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대 옆 조식 식당

아침식사

by 최집사



아침을 먹으라고 배운 적이 없다. 학교 다닐 때도, 회사에 다닐 때도 그 시간은 자거나 씻거나 이동시간이었다. 고등학교 다닐 땐 0교시라는 게 있었는데, 정규수업 전 자습시간으로 선생님들께서 돌아가면 문제집 풀이를 하고 교육방송을 들었다. 그러니 아침밥을 챙겨 먹는 건 시간 낭비였다. 물론 2교시가 되기 전에 여기저기서 배꼽시계가 울렸고, 우리는 매점이라는 성지로 달려갔다. 쉬는 시간마다 어김없이 고열량 유탕 스낵들이 나를 유혹했다. 그중 소울 메이트였던 땅콩 크림빵은 어른이 되어 자판기 커피로 대체되었다. 정직하게 자리 잡은 습관이었다. 그 사이 내 몸은 해변의 모래성처럼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아침을 이제와 챙겨 먹는 건 유난스러운 일이었다. 아마도 몸이 멀쩡했다면 여전히 커피 한 잔으로 그것을 대신하며 살았을 것이다. 말이 아침이지 가공되지 않은 채소와 과일을 틈틈이 구입하고 세척하고 준비하고 보관하고 차려내는 일은 그 시절 교육 방송만큼 뻔하고 지루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제라도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정신 차린 것에 감사한다. 나이를 먹고 몸도 아프게 되면서 스스로에게 죄인임을 알았다. 부디 늦지 않았길, 기꺼이 오늘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침을 준비한다.



아침 식사는 주로 싱크대에서 한다. 생각해 보니 어릴 적 엄마도 싱크대에서 그렇게 뭘 먹었다. 몸소 체험한 결과 그만큼 최적화된 동선은 없다. 소형 공장 컨베이너 벨트처럼 요리하고 먹고 치우는 시스템을 일괄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물론 뒤돌아 세 걸음만 가면 식탁이 있다. 하지만 그런 동작마저 불필요하다. 오로지 건강한 아침을 챙겨 먹고자 하는 목적에 집중하기 위해선 나머지 절차는 최소화, 간소화되어야 한다.



1. 계란

하루에 한 개에서 두 개 정도 먹는다. 평소 고기는 거의 먹지 않기 때문에 계란 혹은 두유가 주단백질 공급원이다. 따로 굽거나 조리하지 않고 간 없이 삶아서 먹는다. 주 1회 정도 왕창 삶아 껍질을 제거한 후 냉장고에 보관하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2. 브로콜리 or 오이

푸른 채소로 브로콜리나 오이를 먹는다. 브로콜리는 깨끗이 씻어 살짝 데친 후 섭취하고 오이는 제철인 여름에 껍질만 벗겨 생으로 먹는다. 물론 여기도 따로 간이나 조미를 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자연 그대로 섭취한다.



3. 당근 샐러드

생 당근의 식감과 맛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유일하게 조리를 한다. 채칼로 얇게 쳐서 현미식초, 오일, 꿀, 유자청을 넣고 샐러드를 만든다. 호밀빵에 올려먹거나 밥반찬, 피클 대용으로 즐긴다. 이 역시 매주 한 번씩 넉넉히 만들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곁들인다.



4. 사과와 토마토

사과는 반 개, 토마토는 다섯 알 정도 먹는다. 틈틈이 과일을 간식으로 챙겨 먹기 때문에 아침은 이 정도 양이 적당하다. 때에 따라 제철 과일로 대체되기도 한다. 하루 과일 섭취량은 자신의 주먹 크기를 넘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 아무래도 혈당을 고려해 적당히 먹는 게 좋을 듯싶다. 식초와 베이킹소다를 푼 물에 충분히 담가 두었다가 깨끗이 씻은 후 껍질 째 먹는다. 과정은 성가시고 귀찮지만 그만큼 확실한 만족을 준다.



5. 감자나 고구마 or 블록잡곡밥 or 오트밀

한 때는 빵을 먹었지만 요즘은 찐 감자나 고구마를 혹은 블록 잡곡밥을 먹는다. 감자, 고구마는 한꺼번에 쪄서 냉동실에 두고 그때그때 데워 먹으며, 잡곡밥 역시 바닥이 넓은 밀폐용기에 블록처럼 나누어 얼린 뒤 하나씩 꺼내 먹는다. 때에 따라 옥수수나 버섯, 취나물을 넣어 만들기도 한다. 가끔 오트밀죽도 만들어 먹는다. 전날 불려놓고 아침에 데우기만 하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사과나 바나나를 올리고 시나몬을 뿌려먹는다. 누룽지맛도 나고 상큼한 과일이 곁들여져 건강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시리얼만큼 간편하고 속이 편해서 좋다.



매일 아침, 냥이들과 간단한 집안일을 챙기고 나면 주방으로 간다. 물을 마시고 라디오를 틀어놓고 냉장고에서 이것저것을 꺼내 접시에 올린다. 의자도 없는 싱크대 한 켠이지만 내가 만든 알록달록한 접시를 내려다보며 최소한의 낭만을 만끽한다. 피렌체, 크로아티아, 볼리비아… 집 밖의 거리를 마음대로 떠올리며 일인 스텐딩 조식식당을 상상한다. 각자 저마다의 아침 풍경이 있을 것이다. 여전히 누구도 아침을 챙겨 먹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 세상이지만, 결코 외롭지 않은 건강하고 고독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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