘는 비용이 필요하다.


내 경우에는 이미 런던에서 살고 있으니까 주거 및 기본생활 비용은 따로 들지 않는다지만... 정말 너무 비쌌다. 3년 동안 영국에서 번 돈으로 대학원 입학금을 내면 딱 1년 3개월, 대학원 다니는 동안 기본 생활비만 써도 그동안 모아 온 돈을 다 쏟아부어야 했다. 꿈을 쫓아서, 지금 다니는 회사도 그만두고, 살인적인 물가의 런던에서 수입도 없이 대학원에서 공부하겠다고 결정하는 건 어려웠다.




사춘기가 지나면 보이는 것

잠깐이면 지나갈 줄 알았던 직장인의 사춘기는 쉽게 가시질 않았다.

누가 그랬다, 사춘기는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라고. 자기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보기 시작하니까 충돌도 있고, 갑자기 안 하던 행동도 하는 거라고.


런던 예술대학교 서비스 디자인 MA 입학설명회에 다녀온 날부터 마음은 이미 그곳에 두고 왔다. 사춘기가 지나고 난 자리에는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생겼다. 필요하다면 과감한 투자를 해서라도 꿈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게, 사춘기 끝에 만들어진 내 가치관인가 보다. 비싸다고 겁내기만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큰 비용을 들인 투자가 성공적인 디딤돌이 될 수 있을까 전력을 짜면서 계속 앞으로 나가는 것.



서비스 디자인 코스 리더를 만나러 간 봄날, 떨리는 마음으로 포트폴리오를 들고 갔던 나는 오퍼를 받았다.


그렇게 런던에서 서비스 디자이너로 성장하기 위한 , 1년 3개월간의 사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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