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30 빨래를 반기는 날씨
룽지의 여름 별미, 밀싹 화분이 폭풍 성장하고 있다. 그동안 녀석이 먹어치우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며칠 전 3차 파종을 시행했다. 먼저 심은 두 개의 화분은 휑하니 몇 가닥 남지 않았다. 다행히 새로 심은 밀싹은 금세 쑥쑥 자라, 모발 이식계의 밝은 미래를 보는 거 같다. 세 번째 화분도 순삭 하기 전에 다시 씨앗을 심어 둬야겠다. 이토록 밀싹 농사에 진심인 나를 보고 반려인이 본가 텃밭에 심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다. 순간 솔깃했지만 코끼리가 된 룽지가 아른거려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요리조리 화분으로 쓸 만한 것을 찾다가 버섯 포장용 스티로폼 두 개를 겹쳐 사용했다. 어차피 버려질 거였는데 이리 한번 더 쓸 수 있게 되니 땅에 떨어진 동전 주운 거 마냥 기분이 좋았다.
키보드 상태가 여전히 오락가락한다. 여기저기 색이 바래고 낡아 이제 글을 쓸 때마다 재부팅은 기본값이 되었다. 폰으로도 쓸 수 있지만 엄지의 역량이 한계에 부딪혀 자꾸 오타가 난다. 다행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제정신이 돌아와 왕년의 실력을 뽐낸다. 이러니 새 키보드를 들이는 배신을 할 수 없다. 다시 주인을 알아봐 준 것에 감동해 시스템 업그레이드도 하고 메모리도 정리해 주었다. 원래 가진 용량이 크지 않으니 주기적으로 사진첩도 비우고 메시지도 비우고 사용하는 어플도 최소화하며 산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기계나 시간이 흐를수록 충전도 잘 안되고 깜박깜박하는 건 당연지사이다. 그럴 때마다 매정하게 외면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필요 없는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을 정리하는 쪽을 택하려 한다. 이렇듯 오래 시간 함께 한 물건에 애정을 가지고 쉽사리 바꿀 수 없는 이유는 동병상련의 마음이기도 하고, 동지애이기도 하고, 함께한 시간이 소중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마다 고유한 존재라는 대체 불가한 마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