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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Aug 13. 2024

시작은 가을로 D + 52

20240813 바람 한 스푼

일러스트 : 고양이 유성 by 최집사



이번주는 더위가 한 풀 꺾인 거 같다. 한낮의 기온은 아직 30도를 넘지만 습한 기운이 덜하고 간혹 선선한 바람이 미세하게 분다. 뜨거운 커피에 얼음 한 알 띄운 거 같다. 뜨끈한 단팥죽에 설탕 한 스푼 넣은 거 같고… 아무튼 조금 살만해졌다. 여전히 일을 할 땐 땀샘이 오열하지만, 자다가도 몇 번씩 드라큘라처럼 벌떡벌떡 깨지만 이제는 체념할 수 있을 거 같다. 선풍기 앞에 서면 또 금세 시원해진다.



냥이들도 살만한지 사냥 타임을 늘리라는 요청이 있었다. 밥도 곱빼기로 먹고, 어제부로 원데이 투 똥 모드다. 봄철 모내기처럼 집사가 부지런해져야 하는 계절이 도래했다.



여름휴가 끝나면 금방 추석이고, 추석이 지나면 크리스마스, 그러면 올해도 다 간 거나 매한가지다. 이토록 유난 떨며 격렬하게 여름을 보내고 나면 뭔가 한 해가 다 끝난 기분이다. 새해 다짐은 기억나지 않고 어영부영 어찌저찌 그럭저럭 일상을 살았다. 무탈했으니 다행이지만 무의미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1월 1일,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 사람들은 지금 어디쯤 있을까… 저마다의 기대와 약속이 폭염에 녹아내리지 않았길 바라본다.



이제부터 한 해의 시작은 가을이 좋겠다. 선선할 때 출발해 고요한 겨울을 만끽하고 봄이 되면 꽃을 피우고 여름엔 쉴 수 있는… 체질상 그 사이클이 맞다. 이 생각을 왜 이제야 했는지 모르겠다. 시작점이 모두 같을 필요는 없는데, 과일도 채소도 저마다의 제철이 있는데… 시간, 날짜, 나이, 돈. 숫자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살아온 탓이다.



지난밤 하늘에서 18개의 유성이 떨어졌다고 한다. 어딘가에 18마리의 고양이들이 태어났을 것이다. 그 기운을 받아 오늘은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해야겠다. ‘가을 아침’을 틀어놓고 따라부르며 청소기도 돌리고 미역국도 끓여야겠다.


왼. 자리산 잎녹차와 모닝 룽지

오. 두유 요거트+백도+샤인머스켓

      +얼그레이 그레놀라+아몬드+건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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