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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언니 Feb 16. 2023

할아버지와 1만 엔

누군가에겐 1만 엔이 단순한 돈의 가치가 아니라는 걸

만 엔.


일본 화폐 중 가장 높은 단위이다. 1만 엔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10만 원 정도 하니 받으면 누구나 기분 좋아질 금액이다. 하지만 내겐 이제 1만 엔은 그 이상의 특별한 가치를 지내게 되었다.


"설날인데 한국 안 와?"


평소와 달리 이번 설날에 못 온다는 나의 전화에 섭섭해하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괜스레 기분이 복잡해지고 착잡해졌을 때 친구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 "나중"이라는 게 없을 수도 있으니, 할아버지 할머니와 명절을 보낼 수 있을 때 보내자.'


라는 생각에 그날 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결제했다. (지금 생각해도 급박한 스케줄이었지만 매우 뿌듯했던 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할머니한테 전화해서 "나 설날에 한국 가."라고 말하자 "바쁜데 굳이 돈 쓰면서 또 왜 와."라며 손녀딸의 체력과 통장 잔고를 걱정하는 할머니의 퉁명스러운 대답을 들었지만, 같은 날 고모를 통해 '너 한국 온다며? 할머니가 너 온다고 해서 정말 기뻐하셔~'라는 할머니의 속마음까지 들을 수 있었다.




여러모로 이번 설은 나에게 특별했다. 일본에서 직장인으로서 시골에 방문하는 첫 명절이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을 위해서 일본에서 이것저것 좋아할 만할 것들을 구매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 할아버지에게 꼭 선물해주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만 엔'이었다.


최고의 선물이 현금이라지만 한국 돈이 아니라 일본 돈?


이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텐데. 이 점에 대해서 살짝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 할아버지는 세계 여행 다큐멘터리를 즐겨보며 새로운 문물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데, 할아버지 집에 방문했을 때 어쩌다가 할아버지와 일본 화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일본 화폐에도 여러 지식을 가지고 계신 할아버지가 신기해 '실제로 (화폐를) 본 적 있으시냐'라고 여쭤보니 '실제로는 본 적 없다.'라고 대답하셨다. 마침 지갑에 천 엔이 있었기 때문에 할아버지께 천 엔을 보여드렸는데 '왜 이제 보여드렸지...'라고 후회가 들 정도로 할아버지의 눈은 호기심과 신기함에 반짝거렸다.


그런 생소한 귀여운 할아버지의 모습이 신기했던 나는 '할아버지 가지세요. 이거 선물.'이라고 드렸다. 평소라면 '에이~ 됐어~ 너 가져~'라고 하셨을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아무 말 없이 누가 가져갈까 봐 내 손에서 바로 천 엔을 가져가 지갑에 고이 넣는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릴 정도로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할아버지께 천 엔을 드렸다는 사실도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고모들을 만날 때마다 '너 할아버지한테 천 엔 드렸다며?'라는 질문을 듣게 되었고 '어떻게 아셨어요?' 하고 궁금해서 되물으니, 고모들이 말해 뭐 하냐는 표정으로 '할아버지가 네가 천 엔 줬다면서 여기저기에 자랑하고 다니셔~ 천 엔 본 적 있느냐고. 이게 천 엔이라고.'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좋아하시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동네방네에 자랑할 정도로 좋아하실 거라곤 상상도 못 했고 항상 핸드폰 케이스에 내가 준 그 천 엔을 고이 모시고 다닌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손녀딸이 준 천 엔'


그게 뭐라고... 그저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일 뿐인데 할아버지는 뭐가 그렇게 기쁘셨고 자랑하고 싶으셨던 걸까. 그렇게 기뻐하셨던 걸 알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취업도 했으니 꼭 할아버지께 만 엔을 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일본에서 뽑아온 빳빳한 만 엔을 할아버지께 드렸다. '선물'이라는 내 말에 아무 감흥 없었던 할아버지가 만 엔을 보자마자 눈이 동그랗게 토끼 눈으로 변하며 그때와 같은 어린이와 같은 표정을 지으셨다.



"저번에는 천 엔 밖에 없어서 죄송했어요. 만 엔 드리고 싶었는데... 그래서 일본에서 만 엔 뽑아왔어요.

 이제부터는 손녀딸한테 만 엔 받았다고 자랑하세요!"


이 1만 엔 드리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에 울컥함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던 찰나, 할아버지가 주섬주섬 카드 케이스에서 무언가 꺼냈다. 바로 내가 몇 년 전에 드렸던 천 엔이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거 천 엔 이거 내가 항상 내 몸에 지니고 다녔어. 병원에 있을 때는 병실 안에 물건 넣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우리 저번에 같이 찍었던 가족사진이랑 이거(천 엔)랑 같이 넣어 놨고.

또 밖에 나갈 때는 이렇게 핸드폰 케이스에 넣어놓고 다녔고・・・ 이번에 받은 만 엔도 거기에 넣고 죽을 때까지 잘 보관할게. 고맙다."


이 고작 만 엔이 뭐라고 할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보관을 하겠다고 기쁜 표정으로 말씀을 하셨던 걸까. 기뻐하는 그 모습을 보자 울컥하며 장난스럽게 상황을 넘겼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당시만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아팠고 아프다.




현재도 해외 살이, 해외여행에 호기심이 많고 동경하는 할아버지는 분명 꿈 많은 청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본인의 건강까지 버려가며 탄광에서 일을 하셨다. 그렇게 가정을 지키고 시간이 흘러 자식들도 결혼하고 하나둘씩 안정된 삶을 살기 시작하여, 해외여행에 갈 수 있는 돈과 시간은 생겼지만 할아버지 본인의 건강이 기다려주지 않았다.


현재는 진폐 산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평생을 그곳에서 보내야 한다는 할아버지. 누구보다 내 여행 이야기나 사진에 관심을 가져주고 해외 생활에 귀 기울여주시지만 가족 중 누구보다 나를 부러워하시는 할아버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겐 만 엔은 일본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10만 원정도의 가치이지만, 해외에 나가고 싶지만 나갈 수 없는 할아버지에게 있어서는 일본 여행을 투영할 수 있는 소중한 매개체가 아니었을까?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시절에 태어난 것에 감사하며 할아버지에게 새로운 에피소드를 공유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잘 지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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