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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대신 아아 대신, 낮잠을...

20250529 햇살과 바람

by 최집사



청소를 하고 분리수거를 하고 밥을 안치고 점심을 차려먹고 나니 잠이 쏟아졌다.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며 이럴 때 커피 한 잔 들이켜면 좋겠다 생각하다 다시 녹차가 든 텀블러를 홀짝였다.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를 끊었다. 치킨도 끊고 술도 끊고 과자도 끊고 인생의 낙이라곤 없는 줄 알았는데 막상 또 없으니 없는 대로 살아진다. 먹을 게 없다 싶다가도 고구마며 떡이며 옥수수며 과일이며 대체 식량?을 발굴하게 된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 덕이다. 그동안 몸에 좋지도 않을 것들을 누리며 살겠다고 무병의 시간을 부지런히 끌여다 썼구나 싶다.


5월의 막바지다. 청초하던 연둣빛 잎사귀는 어느덧 짙은 녹음을 띄고 마초남 같은 햇살의 시선에 현기증이 난다. 더위를 피해 선선한 아침 시간에 집안일을 몰아서 해놓고 소파에 몸을 뉘었다. 나의 빈약한 정수리에 프라이를 해 먹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태양신에게 기력이 빨려 기절할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펼치지만 두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잠들어버렸다. 애초에 누운 목적은 독서가 아니라 숙면이었다. 그렇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스페인을 떠올리며 한동안 시에스타를 누렸다. 커피 대신 낮잠을 자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이것도 이것대로 괜찮다 생각하며 후반전을 위한 하프타임을 가졌다.


막상 이런 꿀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마음 한 곳엔 불안의 촉수가 고개를 내민다. 이래도 되나, 내가 너무 게으르나. 오랜 시간 내성으로 자리 잡은 노동병을 완치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또한 생존의 위한 또 다른 선택이며 어떠한 형태로든 생활고는 메워진다 생각한다. 그동안 꽤 주체적인 삶은 선택하며 살아왔다 여겼는데, 이제는 되려 삶이 나를 선택해 온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런 마음으로 앞으로의 욕망과 폭주를 절제하며 주어진 시간을 오롯이 누리며 살겠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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