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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언니 Mar 26. 2023

일본 직장에서 일본어를 너무 잘하면 생기는 딜레마

일본 직장 내에 내 포지션은?

나는 일본어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일본에서 유학하고 직장까지 현지에서 다니고 있으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오히려 못하면 이상한 거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오래 있을수록, 특히 일을 할수록 '일본어를 잘할수록' 나는 일본어에 대한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혼자 하는 거냐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드릴 테니 요즘 제가 느끼는 고민을 공유하고 싶다.




나는 일본에서 총 7년간 거주했고, 일본어를 처음 제대로 배운 건 22살이다. 22살에 처음 일본에 가서 일본어 학교를 다녔고, 24살에 대학 입학을 했다. 고등학생에서 바로 일본으로 대학 진학을 한 친구들과 비교해서 살짝 늦은 편이긴 하지만 내가 일본에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재일교포세요?" 라는 말이다.


그만큼 일본인들이 내 일본어를 들었을 때 위화감이 없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발음이 완벽해서 그렇다기보다는 발음도 발음인데 일본인 같은 표현과 행동을 하기 때문에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가 20대에 한국에 왔다는 걸 알면 다들 놀라면서 "자기는 당연히 도쿄언니가 재일교포인지 알았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내가 열심히 일본어를 갈고닦은 결과가 이렇게 빛을 발하는구나 하고 좋아하던 것도 대학을 다닐 학생 때나 잠시였고, 일본에서 일을 시작하니 이 일본어를 잘한다는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인들은 외국인이 일본어를 조금만 잘해도 "잘한다." 하고 칭찬을 하지만, 외국인이 일본어를 잘하는 수준을 넘어 '일본인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상대방의 사소한 말실수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한다.


특히 일본인들도 어려워해서 따로 공부한다는 비즈니스 용어는 물론 클라이언트들과 대화를 할 때 존경어, 겸양어를 바르게 쓰는지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판단하기 시작한다.




최근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왜인지 전반적으로 클라이언트와 마주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이번 회사는 꽤나 영업에 엄격해 클라이언트들과 직접 일을 하기 전에 회사 자체에 있는 <영업 퀘스트>를 통과해야지만 현장에 나가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최초의 외국인 영업인으로서 다른 선배들이 어떻게 퀘스트를 진행했나 수소문해보니 기본적으로 3번은 떨어지고 많은 사람은 5번, 6번까지 퀘스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수두룩 했다.


그리고 지적한 내용도 보니 "말하는데 추임새가 많다." "이런 단어를 쓰지 말 것." 등 꽤나 말투와 단어에 대한 지적이 많았고 일본어가 이상하다.라는 코멘트도 자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인이 영업 퀘스트를 진행했는데 일본어 문법이 이상하다.라는 지적을 받다니...


일단 퀘스트는 진행해야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퀘스트 연습을 하고 내게, 팀 내에서 일 잘하고 직설적이며 쿨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선배님이 내게 조언을 해주셨다.


"도쿄언니(나)는 더 열심히 준비해야 할 거예요.

일본어를 일본인만큼 잘하고 위화감이 없기 때문에 이 직무에 도쿄언니를 넣은 거고 나도 그렇고 여기 사람들은 도쿄언니를 외국인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특히 우리가 마주하는 클라이언트들은 대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도 도쿄언니와 대화를 하면 당연히 일본인이랑 대화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진행할 건데, 그때 약간의 실수를 삐끗해 버리면,


'아 맞다. 이 사람 외국인이었지?' 이렇게 신뢰를 잃게 돼버릴 거고, 그때부터 그 담당자들은 평소라면 하지 않는 확인을 계속할 거예요.


외국인이니까 혹시라도 실수할까 봐. 그게 일본인들의 안 좋은 점이긴 한데, 그만큼 도쿄언니가 일본어를 일본인만큼 잘한다는 뜻이니까 부담스럽긴 하겠지만 열심히 해봐요...!


이런 문장 써도 되는지, 혹시라도 일본어적으로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고요!"


사실 이전 회사에서도 클라이언트들과 업무를 하면서 어렴풋이 느꼈던 점이었는데 일본인 선배에게 대놓고 이야기를 들으니 속시원하기도 하고 또 내가 인정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기쁘면서도 불안함이 밀려들었다.




느슨해진 일본 생활에 새로운 자극이 생겼다.


항상 가르쳐주시려고 하는 선배님들이 있는 팀에 소속된 것에 감사하며 외국인이라고 무시당하지 않도록 더 열심히 일본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고


그 결과 약 9년간 일본어를 하면서 아이러니하게 지금이 일본어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자신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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