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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가 주도한 화생방 훈련

20250602 꾸물꾸물

by 최집사


지난 주말, 숲에 다녀왔다. 평소보다 여유 있게 일어나 동네 빵집에서 사 온 바게트로 샌드위치도 만들었다. 고등어 배 가르듯 반으로 갈라 상추며 사과며 볶은 버섯이며, 야무지게 냉장고를 털어 넣었다. 1시간 남짓 엉금엉금 달려 도착한 공원에 앉아 반려인과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피톤치드 가득한 숲길을 걸으며 책을 읽듯 차를 마시듯 은은하게 차오르는 행복을 느꼈다. 100년은 넘게 장수한 키다리 아저씨 나무들이 만들어준 그늘 속을 산짐승처럼 유유히 거닐며 안도와 안락함도 느꼈다. 풍족한 산소 흡입으로 허기가 밀려온 우리는 돌아오는 길 예정된 보리밥 정식 코스를 이어나갔다.


우려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망각의 늪 깊숙한 곳에 은폐된 사실이었다. 보리 성분이 채네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에 대해서는 중2 과학시간에 훑은 내용이었다. 동시에 지금껏 들춰볼 일 없는 진실이었다. 이제와 지난날 묻어둔 과학 지식을 몸소 증명?하는 건 생각보다 민감한 문제였다. 그럼에도 내가 겪은 귀엽고 실험적인 사건들이 일상에서 유쾌함을 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집사의 귀환을 알리는 부부젤라 소리가 캣타워에서 졸고 있던 냥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충 짐정리를 해놓고 양치를 하고 거실에 나와 앉으니 평소처럼 룽지가 다가와 수색에 들어갔다. 잠이 덜 깬 얼굴이라 무릎을 세우고 로브를 덮어 몸소 숨숨집을 만들어 주었다. 기다렸다는 듯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은 녀석은 금세 깊은 잠에 빠졌고 잠시 후 예약된 장 이슈가 괄약근을 두드렸다. … 뽀록. 매일 새벽 암탉이 알을 낳듯 경건한 마음으로 가스를 발포했다. 무사히 로켓 발사에 성공한 집사는 무탈하게 tv를 시청하며 지극히 가족적인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보유한 무기는 생각보다 치명적이었다. 5초 정도 흘렀을까?, 부르르 떨며 느껴지는 경련, 녀석은 인생엔 최대 고비를 맞이하는 듯 보였다. 침착한 자세로 범행을 부인하며 신속히 로브를 들썩여 환기를 유도했다. 혹 아이가 정색하며 책임을 묻는다면 악몽을 꾼 것이라 세뇌시킬 계획이었다. 탁월한 조기 진압으로 룽지는 다시 잠이 들었다. 보리보리보리… 쌀! 완전 범죄를 꿈꾼 나는 조용히 주문을 읊조리며 마음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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